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리엔탈리즘>과 <어제의 세계> 엇갈린 두 지성의 유산
어떤 지성은 시대의 모순을 해부하며 내일을 설계하고, 어떤 지성은 무너지는 문명의 황혼을 목격하며 어제의 세계와 함께 사라졌다. 같은 시대를 살았으나 전혀 다른 세계를 보았던 두 경계인이, 유럽 중심의 서구 문명을 바라보는 극명한 대조를 이루는 두 권의 책
발췌록을 보니 <오리엔탈리즘>은 2020년 한 해에 읽었던 50여 권의 책 중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책으로 기록되어 있다. <어제의 세계>를 읽는 내내, 책장을 넘길수록 비교되는 생각에 그 흔적을 남겨본다.
’경계인‘의 삶을 살았던 두 사람의 시대적 환경이라는 자극에 반응한 결과가 한쪽이 서구의 오만함을 날카롭게 해부했다면, 다른 한쪽은 서구 문명의 찬란했던 황혼을 애도했다.
두 사람 모두 19세기말~20세기 초, 유럽이 세계의 정점이자 문명의 표준이라고 믿었던 ‘유럽 중심주의’라는 시대적 상황은 같았다. 하지만 그들이 처한 위치와 그에 따른 대응은 전혀 다른 역사적 기록을 우리에게 남겼다.
사이드는 미국에서 활동했던 팔레스타인 출신 지식인으로서, 서구의 모순을 지적하며 유럽 중심 문명의 위선을 해부했다. 아름다워 보이는 유럽 문명의 밑바닥에는 타자를 식민화하려는 권력 의지가 숨어 있음을 분석적, 공격적으로 파헤쳤다. 그동안 상식으로 받아들였던 '오리엔탈리즘'이 사실은 서구가 만든 정교한 프레임이었다는 시각이 너무 낯설고 경이롭기까지 했다.
반면 오스트리아 출신의 코즈모폴리탄 츠바이크는 무너져가는 문명을 서정적으로 기록하고 마지막까지 보존하려 했다. 그러나 그는 시민 사회의 근간인 문화의 수도로부터 추방당해 결국 망명지에서 부인과 함께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어디에도 속하지 못했던 게오르규의 소설 <25시> 가 생각 남)
P548. 반쯤은 운명은 어디를 가나 나의 뒤를 쫓아오고 있었기 때문에 다시 한번 달아나는 것에 경멸감이 생겼기 때문이었고 반쯤은 지쳐버렸기 때문이다. <어제의 세계>
생존과 상실의 차이
두 사람이 나고 자란 환경이 사유 체계를 결정짓는 결정적 변수로 작용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한다.
사이드는 태생적으로 주어진 경계인으로 받아야 했던 경계인의 자극을 '억압과 왜곡'의 도구, 서구가 아닌 이들을 '미개한 타자'로 규정하는 폭력적인 시선으로 느껴 싸워야 할 대상이라 생각한 반면, 유럽 문화의 중심에 서 있던 츠바이크에게 유럽 문명은 인류 이성의 결정체이자 광기(나치즘)에 의해 파괴되는 고귀한 희생자였다.
사이드는 말 그대로 ’태생적 아웃사이더‘였지만, 츠바이크는 갑자기 문화의 중심에서 ’밀려난 아웃사이더‘였던 것이다. 그렇기에 사이드가 ‘그 문명은 누구를 희생시켜 세워졌는가?‘라고 물었다면, 츠바이크는 ’그토록 고귀했던 문명이 어쩌다 이렇게 처참히 무너졌는가?’라고 회의적이고 비관적으로 보았다.
P506. 나에게는 유럽이 스스로의 관계에 의해 죽음의 선고를 받은 것처럼 보였다. 우리 성스러운 고향, 우리 서구 문명이 요람이며 파르테논인 유럽이. <어제의 세계>
평화라는 이름의 다른 무게
결국 두 사람 모두에게 ‘경계인’이라는 자극은 시대적 환경이었으나, 반응을 결정지은 것은 ‘내가 문명의 가해자와 피해자 중 어디에 서 있는가‘ 혹은 ‘문명의 혜택을 입었는가, 소외되었는가‘라는 주체적 선택의 결과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사이드가 태어난 팔레스타인은 제국주의의 이해관계가 얽히고설킨, 말 그대로 '지정학적 화약고‘로 팔레스타인 태생의 사이드에게 평화는 쟁취하는 것이라는 전투적인 성향이 강화된 지성이었다. 그에게 평화는 거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왜곡된 진실을 바로잡고 투쟁해서 얻어내야 하는 것이다.
사이드에게 글쓰기는 (The pen is mightier than the sword.) '펜은 칼보다 강하다'는 명제를 증명하는 ‘지적 게릴라전’과 같은 투쟁이었다.
반면, 츠바이크는 19세기말 20세기 초 전 세계 예술과 지성이 모여드는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왕조의 풍요로운 환경이라는 ‘문화의 수도’ 중심에 있었다. 그에게 평화는 공기와 같은 것이어서 지식인은 정치를 논하기보다 아름다움을 찬미하고 정신적인 연대를 강화하는 것이 본분이라고 믿었다.
갈등을 정면으로 돌파하기보다는, 사라져 가는 아름다움을 안타까워하며 평화는 향유하는 것이라며 마치 ’최후의 만찬‘ 하듯이 수동적이고 심미적인 반응을 보였다.
P113. 나의 진정한 대학교는 교실이 아니라, 거리와 도서관, 카페와 여행지였다. <어제의 세계>
내일을 설계하는 지성과
어제를 그리워하는 지성
<오리엔탈리즘>이 서구 문명이 감추고 싶어 했던 '폭력적인 이면’을 고발하는 서늘한 분석이라면, <어제의 세계>는 서구 문명이 도달했던 아름다운 정점‘이 무너지는 과정을 지켜본 비극적인 증언이 되어 버렸다. ‘전투적 지성과 서정적 패배‘를 대조적으로 보는 것 같은 느낌이다.
출신 지역이 준 '안정감의 두께’가 달랐기에, 그 안정이 파괴되었을 때 한 명은 저항을 선택했고, 한 명은 사라짐을 선택한 셈이다.
츠바이크가 사라진 '어제의 세계'를 그리워했다면, 사이드는 그 '어제의 세계'가 저지른 과오를 들춰내어 '내일의 세계'를 설계하려 했다고 볼 수 있다.
사이드가 외부자의 비판적인 시각으로 서구가 동양을 왜곡하고 지배하기 위해 만든 '지식의 틀'을 폭로함으로써 당연하게 여겼던 편견을 깨고 새로운 관계 맺기를 촉구한 미래지향적 성향이었지만,
츠바이크는 1차 대전 이전의 그 찬란하고 자유로웠던 <어제의 세계>의 가치들에 경의를 표하며, 오로지 자유와 평화에 대한 그리움을 기록한 내부자의 향수에 머물렀다.
그러한 결과로 나치 야만의 시대에 의해 평화로운 일상이 파괴되는 비극에 슬퍼하고 상실감에 스스로를 깊이 매몰시킴으로써 죽음을 선택했다는 점이 안타까울 뿐이다.
P553. 모든 나의 친구들에게 인사를 보내는 바입니다 원컨대 친구 여러분들은 이 길고 어두운 밤 뒤에 아침노을이 마침내 떠오르는 것을 보기를 빕니다. 나는, 이 너무나 성급한 사나이는 먼저 떠나가겠습니다. (츠바이크의 유서)
‘안전한 땅에서 자란 나무는 폭풍에 꺾이기 쉽지만, 척박한 땅에서 자란 나무는 뿌리를 더 깊게 내린다’는 격언으로 비유하면 너무 가혹한 것인가?
*개인적인 독서노트 입니다.
#에드워드사이드 #슈테판츠바이크 #오리엔탈리즘 #어제의세계 #경계인 #인문학 #독서에세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