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한강, 서울역, 예술의전당
그래서, 그러니까, 따라서, 왜냐하면, 그러므로......
이런 접속사는 신문 글쓰기에선 대표적 '사족'이다.
글이 명확하면 접속사는 필요치 않다.
연관 관계가 애매하면 혹은 자기도 잘 모르는 얘기를 하려면 접속사가 필요하다.
일상에서도
내 말이 맞다고 우길 때, 내 주장을 강요할 때 접속사가 필요하다.
내 말이 뭐냐면... 왜 알아듣질 않아!
소리를 지른 뒤 뚱한 부하직원의 표정을 보곤 설득을 포기했던 상관이,
그러니까 말이야... 몇 시간 후에 나긋한 목소리로 말해도
톤을 낮춘 것만으로 부하직원은 속지 않는다. 소통인 척해도 여전히 일방적 강요다.
접속사를 동원해 억지로 끼어 맞춘 논리는 서로 피곤하게 만든다.
반면 '무관함'을 인정하는 건, 평온을 가져온다.
오늘 나를 비난한 누군가는 내일의 그와 다른 사람이고
어제 나를 칭찬한 누군가는 오늘의 그와 다르다.
굳이 각종 접속사를 동원해 모든 일이 연관돼 있다고 믿을 필요 없다.
나를 욕하는 사람, 과도하게 칭찬하는 사람, 뒤에서 비난하는 사람도
사실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내게 관심이 없다.
버트런트 러셀은 '대부분 사람이 당신을 해코지하고 싶을 만큼 당신에게 골몰한다고 상상하지 말라'고 했다.
유퀴즈에 출연한 법륜 스님은 화가 날 땐 '세상은 원래 내 맘대로 안 된다'는 것을 자각하라 했다.
영원한 것은 없음에도 영원을 꿈꾸는 건 괴로움을 부른단다.
첫사랑과 풋이별이 특히 아픈 것도 그 때가 영원한 사랑을 꿈꾸는 순수한 시절이었다는 증거일 수 있다.
제행무상이라는 불교용어를 빌리면 '모든 것은 사라진다'
많은 명작에 '무제'라는 이름이 붙은 건
모든 것은 사라지니, 특정한 의미로 작품을 해석하지 말라는 정중한 부탁일테다.
인과관계에서 원인을 찾는 지나친 골몰은 스스로에게 사로잡히고, 화에 빠지기 쉽단다.
대부분은 내 생각보다 '무관'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