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하노이, 미국 유타, 일본 도쿄, 그리고 싱가포르
20대. 제주로 향하는 첫 비행기 탑승. 기계 덩어리의 비행 자체에 놀랐다.
30대. 미중일, 태국, 미얀마, 싱가포르, 베트남 등 적지 않은 해외 출장을 갔다.
40대. 미국에서 수년간 거주했고, 타국인의 삶을 들여다볼 기회였다.
50대. '죽기 전 후회할 것 설문'에 더 많은 나라를 경험하지 못한 것이 포함된 것에 공감한다.
평생 타국 생활을 하는 이들도 많고, 외교관이나 기업 주재원도 많지만
제한적이나마 타국에서 느낀 것을 정리하자면
1. 서울보다 거대하고 웅장한 도시는 별로 없더라.
-뉴욕은 쇠락 중인 듯 했다. 거리마다 땜질 공사가 한창이고, 대마초 냄새가 코를 찌른다.
-빌딩 구경을 할라쳐도 서울은 도쿄나 뉴욕 등에 뒤지지 않는다.
-대중교통, 병원, 외식, 쇼핑 시스템 등 도시 인프라도 서울이 보다 효율적이다.
-적지 않은 외교관들이 '1980년대 해외 근무는 축복이나 지금은 고생'이라고 하는 이유인 듯 싶다.
2. 반대로 '삼천리 화려강산'은 사실 상당히 좁더라.
-초등학교 세대가 아닌 국민학교 세대라면 '삼천리 화려강산'을 중심으로 소위 국뽕 교육을 받았다.
-사계절, 많은 산지, 삼면이 바다 등도 우리나라의 고유한 특징이라고 외웠다.
-하지만 자연은 거대할수록 장관이었고 거주민에게 관광, 농업, 도시확장성 등 윤택함을 제공한다.(물론 열악한 자연환경에서 성공한 한국 경제는 기적임이 분명하다)
3. 해외여행은 잠시 풍요로울 기회다.
-관광과 거주는 매우 다르다. 잠시 돈 쓰러 온 사람(관광객)에 대한 친절은 타국 거주자에겐 텃세로 바뀐다.
-따라서 관광으로 겪은 이미지를 거주와 연관하는 것은 위험하다. 어디나 삶은 전쟁이다.
-광주에 사는 독일 방송인 안톤 숄츠를 만났을때, 그는 '헬조선'에 의아해했다. 열심히 살면 무조건 잘된다는 법칙은 세계 어디에도 없다는 것이다.
4. 관광이란 아끼면 좋지만, 안 아끼면 편하다.
-내 관광의 핵심은 금전적 절약과 짧은 시간에 많은 곳을 보자는 효율성이었다.
-변명하자면 1990년대 보통의 중고등학교 수학여행이나 가족여행이 그랬다.
-이런 것보단 햇살 좋은 날 30분간 책을 읽거나 캐치볼을 하는게 낫다는 가족의 항의가 있었다.
-이후로 1~2일의 여유를 추가한다.
-돈이 더 드는 건 아쉬우나 여행 중 실수를 용인하거나 몸과 정신이 쉴 여유를 두니 새로운 것이 보였다. 여행 계획에 답은 없더라.
5. 짜증만 안 내면 실수는 여행을 아름답게 만든다.
-완벽한 여행 일정을 그대로 완수했을 때, 보람은 여행을 짠 사람만 느끼는 경우가 적지 않다.
-다른 사람들은 일상에서 벗어나 맘대로 다닌다는 여행의 즐거움 대신 또 다른 일정에 갇히곤 한다.
-폭포나 작은 다람쥐나 멋지게 썩어 넘어진 고목 등을 잘못 든 길에서 만나거나, 숙소에 닿지 못하고 밤을 맞아 들어간 유스호스텔에서 외국인들과 식사를 함께 하는 경험은 실수의 선물이다.
-여행 중 실수를 품는 여유는 삶의 여정과도 맞닿아 있다. 과거 수 많은 실수를 했을 땐 매번 괴로웠지만, 지나고보니 그 실수가 겹쳐 그래도 인생은 살만하다고 생각하는 지금의 내가 됐다.
6. 해외여행의 조미료는 대화다.
-현지인들과의 대화가 빠진 유명 음식과 유명 관광지는 싱거운 맛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을 찍은 건 단지 휘발유 가격이 떨어질 것이라는 기대 때문이라는 말도 들었고, 픽업트럭 말고는 차가 아니라고 전기차를 참으로 싫어하는 덩치 좋은 백인도 만났다. 추운 겨울 눈밭에서 증류주를 만드는 독일계 미국인이 자신의 술은 맛보라고 건넸고, 펜실베이니아 시골의 작은 레스토랑 주인은 직접 키운 돼지고기로 만든 햄을 내주며 단골만 주는 거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언어도 이젠 높은 장벽은 아니다. 일본에선 한 직장인과 옆 테이블에 앉았는데, 주변에 큰 소리로 한국말을 하는 일본인 손님이 있는지 물어 어울렸다. 무료 AI 통역기도 아직은 다소 불편하나 훌륭하다.
7.먼 곳으로 떠나는 여행은 희소하지만, 여행의 질을 결정하지는 않는다.
-미국의 한 석학은 근처에도 좋은 곳이 많은데 한국사람들은 왜 유명 관광지만 찍듯 다니냐고 물었다.
-또 다른 주민은 미국민 중 평생 그 주를 벗어나지 않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고 했다. '어딜 가봤다'는 건 여행의 목적이 아니라는 의미도 들렸다.
-이들의 추천으로 당시 거주지 인근에서 찾은 곳은 'Chimney Rock' 주립 공원이었고 굴뚝처럼 높은 바위에서 숲속 마을들을 바라보며 여행의 감동은 비용에 비례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했다.
8. 모든 나라는 다르지만 결국은 같다.
-수많은 문화의 다른 나라들을 다니는 건 결국은 '지구는 하나'라는 결말에 이르기 위한 과정인지 모른다.
-우리가 모르는 세계 어딘가에도 '선한 이들'이 많고, 다음 세대를 위해 지구를 아껴 쓰는 이들이 많다.
-우리는 수많은 직업을 통해 작거나 큰 성과를 이루고 이는 인류가 나아가는데 적고 많은 기여를 한다.
-여행은 오늘을 충실하게, 최선을 다해 살아내는 것은 '얼마나 위대한가'를 깨달아가는 과정인지 모른다.
9. 나의 버킷리스트는...
-자연의 장관을 보려 '파미르 고원'을 횡단하는 것이다.
-평생 서울에 살면서도 50살이 되어서야 처음 둘레길을 걸어본 남산을 속속들이 걷는 것이다.
-한 번도 가보지 못한 유럽 대륙 어딘가에서 새벽에 가까운 아침을 맞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