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용산참사

뉴타운에서 도시재생까지 2

2009년 1월 20일 아침, 도시환경정비사업(도시정비형 재개발사업) 용산4구역 철거현장에서 6명의 국민이 유명을 달리했다. 용산참사로 불리는 이 비극은 서울시와 용산구청의 방관과 경찰의 과잉진압이 맞물려 이루어진 비극이었다. 근본적으로 한국 도시재개발사업의 문제점을 해결하지 못한 채 추진하여 발생한 반문명적인 사건이기도 했다.

용산4구역은 도시기능의 회복이 필요한 지역에서 도시환경을 개선하기 위하여 시행하는 도시정비형 재개발사업 지역이였다. 이곳은 도심지였지만 건물이나 가로환경 등이 상당히 노후되어 도심활력 증진 차원의 재개발사업은 필요했다. 문제는 방법론이었다. 용산4구역의 개발주체(정비사업조합, 시공사 등)는 개발이익에만 관심을 둔 채 주택 및 상가임차인들에 대한 보상 문제는 등한시 했다.


용산4구역은 40층 규모의 주상복합 아파트 6개동을 짓는 용산의 핵심지역 가운데 하나로, 시공사도 삼성물산, 대림, 포스코 등 모두 대형건설 사업자로 구성되었다. 당시 이 지역은 분양가상한제 미적용으로 예상분양가는 3.3㎡당 3천500만원대의 소위 노른자 지역이어서 막대한 수익이 보장되는 곳이었다. 그러나 용산4구역의 개발주체들이 개발이익의 극대화에만 중점을 둔 채 사업을 추진하였고, 다양한 이해관계자들(특히 상가세입자)과의 보상 문제의 조정을 외면한 채 개발속도만 내려 했다.

용산4구역의 개발이익은 엄청나 당시 상가세입자들의 요구사항을 해결하는데 부담이 없었다. 용산4구역 재개발조합이 발간한 관리처분총회 자료집을 보면, 상가세입자 보상금으로 300억원을 책정했다. 즉, 재개발조합도 이 정도를 비용을 지불해야만 상가세입자들의 생존권적 요구를 무마할 수 있을 거라고 판단했던 것이다. 그러나 실제 집행된 금액은 1/3 수준도 못 미치는 72억원 정도였다고 한다. 관리처분 총회자료집에 명시된 보상금만 집행했어도 용산참사는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용산참사가 발생한 용상4구역 외에도 많은 뉴타운사업과 재개발사업 지역에서 다양한 갈등과 분쟁이 일어났다. 집주인들은 뉴타운․재개발사업에 속았다고 땅을 치고 후회하면서 사업 취소를 격렬하게 요구했다. 이들은 뉴타운․재개발사업을 시작할 때 비용부담이 얼마나 될지 아무런 정보도 얻지 못한 채 백지상태에서 동의를 했다. 하지만 사업이 진척되면서 본인 소득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높은 부담금에 뒤늦게 속았다고 땅을 치거나 처음의 비용부담에 관한 정보와는 달리 주민부담금이 70%-80%까지 인상된 것에 분노했다.


그러나 당시 지방자치단체는 주민들의 정보공개의 요구, 합당한 사업성 분석 요구, 절차 준수 등의 지원행정 요구는 소극적으로 처리했다. 법원조차 주민부담금이 10% 이상 인상되는 사업변경이나 관리처분계획에는 반드시 조합원 3분의 2이상의 특별결의가 필요하다고 내렸는데, 당시 지방자치단체는 주민부담금이 30~40%씩 인상되어도 사업계획승인이나 관리처분계획을 인가해주고 있는 상황이었다.


주민들은 뉴타운사업과 재개발사업에 책임 있게 임하는 호민관을 갈망했다. 주민들이 책임행정을 하는 서민의 호민관을 갈망했던 이유는 이 사업으로 감당이 어려운 높은 부담금으로 쫓겨나지나 않을까 전전긍긍했기 때문이었다.


2011년 서울시장 재보권선거로 당선되어 서울시장으로 취임한 박원순 시장의 '뉴타운 출구전략'은 용산참사라는 사회적 아픔을 겪으면서 나온 시대적 과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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