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지브리'로의 도피

챗GPT 이미지: 지브리스타일, 수채화스타일, 추상화스타일

by JU

'챗GPT로 지브리 이미지 만들기' 열풍에 편승했다.

쉽게 아름다운 그림을 생성하는 인공지능에 감탄하다가

늘상 아픈 기억을 아름다운 추억으로 재생산하는 나의 뇌와 같다고 생각했다.

무뚝뚝한 건물 숲 앞 한옥 지붕에 갖가지 파스텔톤을 덧입힌 AI는

과도하게 모델의 허리를 잘록하게 코는 오똑하게 만드는,

햄버거 패티를 두껍게 채소를 풍족하게 바꾸는 과장 광고와 닮았다.

그 옷을 입으면 나도 멋져 보일거라는 환상과 무조건 맛있는 음식일 거라는 속임수에

나는 기꺼이 속아주고, 더 좋은 추억으로 한번 더 왜곡해 기억한다.

따뜻하고 행복한 색채가 가득한 '지브리 세상으로의 도피'는

나의 뇌가 줄곧 행복한 시절로 과거 여행을 떠나는 것과 닮았다.

소주 한 잔에 군대 시절, 사격 만점 최우수 병사였던 (과장된) 과거를 꺼내고

두 잔에 젊은 시절 여성에게 얼마나 인기였는지 (거짓) 과거를 말하곤

세 잔 째 얼마나 대단한 직장 경력을 쌓았고 능력자인지 (더욱 거짓을) 떠들어댄다.

만취해 흔들거리며 오늘 밤만은 쓴 현실을 외면하려고 발버둥친다.

그래도 쓰기만 한 세상도, 달기만 한 세상도 없음을 알게 됐고,

지금을 넘기면 따뜻한 내일이, 그걸 넘기면 냉혹한 모레가, 그리고 또 무언가가 반복되더라.

쓰디 쓴 현재를 참아내려 지브리스타일에 빠지든 무엇을 하든

현실을 포기하는 것보다 의욕적이고 의미있게 또 다른 내일을 기다리는 일이다.

그래서

마거릿 미첼은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서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뜬다"고 했고

스콧 피츠제럴드는 위대한 갯츠비에서

"그리하여 우리는 조류를 거스르는 배처럼 끊임없이 과거로 떠밀려 가면서도 앞으로 계속 나아가는 것이다"라 했다.

keyword
월요일 연재
이전 23화무관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