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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정도까지만 괜찮다

미국 워싱턴DC, 애나폴리스, 뉴욕

by JU

미국을 보는 세계의 시선이 차갑다. 관세전쟁은 WTO체제의 종언을 의미하는 것 같아 우려다.

싸게 잘 만드는 물건을 서로 팔면서,

후발주자를 배려하려 필수산업 육성을 위한 보호무역을 일부 허용했던 시대가 저물고 있다.

'보이지 않는 손'은 환상이라 해도, 시장경제의 자정능력에 대한 믿음마저 사라지는 듯하다.

트럼프 1기, 다양성을 억압하는 그의 독주를 슬며시 막아섰던 관료들은 '대규모 감원'에 일자리를 잃었다.

다양성의 기반인 대학들도 좀체 입을 못뗀다. 미 정부가 유학생 쿼터만 막아도 존립이 위태로운가보다.

그나마 하버드처럼 기부금 실탄을 장전한 대학이나 다양성 실종을 지적한다.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은 “다른 견해를 가진 사람들을 지배하려는 노력에 의해 압도된다면,

더 완벽한 연방을 향한 250년간의 여정을 위험에 빠트릴 것”이라고 트럼프를 비판했다.

'Black Lives Matter'를 주장했던 흑인사회는 군용 헬기를 동원했던 트럼프를 기억한다.

코로나19 국면에 과학적 무지를 드러내며 실패했던 트럼프가 같은 길을 갈 가능성도 있다.

다만,

내가 아는 트럼프를 찍은 (미 언론에 주로 등장하는 극우가 아닌) 미 중도층은 경제를 외친다.

누구나 원하면 일자리를 얻고, 가솔린 가격이 갤런 당 1달러는 내려갈 가능성이 있다고,

미국 구성원을 위해 이민자 추방과 제조업 유치 압박, 관세전쟁을 어느 정도까지는 불가피하단다.

역사적으로 민주주의는 생계 앞에 위태롭다. 먹고 사는 문제 앞 포퓰리즘이 성행한다.

유발 하라리는 저서 '넥서스'에서 권력자가 원하는, 혹은 특정 집단이 원하는 사회 질서를 위해

진실을 외면하는 역사적 사례를 수없이 들었다.

이럴 때 위태로운 민주주의를 지킨 건 학자, 관료, 언론, 학생 등이었다. 이름모를 시민들이었다.

세계 많은 국가들이 다양성이 사라진 사회를 경험했고 그 때를 암흑기라고 정의했다.

정권이나 권력의 속성 상 7대 3의 우위를 누린다해도 10대 0은 곤란하다.

에른스트 슈마허 컬럼비아대 경제학 교수는 ‘자발적 가난’에서 '어느 정도까지만 괜찮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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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발전은 어느 정도까지만 건강하다.

삶의 복잡함도 오직 어느 정도까지만 허용 가능하다.

효율성과 생산성에 대한 추구도 오직 어느 정도까지만 좋다

재생 불가능한 자원의 사용도 오직 어느 정도까지만 현명하다

전문성도 인간의 고결함과 오직 어느 정도까지만 양립 가능하다

상식을 ‘과학적 방법’으로 대신하는 것도 오직 어느 정도까지만 참을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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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최고의 발명품이라 일컫는 현대 민주주의가 250년간 존속한 힘은 '자기 수정' 혹은 '자정 능력'이다.

미국이, 미국 국민이 시험대에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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