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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QP May 24. 2023

새로운 소설을 찾아서- 미셸 뷔토르 (2)

   그렇지만 자칫 지루했던 글 중에도 드문드문 흥미롭게 읽히는 구석이 끼어있는 법이다. 그것은, 비록 내가 책을 펼쳐 들며 예상했던 바와는 다르지만, 그럼에도 해당 소-주제에 대한 작가의 사유와 서술에의 노력이 함유되어 있기에, 나로 하여금 생각지도 않았던 주제로의 사색으로 향하게 하는 "선조적"(이 역시 작가의 단편 <사물로서의 책>에서 따온 표현이다)인 독서의 장점이라 하겠다.


   한 가지 예를 들면 순서상의 세 번째 글로서 22p부터 시작하는 <소설과 시>라는 단편이 있다. 여기서 작가는 소설과 시라는 문학의 이분에서 출발하여, 시와 대비되는 소설에 대해 어쩌면 아직도 습관적으로 제기될 수 있을 비판점을 내보이고, 이어서 시로 대변되는 문학의 일반적 성격과 그것의 출현에 대한 일련의 역사적 분석을 수행하고, 마지막으로 그제까지의 분석을 바탕으로 소설의 형식을 옹호하는 데 이른다.


   담고 있는 내용뿐만 아니라 그 짜임에 있어서도 대단히 인상 깊은 이 글을 쓰여진 순서에 발맞추어 따라가 보자면 당초 소설에 대한 비판이 무엇이었냐는 질문에 맞닥뜨리게 된다. 그것은 27p부터 인용되는 앙드레 브르통의 첫 번째 <초현실주의 선언>에서 발췌한 것으로, 거칠게 요약한다면 - 그 매 부분이 귀중하리 여겨질 시와는 다르게 소설에서는 그 밖에도 '사실주의'와 특히 '묘사'로 점철된 진부한 부분들이 산재하며 본인은 그것을 읽기를 거부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나는 그의 방에 들어가지 않을 테니까." 이곳에서 뷔토르가 파악한 핵심은 다음의 이분법이다. 즉 "근본적인 차이가 있는 두 종류의 순간"인 첫째, "흥미있고 빛나는 순간으로 '결정화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과 둘째, "아무런 가치가 없는 순간으로서 언급할 필요도 없는 것"이 있다. 그리고 바로 이 지점에서 뷔토르는 문학의 결정적(definitive)인 성질에 다가간다.


    단적으로 말해 문학은 일상의 언어와는 구분되는 언어이다. 그것이 근대 이전 정형시의 운율(곧 물리적 형식)이건 19세기 이후로 등장하는 순수 의미적 형식(작가의 표현을 따르자면 이미지)이건 시는 인식에 즉각적으로 분별되어 나타난다. 32p에서 그가 쓰고 있듯이, "한 편의 '시'는 그 의미를 이해하기 전에 이미 다른 것들과는 달리 제시되는 텍스트"인 것이다. 이 마땅한 결론에 나 역시 전적으로 동의한다는 점을 미리 언급해 두고서, 이어지는 대목은 굉장히 흥미로운 것으로, 그곳에서 작가는 문학의 본질적인 성격에 대한 역사적/사회적 분석을 수행한다. 요컨대 모든 사회에는 두 부류의 이야기가 있다. 하나는 일상의 사소한 이야기들인데 문자 그대로 매일같이 새롭게 생성되며 그 때문에 오래도록 보존되지 않고 내일의 그것을 위해 지워져 자리를 마련해야 하는 것들이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각각의 사회에는 보다 영속적인 이야기가, 그 사회의 해결하기 곤란한 마찬가지로 보편적인 문제들에 대한 설명을 가능케 하는 고정된 이야기, 곧 신화가 존재한다. 이때 전자의 다변성과 후자의 항구성으로 말미암아 후자의 "성스런 언어"는 일종의 참조점으로 작용하는데, 그리하여 신화는 "세속적 언어"를 위한 보증을 서고, 뷔토르에 따르면 다음과 같이 정의될 수 있을 원시 사회에서 "그 역할을 완벽하게 수행하고 세속적 세계의 완벽한 안정을 보장"하는 것이다(여기서 또 다른 재미있는 책, 나는 조르주 귀스도르프의 <신화와 형이상학>을 떠올린다. 한 번쯤 읽어보시길). 그런데 우리가 태어나서 저절로 알게 되듯이 뭇 사회의 신화들은 실상 영속하지 않았다. 어떠한 이유에서였건 신화들은 저마다의 절대성을 상실하였고 이어서 혼란이, 무질서가 도래하였다. 그리고 작가가 주장하는 바로 이러한 공백에서 시/문학은 출현했던 것이다, "잃어버린 황금 시대를 재건하려고", "성스런 세계에 대한 향수 속에서".


   그러므로  근본에서 문학은 일상을 벗어나 '중요한 순간'들에 관계해야 한다. 하지만 논의의 시발점으로 돌아와 과연 소설은  앞에 떳떳할  있는가? 우리들 독서의 경험을 돌이켜보더라도 소설의 많은 부분은 대체로 평범한 사건들에 대한 범상한 서술로써 이루어졌음을 부정하기 어려울 것이다. 브르통과 당대의 비평가들이 구성한 상황의 맥락이며 소설을 향한 비판의 핵심, 이에 뷔토르는 단편의 마지막  페이지에 걸쳐 소설을 위한 최후의 변론을 시도한다.  앞의 전체를 통틀어서보다도 바로 이곳에서 독자의 면밀한 독서가 필요함에는 의문의 여지가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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