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키웨스트, 하와이
미국 최남단 키웨스트의 노을은 황홀했다.
떨어지는 해의 화력과
흥겨운 축제의 음악,
선상과 부두엔 춤추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바다 건너 가장 가까운 쿠바의 흥이 가득한 문화 때문인지,
짧은 체류기간 동안 즐거움을 극대화하려는 관광객 때문인지,
같은 태양이건만 지구 태초, 태양을 숭배하는듯한 원초적 춤사위와
지구 마지막날 오늘이 끝인듯한 세기말적인 열기가 뒤섞였다.
해가 떨어지며 누런 하늘이 더운 밤공기를 품기 시작할 때
근처 스탠딩바 슬리피조의 열광은 절정에 닿았다.
하지만 나는
춤을 추지 못했다. 몸으로 감정을 표현할 줄 모르니, 낯설었다.
이방인이 돼 멀리서 댄서들을 관찰했다.
그럴듯하게 춤을 출 줄 모르는 나를 들키고 싶지 않았을까.
음악과 춤으로 현실을 도피하는 게 싫었을까.
관찰자가 돼 비평이나 일삼으며 우월한 척하고 싶었을까.
끼지 못한 것을 끼지 않는 것이라며 팔짱을 끼고 바라봤다.
엉성한 몸동작으로, 엉터리 팔 사위로, 일행에게 이리 오라 손짓하는 사람들은
멍청한 웃음을 지었고 몸을 터는 듯 단순한 동작이었지만, 얼굴이, 웃음이 빛났다.
지는 태양의 빛 입자가 반사된 팔이 붉었고, 비늘처럼 반짝 매끈했다.
내일은 모르겠다는 눈동자마다 불타오르는 태양이 총명하게 반영됐다.
산이 높으면 골짜기가 깊다고, 좋을 때 겸손하고 힘들 때 포기하지 말라고,
좋을 때 고난을 준비하고 힘들 때 좋을 때를 기다리라는
우리네 지혜가 얼마나 엉뚱한가 생각했다.
춤의 무리에 끼어볼까 하다가 숙소로 돌아갈 시간이라고 결정했다.
다음엔 모든 것을 잊고 춤판에 올라야지 했다가 그럴 수 있을까 의심했다.
지금, 즐거우면 춤을 추고 웃으면 된다. 힘들면 충분히 아파하면 된다.
가식을 걷고 시선 따윈 무시하고 춤판으로 나서면 된다.
즐거운 때를 만끽하지 못하고 슬픔을 무표정한 얼굴로 참아내는
누구에게도 말 못하는 고립을 성숙이라고 승화할 필요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