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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꼭또 Aug 08. 2023

『제인 에어』: 샤롯 브론테의 성 평등 결혼관 (3)

 19세기 이전 영국에서의 결혼은 사랑보다 비즈니스 딜이나 신분상승 기회였습니다. 사람의 인권과 감정을 중요시하는 낭만주의 시대(1798-1837)가 도래하자 사랑 이외의 목적으로 하는 결혼은 비도덕적인 결합으로 비난 받기 시작합니다. 1837년 빅토리아 시대가 시작되면서 중매결혼이 서서히 자취를 감추고 연애결혼이 대세가 됩니다. 그러나 가부장적 신분 사회인 그 당시 깨지지 않는 불문율들이 있었습니다. 하나는 결혼은 반드시 같은 계층 내에서만 해야하며 (물론 다 지켜지지는 않았지만) 또 하나는 결혼 후 여성은 남성의 충실한 종이나 다름없는 생활을 강요받는 것입니다. (출처 『빅토리아 시대의 결혼』셰릴 앤 맥도넬 저) 그 당시 모든 지식인들이 소외받는 계층에 대한 관심과 인권에 대해 이야기 할 때 알게 모르게 여성이 받는 차별 문제를 꺼낸 작가가 있었습니다. 바로 샤롯 브론테입니다. 작가는 1847년 에 발표한 제인과 로체스터와의 결혼이야기를 통해 새로운 결혼의 모델을 제시합니다. 결혼은 첫째 사랑을 바탕으로 두 번째 신분 관계없이 세 번째 완벽한 평등상태로 이루어져야 하는 영혼과 영혼의 결합임을 천명합니다. 『제인에어』를 영국 초기 페미니스트 소설이라 부르는 이유입니다. 오늘은 샤롯 브론테의 성평등 정신에 입각한 결혼관에 대해 알아봅니다.

   

   고아원 기숙학교인 로우드에서 6년간의 교육을 마치고 같은 시설에서 2년 간 선생으로 일하고 있던 제인은 입주 가정교사(governess)를 구한다는 한 가정의 광고를 보고 이력서를 보내 마침내 자신의 첫 직업을 갖게 됩니다. 제인의 세 번째 여정이 시작되는 곳이며   로체스터 소유의 대저택 쏜 필드(Thornfield)입니다. 쏜 필드에서 일하게 된 제인에어는 고용된 후 3 개월이 지난 시점에 자신의 고용주인 로체스터와 첫 만남을 가게 됩니다. 서로가 누구인지 모르는 상태로 여행에서 돌아온 로체스터는 말을 타고 자기 집으로 향하고 있었고 제인은 저택 주변의 숲속 길을 산책하고 있었습니다. 다음은 두 사람의 역사적 첫 만남의 장면입니다.       


그는 지나쳤고 나는 내 갈 길을 갔다. 몇 발자국 가서 나는 뒤돌아보았다. 미끄러지는 소리와 함께 그가 이런 맙소사하고 외쳤다. 철퍼덕하고 넘어지는 모습이 내 눈에 들어왔다. 그와 말은 도로 위에 덮여있는 얇은 얼음 막 위에서 함께 미끄러진 것이다. . . .  개가 넘어진 사람과 말 주변에서 끙끙대다 나에게 달려왔다. 개가 할 수 있는 일은 그 뿐이었다. 주변에 아무 도움을 청한 사람도 없었으니 말이다. 난 개를 따라 방문객에게 걸어갔다. 그는 넘어진 말로부터 벗어나려 애쓰고 있었다. 말은 엄청 버둥거렸다. 그가 많이 다치지는 않은 것 같았다. 그러나 난 “다치셨나요?” 하고 물어보았다.  (96)  



겨울철 저녁 얼어서 미끄러워진 길에서 말 타는 사람들이 흔히 겪을 수 있는 낙상 사고를 통해 둘이 만나는 대목입니다. 이 장면은 앞으로 전개될 두 사람의 관계에 대한 복선이자 은유적으로 표현한 작가의 결혼관입니다.    

  

 


   말을 탄 남자와 걸어가는 여자. 말 탄 남자는 상류층 귀족이며 걷는 여자는 신분이 낮은 평민입니다. 이 차이는 둘의 서로 다른 계급만을 의미하는 게 아닙니다.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차차 밝혀지지만 둘의 의식 또한 말 탄 사람과 걷고 있는 사람의 시선 차이만큼이나 다릅니다. 말 타고 가다 넘어진 위기에서 제인의 도움을 받은 로체스터는 제인에게 호감을 갖기 시작하다 사랑에 빠집니다. 그가 제인을 대하는 자세는 비유하자면 언제나 말 타고 있는 자세입니다. 위에서 내려다보면서 고압적으로 명령하고 지시하면서 내말에 토달지 말라는 식입니다. 그러나 작지만 타고난 벌꿀 오소리 정신의 제인은 결코 주눅 들지 않고 당당하게 응합니다.    


   

내가 가난하고 이름없고 평범하고 작다고 영혼도 없고 심장도 없는 줄 아세요? 틀렸어요. 당신이 가진 만큼 영혼도 있고 심장도 있어요. (216)



돈 지위 외모 키 같은 계급장을 떼면 당신이나 나나 똑 같은 하나의 영혼일 뿐이라는 말입니다. 한 사람의 평가는 그 사람이 지닌 영혼의 무게나 가치로 결정되어야 한다는 거죠. (영혼이 가벼운 사람들은 명품을 좋아합니다. 구멍난 영혼을 명품으로 가리려는 겁니다). 로체스터는 점점 제인의 예술성, 솔직함, 그리고 독립적인 마인드에 맘이 끌리고 그는 마침내 자신의 심장과 그녀의 심장이 하나의 줄로 연결되어 있는 것 같다는 고백을 하기에 이릅니다.  

   


   제인의 입장에서보면 로체스터도 매력있는 남자입니다. (그의 과거를 완전히 알기 전에 말이죠.)  그는 꽃미남  타입도 아니고 영웅적인 모습의 신사도 아닙니다. 그러나 체격이 듬직합니다. 다크 페이스, 단호한 모습, 고집스러운 이마, 분노의 빛이 서린 듯한 눈을 가진 40 대 정도의 남자입니다. 게다가 말을 타고 대저택으로 향하는 남자인데  요즘 개념으로 말하자면 고급 외제차타고 삼청동 고급 주택으로 들어가는 격 아닙니까? 그는 말에 떨어져 짜증을 내며 거친 태도를 보였지만 제인은 오히려 그런 태도가 더 마음이 편해졌다고 말합니다. 첫인상이 맘에 들었다는 이야기입니다. 나중에 알고보니 로체스터는 자기 직장인 쏜 필드의 주인이고 자신이 가르치는 아델 (로체스터와 프랑스 오페라 여가수 사이에 난 아이로 추정)의 보호자입니다. 그는 늘 이방인 취급을 받았던 제인에게 처음으로 정서적인 편안함과 유대감을 느끼게 배려해준 첫 번째 남자였습니다. 제인은 그런 로체스터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당신의 친절 너무나 감사합니다 로체스터씨. 당신에게 되돌아 온 것이 이상하리 만큼 기쁩니다. 당신이 어디에 있든지 당신은 나의 집, 나의 유일한 집입니다. (209)



사실상 사랑의 고백입니다. 그녀는 마음속으로 편안한 남자, 따듯한 남자, 동정심 많은 남자, 그리고 그녀가 완벽하게 동료의식을 가질 수 있는 남자를 찾고 있었습니다.  제인은 이제 그 남자가 바로 로체스터임을 확신합니다.   

   

   서로의 사랑을 확인한 로체스터와 제인. 이제 결혼하고 행복할 일만 남았습니다. 그러나  인생이 어디 그리 쉽습니까? 이제 앞에서 예고했던 로체스터가 말에서 떨어지는 바로 그 순간이 옵니다. 어둠 속에 숨어 있었던 로체스터의 어두운 과거가 꿈틀거리기 시작합니다. 로체스터와 제인이 결혼식을 올리는 교회에서 둘의 결혼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들이 나타납니다. 로체스터씨는 이미 결혼을 한 사람이므로 제인과의 결혼은 성립될 수 없다는 주장이었습니다. 상속자 명단에서 빠지는 차남으로 태어난 로체스터는 재산과 사회적 경제적 신분상승을 목적으로 돈 많은 집의 딸인 버사 메이슨을 아내로 맞이했었죠. (그러나 로체스터는 장남이 죽자 재산을 물려받아 결국 부자가 됩니다. 재신을 노리고 결혼할 필요가 없었는데 말입니다) 결혼을 해보니 버사 메이슨은 알코홀릭에다가 헤픈 여자였습니다. 둘의 결혼생활이 결코 행복할 수가 없었죠. 그러다가 로체스터의 처는 정신병에 걸려 폭력적이고 짐승같은 괴물로 변해 버립니다. 그녀와  정상적인 결혼 생활이 불가능했고 또 이혼도 쉽지 않는 그 시절.  로체스터는 그녀를 쏜 필드 저택의 3 층에 가두어 놓고 외부와 접촉을 차단시킵니다. 가장 행복해야할 날에 가장 불행해진 제인 에어. 절망한 제인은 용서를 비는 로체스터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이 운명은 제가 당신에게 준 것도 아니고 내 자신도 받아드릴 수도 없습니다. 노력하고 견디는 게 우리의 삶입니다. 노력하고 견디세요. 내가 당신을 잊기 전에 당신이 나를 잊을 거예요. (270)   



그리곤 제인은 무작정 쏜 필드를 나와 버립니다.

   모톤이라는 낯선 곳에 도착하여 방황하며 거의 빈사 상태에 빠지는 제인에게 새로운 남자 존 리버스가 나타납니다. 그는 이 지역의 목사이며 여러모로 로체스터와는 반대의 성격을 가진 인물입니다. 그는 냉정하고 차분하며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계산적으로 관리하는 스타일의 인물입니다. 목사로서의 자신의 임무에 충실하며  동시에 자신의 야망을 숨기지 않는 사람입니다. 선교를 위해 인도에 가기로 계획한 그는 자신의 임무를 도와줄 와이프가 필요했고 마침 나타난 제인에게 청혼을 합니다. 그녀를 선택한 이유는 사랑이아니라 존경하기 때문이며 무엇보다 와이프로부터 제공되는 24 / 7/ 365 서비스가 필요하기 때문이라고 솔직하게 말합니다. 리버스 목사는 제인에게 성경이 부여한  도덕적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감정 따위는 무시하라고 강요합니다. 낭만주의 시대의 최고의 가치인 감정을 포기하라는 거죠. 결혼을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으로 생각하는 목사를 누가 좋아 하겠습니까? 제인에게 리버스의 청혼을 거절하는 일은 그리 어려운 결정은 아니었을 겁니다. 더군다나 제인의 가슴 속에는 자신의 첫사랑인 정열과 감성의 남자 로체스터씨가 아직도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이때 제인은 기적처럼 꿈을 꾸는데 쏜 필드에 관한 불길한 꿈이었습니다. 그녀는 다시 쏜 필드로 달려갑니다.       

   

   다시 돌아온 쏜 필드는 자신의 꿈에서 본 것처럼 폐허로 변해있었습니다. 로체스터의 첫 부인인 정신병자 메이슨이 저택에 불을 질렀기 때문입니다. 주택이 화염으로 뒤덮인 가운데 버사 메이슨은 3 층 높이의 자신의 방에서 몸을 던져 자살합니다. 로체스터가 제인과 결혼하도록 길을 열어준 셈입니다. 로체스터는 불 속에서 그녀를 구하려다 자신의 시력도 잃고 한 손도 잃게 됩니다. 이때 제인이 그 앞에 다시 나타나 그의 손을 잡아 줍니다. 이때의 제인은 더 이상 가난한 처녀가 아닙니다. 그녀는 삼촌으로부터 2만 파운드 재산(지금 돈으로 약 224 만 달러)을 상속받은 상태였기 때문입니다. 사실상 로체스터가 처음 등장하면서 말에서 떨어진 후 제인의 도움을 받는 장면이 마지막에 다시 반복되는 셈입니다. 제인과 로체스터와의 결혼으로 막을 내리는『제인 에어』. 고아로 혼자 가난하게 살며 늘 자신은 영혼뿐임을 강조 했던 제인 에어.  집, 눈, 손, 글자 그대로 모든 것을 잃은 로체스터. 그 역시 마지막에는 영혼만 남았습니다.  로체스터와 제인의 결합은 이렇게 두 영혼이 평등해진 후 이루어집니다.『제인 에어』출판후 13년이 지난 1860년에  영국 여성의 참정권운동이 시작됩니다. 성 평등을 향한 첫 걸음이 한 천재의 외침 이후에 시작된 건 결코 우연이 아닙니다.

   

   마치기 전 질문을 하나 드립니다. 로체스터는 화재로 눈과 팔을 잃었습니다. 왜 눈과 팔일까요? 왜 다리가 아니고 얼굴이 아닌 하필이면 눈과 팔을 부상당하게 만들었을까요? 책을 읽는다는 건 이렇게 질문을 하는 과정입니다. 눈과 팔의 손실은  『제인 에어』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키를 쥐고 있는 표현입니다. 이는 성경에서 유래한 구절이며 성경의 이해는 우리에게『제인 에어』를 또 다른 각도에서 즐기게 만들어 줍니다. 성경과 『제인 에어』는 우리의 다음 주제입니다.    



위에서 인용한 원문을 첨부합니다.  


He passed, and I went on; a few steps, and I turned: a sliding sound and an exclamation of "What the deuce is to do now?" and a clattering tumble, arrested my attention. Man and horse were down; they had slipped on the sheet of ice which glazed the causeway. The dog came bounding back, and seeing his master in a predicament, and hearing the horse groan, barked till the evening hills echoed the sound, which was deep in proportion to his magnitude. He snuffed round the prostrate group, and then he ran up to me; it was all he could do,--there was no other help at hand to summon. I obeyed him, and walked down to the traveller, by this time struggling himself free of his steed. His efforts were so vigorous, I thought he could not be much hurt; but I asked him the question -

"Are you injured, sir?" (96)



Thank you, Mr Rochester, for your great kindness. I strangely gld to get back again to you; and wherever yiou are is my home--my only home (209)  


Do you think, because I am poor, obscure, plain, and little, I am soulless and heartless? You think wrong!--I have as much soul as you,--and full as much heart! (216)


“Mr. Rochester, I no more assign this fate to you than I grasp at it for myself. We were born to strive and endure - you as well as I: do so. You will forget me before I forget you.” (2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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