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꼭또 Jul 27. 2023

『제인 에어』 : 시련은 있어도 실연은 없다 (2)

『제인 에어』(1847) 출판 당시의 원제는『제인 에어: 자서전』입니다.『제인 에어』 초판본을 보면 제목인 제인 에어 바로 아래 자서전(autobiography)이 위치하고 있습니다. 특히 예술적 서체를 선택하여 돋보이도록 인쇄된 자서전의 의미는 주목할 만한 가치가 있습니다.



자서전은 두 가지의 의미를 내포합니다, 첫째는  이 글이  육체적 정신적으로 성숙한 제인 에어가 자신의 과거를 회상하며 쓴 글이라는 뜻입니다. 어린 시절에 있었던 경험들은 먼 과거의 일이지만 그 일을 해석하고 의미를 부여하는 일은 이미 어른이 된 지금의 제인이란 말입니다. 두 번째는 모든 자서전이 그렇듯이 이 자서전 또한 역경을 이기고 이룩한 성공에 관한 이야기이란 뜻입니다. 우리가 아는 문학사상 최초의 자서전 성 어거스틴의『고백록』(397-400)부터 벤자민 프랭클린의 『프랭클린 자서전』(1791)에 이르기까지 자서전의 기본 콘셉은 자신의 분야에서의 “시련극복 성공스토리”입니다. 성인이 된 제인이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쓴 글을 통해 후세에 꼭 전해 주고 싶은 석세스 스토리의 내용은? 고 정주영 회장의 자서전 제목에 영감을 얻은


   “시련은 있지만 실연은 없다”입니다.


그러나 이야기의 포인트는 사랑의 성공이 아니라 그 성공을 이끈 “나”의 역할입니다. 다시말해 그 남자(로체스터)도 나를 사랑하며 나를 원했지만 결국 마지막에 둘의 사랑의 결실을 맺게 한 주체는 “그”가 아닌 “나”였다는 말입니다. 브론테는 제인의 사랑이야기를 전하고 있지만 진짜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여 주인공의 성공 유산--독립, 존엄, 주도의 가치—입니다.  

  

    제인은 의심할 여지없이 신데렐라와 파멜라의 문학적인 후손입니다. 모두 불행으로 인생을 시작합니다. 그러나 주목할 만한 다른 점이 하나 있는데 바로 외모입니다. 신데렐라 모티브로 창작된 이야기의 여주인공의 첫 번째 조건은 미모입니다. 최소한도 『킹더랜드』의 여주인공인 윤아 정도의 미모는 갖추어야 되지 않을까요? 부모도 없고 돈도 없는 상태의 신데렐라가 얼굴마저 “음 건강은 하네” 급이라면 어떤 재벌 아들이 또 어떤 왕자가 데려가겠습니까? 18세기 영국 판 신데렐라인 파멜라의 주인 미스터 비(Mr. B)의 인생목표를 단번에 “하녀와의 하룻밤”으로 만든 계기 또한 다름 아닌 파멜라의 성적매력입니다. 그러나 불쌍한 우리의 제인은 모든 여주인공들이게 무조건 주어졌던 아름다움을 선사받지 못하고 태어납니다. 소설에서 그녀를 표현하는 형용사는 평범한 (plain)이며 제인 스스로는  본인을 불쌍한, 눈에 띄지 않는, 소박한, 그리고 작은 ("poor, obscure, plain and little“)아이로 묘사합니다. 특히 브론테는 제인의 외모를 사촌인 조지아나의 인형같은 미모와 비교하여 여주인공의 평범성을 더욱 강조합니다. 신데렐라의 미모를 돋보이게 하기 위해 그녀의 이복자매들을 어글리한 추녀로 설정한 원조 『신데렐라』를 의도적으로 뒤집어 놓았습니다.    


   제인은 이쁘지도 않고 부모도 돈도 없이 출발합니다. 그녀가 믿을 유일한 희망은 오로지 자기 자신 뿐이라는 말입니다. 게다가 세상은 여성에 대한 편견만큼은 한도가 없었던 영국의 빅토리아 여왕의 시대입니다. 어린 제인은  아프리카 정글에 부모 없이 버려진 작은 사슴새끼나 다름없었습니다. 그러나 제인은 딱 한 가지 장점이 있습니다. 바로 그녀의 열정입니다. 『제인 에어』 1 장에서 벌어진 사촌과의 싸움을 다룬 에피소드는 제인의 성격을 잘 보여줍니다. 창문가 좌석에서 책을 읽는데 사촌인 존  리드가 들어옵니다. 어린 제인 보다 나이가 네 살 많고 덩치도 큰 존은 이 집 주인의 아들입니다. 군 식구에 불과한 제인이 언제나 미웠던 존은 어린 제인에게 시비를 겁니다. “우리 집에서 우리 엄마 돈으로 입고 먹는 돈 한 푼 없는 거지 주제에 감히 우리 소유의 책을 맘대로 읽어?” 그는 제인에게 책을 빼앗아 그녀에게 사정없이 던집니다. 책에 머리를 맞은 제인. 머리에서 피가 흘러 목덜미를 타고 내려갑니다. 신체적으로 압도적 불리한 위치이지만 제인은 굴하지 않습니다. “넌 사악하고 잔인한 아이야. 넌 살인자 같애. 노예를 부리는 반장, 로마의 황제들 같애!” 제인은 이렇게 외치며 존에게 맞섭니다. 이 말에 약이 오른 존은 본격적으로 제인에 달려들어 제인의 머리채와 목덜미를 움켜쥡니다. 제인은 피가 흐르는 가운데에서도 필사적으로 반항합니다. 존은 제인을 쥐새끼라고 부르며 허우적댑니다. 사태가 존에게 불리하게 돌아가자 주위에 있던 엘리자와 조지아나가 엄마를 부르러 갑니다. 이제 존의 원군이 도착했고 그 중 한명이 이렇게 말합니다. 성인이 된 제인의 마음속에 아직까지 새겨져 있는 표현입니다.


     “저렇게 열정적인 장면을 본적이 있어?”

    (Did ever anybody see such a picture of passion?) (9)


제인의 성격을 표현하는 한 단어는 “열정”입니다. 어린 제인의 모습은 힘없이 작은 어린 사슴을 떠올리게 하지만 그녀의 열정만큼은 아프리카의 벌꿀 오소리입니다. 그녀가 자기보다 몇 배나 큰 존을 상대로 싸우는 모습은 70 센티 정도의 작은 몸집으로 표범이든 사자이던 독사이던 상대 불문,  크기 불문 돈 캐어 (don’t care) 정신으로 죽기 살기로 싸우는 정글의 전사 벌꿀 오소리를 연상시킵니다. 그때 지원군이 없었다면 존은 처참하게 패했을지도 모릅니다. 다음은 하녀와 씩씩거리는 제인과의 대화 내용입니다.   



     부끄러운 줄 알아야지. 어린 신사를 그렇게 때리다니. 참 기가 막히네.  

     너를 돌보아주는 마님의 아들이자 너의 주인(master)이잖아.      

     주인? 어떻게 제가 내 주인이 될 수 있어? 내가 하인이야?

     아니지. 넌 하인보다 못해. 왜냐하면 넌 니 밥값도 못하잖아. (9)   




이 사건으로 어린 제인은 붉은 방—크리스천 컨셉의 지옥--에 갇히는 벌을 받습니다. 창문이 있는 감옥에서 창문이 없는 독방으로 이감된 셈입니다. 외부세계와 완벽하게 차단되어 유일한 낙인 창문마저 빼앗긴 공간에 갇힌 어린 제인. 성인 제인은 자신의 어린 시절을 이렇게 기억합니다.  


     “나는 압제에 시달렸고 숨이 막혔으며 나의 인내심은 바닥이 났다.” (14)

      (I was oppressed, suffocated; endurance broke down.)



그러나 제인이 갇힌 붉은 방은 어린 제인에게 지옥같은 외숙모의 집에서 탈출할 기회를 제공합니다. 그녀는 붉은 방에 갇혀 병에 걸리는데 리드부인은 이것을 기회로 제인을 집에서 쫓아내고자 합니다.


   이제 어린 제인의 인생에 두 번째 여정이 시작됩니다. 제인은 교육시설이 포함된 고아원 로우드로 보내집니다.  말로만 성경의 가치를 외치는 가짜 크리스천들과 “인간은 빵만으로 살 수 없다”는 성경의 가르침을  굶주린 아이들의 먹을 것을 빼앗는데 사용하는 위선적인 크리스천들이 바퀴벌레처럼 득실대는 곳으로 어린 제인이 성장하기에 결코 만만치 않은 환경입니다.



그러나 제인은 자신의 열정을 이곳에 와서 자신을 교육하는데 분출합니다. 또한 이곳에서 좋은 사람들을 만나 지적으로 영적으로 성장하게 됩니다. 그 중 한명이 고아원 교사 미스 템플(Miss Temple)입니다. 제인을 유해조수 같은 어른들로부터 보호하며 제인에게 교육의 중요성을 일깨워준 장본인입니다. 그래서 그녀의 이름을 “템플”로 정했나 봅니다. 요즘도 템플은 템플스태이 프로그램으로 심신을 수련하는 장소 아닌가요? 또 한명이 제인의 베프가 된 제인과 같은 처지의 고아소녀인 헬렌 번즈입니다. 독립심이 무척 강한 번즈는 제인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만일 모든 세상이 너를 미워하고 네가 사악하다고 믿어도 너 자신의 양심이

     너를 인정하고 너를 죄가 없노라고 선언하면 너는 친구가 없지 않을 거야. (58)  



번즈의 충고의 핵심은 우리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다른 사람이 나를 어떻게 평가하고 있는가가 아니고 내가 내 자신을 어떻게 평가 하느냐 라는 겁니다. 내 스스로 내가 나를 인정하는 게 먼저라는 말입니다. 이를 번즈는 자신의 양심이라 표현했는데 다시 말하면 스스로 내가 나에게 떳떳한 가입니다. 윤동주시인의 시처럼 “스스로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이 살았나?”를 반문하라는 겁니다. 그 대답이 예스라면 그 무엇도 두려울 필요가 없다는 말입니다. 질문도 쉽지 않고 대답도 쉽지 않습니다. 브론테는 우리 삶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결국 “나의 양심”임을 강조하는 겁니다. 제인은 이렇게 대답합니다.


     맞아. 나도 나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해야만 하지.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부족해.

     다른 사람들이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면 난 차라리 죽을 거야. 고독하게 남겨져

     미움 받으며 사는 삶 난 참을 수 없어.  너, 미스 템플, 그리고 그 누구라도  

     내가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의 진짜 사랑을 얻기 위해서라면 난 내 팔이 부러져도

     좋고 황소가 나를 공중으로 날려 보내도 좋고 발길질하는 말의 뒤에 서서 내 가슴         을 말 발굽에 맡길 수도 있어  (58-9)



사랑받고 싶은 제인의 간절함이 전달됩니다. 제인은 나도 중요하지만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의 마음도 얻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나”를 지키면서 또 다른 사람과 특히 남성의 사랑을 얻는 일은 사실 그리 쉬운 일이 아닙니다. 나를 지키려면 혼자 사는 게 제일 속 편합니다. 만일 결혼했다면 나를 지키는 길은 (몇년 전 연기생활을 위해 TV로 복귀한 모 탤런트처럼) 이혼일지도 모릅니다.  제인이 자신의 존엄성을 유지하면서 사랑도 성취해나가는 과정은 다음에 계속 하겠습니다.   


위에 인용한 헬렌 번즈와 제인의 대화의 원문입니다.


If all the world hated you, and believed you wicked, while your own conscience approved you, and absolved you from guilt, you would not be without friends.

"No; I know I should think well of myself; but that is not enough: if others don't love me I would rather die than live--I cannot bear to be solitary and hated, Helen. Look here; to gain some real affection from you, or Miss Temple, or any other whom I truly love, I would willingly submit to have the bone of my arm broken, or to let a bull toss me, or to stand behind a kicking horse, and let it dash its hoof at my chest--"



작가의 이전글 『제인 에어』 : 혁명시대의 신데렐라 (1)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