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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꼭또 Jul 25. 2023

『제인 에어』 : 혁명시대의 신데렐라 (1)

    혁명의 시대 19세기 중반 1847년 살럿 브론테의『제인 에어: 자서전』(Jane Eyre: An Autobiography)』이 출판됩니다. 고아로 태어난 여 주인공이 온갖 어려운 역경을 극복하고 부유한 상류층 남자를 만나 결혼에 성공하는 신데렐라 콘셉이지만 진짜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인간이 성장할 수 있다는 믿음입니다. 어린 제인은 아무 힘이 없는 정신적 정서적 의존 상태로 삶을 시작하지만 성인 제인은 자신의 삶을 스스로 주도하고 사랑하는 사람의 삶까지 바꾸는 힘을 가진 상태로 변화합니다. 이 작품의 진정한 주인공은 온갖 고난 속에서도 타협을 거부하며 개인의 존엄성을 지켜 자신의 힘으로 마침내 승리하는 인간의 정신입니다. 낭만주의 시대정신이 반영된 혁명적인 스토리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 인간정신의 소유자가 바로 남성중심사회의 억압과 편견의 희생자인 사회적 약자 여성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제인 에어』를 읽어야 하는 이유입니다. 더욱이 요즘처럼 힘이 들고 나만 불행하다고 느껴질 때 말입니다.  오늘은 수천년간 가부장 사회의 여성 지배 이념과 사회적 편견에 맞서 맨몸으로 싸운 여전사 제인 에어를 만나봅니다.  


 


  『제인 에어』의 작가 살럿 브론테는 1816년 4 월 성공회 성직자의  6남매 중 셋째 딸로 영국의 요크셔에서 탄생합니다.  그녀는 성공회 신부인 아버지의 영향으로 글을 깨우치기 시작할 무렵부터 성경과 친해지기 시작했으며 인간의 상상력과  감성 그리고  개인의 가치를 존중하는 낭만주의 정신이 반영된 시와 소설 등을 읽으며 성장합니다. 어려서부터 글쓰기를 좋아한 브론테는 그녀가 20 살 되던 해 자신이 쓴 최고의 시들을 모아 그 당시 영국의 계관 시인(왕실이 공식적으로 임명한 시인으로 워즈워스나 테니슨이 등이 포함)인 로버트 수디 (Robert Southey)에게 보냅니다. 말하자면 국가가 당대 최고라고 인정한 시인에게 평가를 요청한 것이죠.  수디는 그녀에게 다음과 같이 답장을 보냅니다. 언어에 대한 상당한 자질과 능력의 소유자임에는 틀림없으나 글로 먹고 살 생각은 포기하는 게 좋겠다고 조언합니다. 왜냐하면



  “문학은 여자의 직업이 될 수도 없고 되어서도 안 되기 때문이다.  ... 여성은 상상에서 즐거움을 찾아서는 안 된다.” (Literature cannot be the business of a woman's  life, and it ought not to be. ... You will not seek in imagination for excitement.”)  



그 당시 영국사회 지배계층의 여성에 대한 편견이 그대로 드러납니다. 그러나 브론테는 굴하지 않고 글을 썼고 자신의 작품들을 출판사에 보내기 시작합니다. 브론테는 여성으로서는 출판할 기회조차 얻을 수 없음을 깨닫고 자신의 이름을 남성을 연상시키는 커러 벨(Currer Bell)로 바꿉니다. 그러나 그녀의 작품들은 번번이 퇴짜를 맞았습니다. 그녀를 세상에 알린 『제인 에어』도 순탄치 않는 과정을 겪은 후에 마침내 1847년에 런던의 한 출판사에 의해 세상의 빛을 보게 됩니다. 나오자마자 그녀의 작품은 비평가들에 의해 그해 출판된 최고의 소설로 선정되는 등 대성공을 거둡니다. 오늘날 브론테에게 글을 포기하라고 조언 해 준 로버트 수디가 누구인지 모르는 사람은 많아도 『제인 에어』를 쓴 샤롯 브론테를 모르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이 작품은 전 세계에서 영화로만 총 33 편이 제작될 정도로  인기있는 고전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제인 에어』에 대한 본격적인 탐구는 주인공의 이름—제인 에어--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합니다.  제인은 남자이름 존의 여성형으로 뜻은 “신은 자비롭다”입니다.  남성이름 중 가장 흔한 이름이 존이라면 제인은 여성이름 중 가장 흔한 이름입니다. 또한 제인이 여성을 대표하는 명사로도 쓰이는 점을 감안하면 제인은 모든 여성을 지칭하는 의미도 됩니다. 다시 말해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특별한 사람이 아닌 평범한 여성이란 말입니다. 그런데 그녀의 성 에어가 눈길을 끕니다. 보통사람은 그냥 성인가 보다 하지만 영문학을 전공한 저의 입장에서는 그냥 지나칠 수 없습니다. 스펠링은 Eyre 이지만 발음은 Heir, Air 와 같습니다. Heir 는 후계자란 뜻입니다. 이런 뜻을 감안하고 제목을 다시 읽어봅니다. 제인 에어 (Jane Heir). 제인이 쓴 책을 읽는 독자의 입장에서 발음해 보면 “제인의 후계자”가 되는 셈입니다. 제인이 성취한 유산—읽기 전엔 그게 뭔지는 모를 지라도--을 물려받는 후계자라는 뜻 아닐까요?  공기(Air) 도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상징적의미가 있습니다. 공기는 우리 주변에 늘 있고 흔한 물질이지만 없으면 우리는 단 몇 분도 버티지 못하고 죽는 우리의 생명과 직결되는 생각해보면 정말 고마운 존재가 아닐 수 없습니다. 제인 에어 (Jane Air). 제인은 우리에게 그런 공기 같은 여자라는 의미입니다.


   『제인 에어』는 이렇게 시작합니다.


          그날 산책은 불가능했다. 우리는  정말이지 아침부터  앙상한 가지만

        남은 작은 키의 나무들로 빽빽한 숲 속을 한 시간 동안이나 헤매고 다녔다.

        그러나 저녁식사 이후 (리드부인은 같이 먹을 사람이 없자 식사를 일찍 끝냈고)

        차가운 겨울바람이 음산한 구름들을 몰고와 대지를 파고드는 비를 뿌리기

        시작하니 더 이상의 야외 활동은 불가능했다.

            난 기뻤다. 난 결코 오랫동안 걷는 걸 좋아한 적이 없다. 특히 날이

         추운 오후에는. 황혼이 내려 어둑해질 저녁 무렵 손가락과 발가락이 얼은

         채로 집에 돌아오는 것은 끔찍할 뿐이다. 게다가 보모인 베시의 꾸짖는

         소리는 나의 마음을 슬프게 했고 엘리자 존 조지아나 리드에 비해 왜소한

         나의 체격이 나를 주눅 들게 만들었다. (5)        


제인은 성인이 되어 어린 시절의 산책 경험을 회상하며 이야기하고 있지만 그녀가 말하는 추운 겨울 날씨, 음산한 구름, 세찬 비는 어린 제인이 처한 가혹한 환경을 상징하기도 합니다. 고아로 태어나 그녀를 유일하게 사랑했던 숙부마저 죽고 그녀를 돌보아주고 싶은 맘이 일도 없는 숙모 리드 부인 집에 얹혀살게 된 불쌍한 어린 제인. 게다가 그녀는  또래 사촌들에 비해 체격도 왜소합니다. 신체적인 장점도 없다는 말입니다. 성인 제인이 기억하는 부모 없고 체격도 왜소한 자신의 어린 시절은 한마디로 ”헤매고 있는“(had been wandering) 즉 방황의 세월입니다. 첫 문단의 시작과 끝을 장식하는 단어 불가능(no possibility, out of the question)이 우리의 시선을 붙잡습니다.  당시 어린 제인의 환경과 조건을 생각해보면 무엇이 가능하겠습니까?  

   

 


  늘 숙모와 사촌들은 물론 하인들에게 조차 멸시를 당하고 사는 어린 제인의 유일한 기쁨은 창문가에 만들어진 공간에 책상다리를 하고 앉아 그림책을 보는 일입니다. 어린 제인이 제일 좋아하는 책은 베윅의 영국 새들의 역사입니다. 창문가 좌석(window-seat)이라 불리우는 이 공간은 커튼이 쳐져있어 커튼 안으로 몸을 숨기면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고 책을 읽을 수 있고 또 창문 밖을 볼 수 있는 완벽한 안식처입니다. 제인에게 창문은 숨 막히는 공간에서 열린 공간으로 또 작은 세상에서 더 큰 세상으로 나가는 입구 같은 곳이며 미래의 비전이 펼쳐지는 통로입니다. 어린 제인이 특히 새 그것도 바다 새에 대한 그림을 좋아하는 이유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습니다. 넓은 공간에서 마음껏 나는 새들처럼 자신도  그렇게 원 없이 날라보고 싶은 생각 때문이었을 겁니다. 그녀는 그래서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그 당시 베윅만 내 무릎 위에 있다면 난 행복했다. 적어도 내 나름대로는 말이다.” (7)       

   

   그러나 19세기 빅토리아 시대 여성에게 강요되는 덕목은 바다 위를 자유롭게 나는 새의 모습이 아닙니다. 새라면 새장 안에 갇힌 새이며 늘 자신의 깃털을 정리하는 예쁜 새여야 합니다. 또한 자기 몸을 결혼 때까지 잘 보존하는 지조 있는 새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할 줄 아는 새여야 합니다. 제인은 자신이 어린 시절 늘 이런 교육을 받으며 자랐음을 암시합니다.     


       베시는 때때로 기분이 좋으면 겨울 저녁때 다리미 테이블을 육아 방에 있는

       화로근처로 갖고 가서 우리들을 자기 주위에 앉게 허락했습니다. 그녀가

       리브부인의 장식달린 드레스와 그녀의 수면용 모자를 다림질하는 동안

       우리에게 옛날 동화나 민담에서 가져온 사랑이나 모험의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그 출처는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파멜라, 모어랜드

       백작 헨리(원제는『모어랜드 백작 헨리의 역사』)이였습니다. (7)



파멜라는 1740년 샤무엘 리챠드슨이 발표한 소설『파멜라: 보상받은 정조』의 여주인공이며  18세기 버전의 신데렐라입니다. 온갖 불리한 여건 속에 놓인 어린 하녀인 파멜라가 부유한 상류층 주인의 끈질긴 성적 유혹을 뿌리치고 정조를 지킨 대가로 결국 자신의 마스터 결혼하게 된다는 내용이며 『모어랜드 백작 헨리의 역사』(1781)는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를 찬양한 소설입니다.   

   

   브론테가 여기에 파멜라를 등장시킨 건 상당히 의도적입니다. 빅토리아 시대 남성 중심사회에서 바람직한 여성상으로 정조를 지킨 18세기의 파멜라가 제시되지만 『제인 에어』 1 장 전체의 분위기는 이미 새로운 여성상의 출현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불리한 역경 속에서도 새장 안에 갇힌 수동적인 삶을 거부하고 미래의 비전을 꿈꾸며 시작에 언급된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꾸는 그런 여성상입니다. 이 이야기는 다음에 계속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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