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현대미술관
가장 고요한 도심 속 공간.
개관 직후 평일 오전 10시 5분 미술관이다.
운이 좋아 간혹 평일에 쉬게 되면
나는 내게 고요한 공간을 선물한다.
도심에 살거나 도심으로 출근하는 직장인에게 완벽한 고요함은 보장되지 않는다.
간혹 새벽 2시가 넘어 정좌를 하고 명상을 하려면
어느 동네나 있는 그 취객이 욕설을 내뱉거나, 누군가 타인의 차량을 만졌는지 경적이 반복된다.
어디 떠나보겠다 해도, 분주하고 사람 많은 유명 리조트나 관광지 정도이고,
산 속 어딘가로 문명으로부터의 도피를 감행할라치면,
그런 곳에서 불편을 감수하는 것도 능력 밖이다.
평일 오전 10시 5분 미술관도 학생들의 단체 관람이 겹칠 때가 있지만 그래도 정적을 즐길 확률이 높다.
관람객이 있어도 역시 아침 일찍 조용한 미술관을 즐기려는 성향인 듯 하니 여기는 도심 속 두메산골이다.
메타버스, AI, 양자컴퓨팅 등 발전의 뒤편에서 2D 그림을 응시하는 건
에어컨 대신 둥그나무 밑 벤치에서 자연 바람을 오감으로 맞는 것 같다.
유명한 화가였는데 이름은 까먹었고 작품 이름은 더더욱 기억나지 않지만
미술관의 고요함 속 그림을 보며 떠올렸던 질문은 남는다.
한강이 노벨문학상 수상 강연문에서 말했듯
세계는 왜 이토록 폭력적이고 고통스러운가?
동시에 세계는 어떻게 이토록 아름다운가?
한나 아렌트가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서 말했듯
악은 어떻게 이토록 평범할 수 있을까?
나 같은 직장인이 '순전한 무사유의 죄'로부터 벗어날 수 있을까?
그리고 수많은 그림들을 보면서
'삶의 날 것을 직시하는 것은 왜 이리 힘들까'라고 물었다.
'평등, 공정과 같이 역사에서 한 번도 이룬 적 없는 것들을 우린 왜 성취할 수 있다고 믿을까' 싶었다.
미술관 산책 속 질문은 답하지 않아도 좋고, 답할 수 없어도 좋다.
고요함은 사색을 이끌고, 사색은 평소와 다른 질문을 만들며, 그 질문이 변화의 단초가 될수 있으니 그걸로 족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