나는 왜 재개발 지역으로 걸어 들어오게 되었나
<집 쓰기1>
성격 유형 검사를 했더니 ‘보헤미안 기질’이 나왔다. 기질은 영혼이 아닌 차라리 혈통이었으면 했다. 본디 속박 되는 걸 참지 못하는 나는 어느 한 곳에 정착하는 걸 어려워했다.
초등학교 일 학년 때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면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양말을 벗어던지는 것이었다. 여덟 살의 나는 양말에 속박당하는 걸 너무나도 싫어했다. 유치원에 다닐 때에는 한 학년 아래 동생의 염색된 노란 머리카락을 싹둑 자른 적이 있었는데 선생님께서 누가 인형 머리카락을 잘랐는지 물으셨을 때 나는 당당히 대답했다. 당사자의 동의하에 한 행동이라 거리낌이 없었는데 자진신고 후 내게 돌아온 것은 간식시간에 벌을 서야 하는 것이었다.
아무런 고민도 계획도 없이 고등학교를 지나 어느덧 적성에 맞는지 아닌지 모를 전공을 졸업해서 사회에 나왔다. 내가 원하는 곳은 날 원하지 않았고 나를 원하는 곳은 내가 원하지 않은 그저 그런 회사이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과 하고 싶은 일의 격차가 충돌하면서부터 뒤늦은 방황이 시작되었고 아름답게 빛나야 할 20대에 홀로 심리적 유랑 길에 들어서게 되었다.
친했던 친구들이 직장에서 직책을 부여받고 켜켜이 커리어를 쌓아갈 때 나는 이리저리 떠돌았다. 자유를 위해 타국을 여행도 해보고 살아도 보았지만 그런 내게 찾아온 것은 언제나 '불안'이었다. 비행기 입국도장 같은 경험은 또래의 경력을 따라가지 못했다.
불안함으로 인한 스트레스성 질환을 안고 있는 나와는 다르게 노래 부르고 춤추고 먹고 자고 떠나는 일에 시간을 배분하거나 계획을 세우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유럽의 어느 소수 민족 중 ‘집시’라 불리는 그들은 내가 희망하는 라이프 스타일대로 산다. 하지만 금수저 출신의 한량이 아닌 이상 대한민국에서 유랑민처럼 산다는 건 낭만만으로 버텨낼 수 있는 게 아니다. 다행히 나는 소비를 조절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갖고 싶고 쓰고 싶은 데는 많지만 적절히 포기할 줄 안다. 그래서 적게 쓰는 대신 적게 버는 삶을 택하고 싶었다. 이솝우화의 메뚜기처럼 살기로 했을 때는 시간적 자유와 경제적 안정을 맞바꾸어야 하는 거니까. 그게 이치에 맞는 거니까. 그런데 포기하면 안 되는 예상치 못한 소비의 영역이 있더라. 의료비, 기본 주거비 그리고 부모님께 드려야 하는 용돈.
용돈. 아. 끊임없이 들려오는 엄마친구딸의 업그레이드된 소식은 나의 처지를 자각하게 했다.
그럴수록 나는 기질이 아니라 집시의 후손이었더라면 이렇게 사는 것도 괜찮지 않았을까 하는.. 계속된 맹랑한 생각 덕에 점점 우울감, 무기력 그리고 두려움을 느꼈다.
나는 어디라도 '머물'고 싶었지 자리 잡고 싶진 않았다. 유랑민처럼 지구 여기저기를 밟으며 살고 싶었다. 하지만 내가 선택한 삶의 방식을 고수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자리 잡고 성공하는 게 잘 사는 인생이라 생각하는 사람들의 시선이 두려웠고 그들의 편견을 뛰어넘어 보란 듯이 잘 살 자신이 없어서였다. 어릴 적 행동에 제약이 없던 나는 성인이 되어 너무 신중하고 조심스러운 인간이 되어 있었다.
이건 내가 원하던 모습이 아니었다. 나의 모습을 따른 생존을 위한 한 가지 결정을 해야 했다.
독립.
2020년 9월. 본가를 나오기로 선언한 후 새롭게 머물 곳을 찾아야 했다. 온라인 부동산으로 서치를 했고 그중 마음에 드는 곳이 있어 먼저 지도를 살펴봤다. 집을 기준으로 위로는 남산과 아래로는 한강이 있었다. 이제껏 한남동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었지만 이곳에 올 이유가 충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