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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의 도시, 프라이부르크

독일의 저비용 생태도시를 가다!

독일 남서부의 끝에 자리 잡은 프라이부르크는 관광 도시이자 생태 도시이다. 인구 21만 명의 이 도시는 1457년 창립된 프라이부르크 대학이 있으며 시 인구의 10%에 해당하는 2만 2000여 명의 학생이 있다. 전체 학생 수의 16%가량이 외국인으로 이 대학은 유럽에서도 손꼽히는 고등 교육기관이다. 프라이부르크의 최대 산업은 당연히 대학․연구산업이다. 또한 시 배후에는 슈바르츠발트(검은 숲)이라는 유명한 흑림이 자리하고 있어 많은 관광객들이 찾는 곳이다.


프랑스군 병영지를 스쾃하다


필자는 2012년 6월 2일 태양의 도시로 널리 알려진 프라이부르크 보봉 지구를 방문했다. 보봉 지구는 1945년 2차 세계대전 종전 후 전후 관리를 맡은 프랑스군이 주둔하는 병영지가 된다. 프라이부르크가 프랑스 국경에서 한 시간도 안 되는 거리에 있는 도시이고 2차 세계대전 당시 프랑스 군이 해방시킨 지역이기 때문이다. 고로 독일인들은 2차 세계대전의 패배를 연합군에 의한 나치 정권으로부터 해방이라고 부른다.


보봉 지구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1980년대와 1990대 초반 프라이부르크가 겪었던 극단적인 주택난(당시 주택난을 겪은 주민들은 혼돈의 시대였다고 증언한다)을 이해해야 한다. 당시 프라이부르크의 인구는 20만 명이 조금 안 되었지만 계속 인구가 증가했다. 특히 프라이부르크 대학의 학생 수가 급증함에 따라 주택난이 심각해졌다. 당시에도 휴양도시로 인기가 있어 연금생활자가 노후를 보내기 위해 유입되어 학생이나 사회적 약자를 위한 저렴한 주택이 전혀 여유가 없었다고 한다.


이런 사회적 배경 때문에 지불가능하고 안정적인 주거를 요구하는 학생들의 시위가 활발하게 일어났으며 때로는 빈집을 불법점거(스쾃)하는 일도 학생운동의 한 흐름이었다. 기숙사에 들어갈 수 없어 대학의 체육관에 침낭을 펴고 자는 학생도 있었다고 하니 주택난이 얼마나 심각했는지 알 수 있다.


1989년 독일 냉전의 산물이던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보봉 지역에 주둔하던 프랑스군의 철수가 가시화되기 시작하자 프라이부르크에서도 당시 주택난과 맞물려 ‘병영지를 주택으로’라는 슬로건으로 운동이 활발해졌다. 이러한 와중에 혈기 왕성한 학생들은 보봉 지구에 대한 토지 이용방법에 대해 상상력을 펼치기 시작했다.


학생들 중 보비 그라츠라는 건축학도가 프랑스군의 병사(주거)로 활용하고 있던 낡은 건물을 자신들이 입수해 리모델링 후 저렴한 임대주택과 분양주택으로 공급하는 방안을 내놓았다. 보비 그라츠의 생각에 동의하는 젊은이들과 사회적 약자들이 보봉 지구로 모여들었고 1991년 협동조합 '스스로 조직하고 속박당하지 않는 주거를 제공하기 위한 이니셔티브(SUSI)’를 설립하게 된다.     


1990년 말 창립한 SUSI는 프라이부르크 중심부에 있는 대학시설을 중심으로 활동을 해오다 프랑스군이 철수한 후인 1993년부터 ‘조용한 점거’를 시작했다. 애초에 프라이부르크 시행정은 SUSI의 이러한 활동에 호의적이지 않았다. 시는 보방 병영지를 일반 토지분양하고 싶어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SUSI의 활발한 활동 시민들의 지지로 프라이부르크 시의회는 SUSI의 활동을 추인하게 된다. ‘조용한 점거’를 한 지 2년 후인 1995년 SUSI는 이 건물의 소유자가 되었고 리모델링 후 주택으로 활용하게 된다. 태양의 도시로 발전하는 시작이었다.     

사진 속 공동주택은 프랑스군 막사였던 건물을 리모델링한 것으로 1993년 ‘조용한 점거’의 역사적 장소이다.


주민참여가 만들어 낸 탄소중립 생태마을


프랑스군이 철수하면서 프라이부르크는 독일 정부로부터 2천만 유로에 토지를 매입하면서 보봉 지구를 개발하기 시작했다. 세계의 환경수도라 불릴 만큼 친환경 도시개발사업에 적극적이었던 프라이부르크는 보봉 지구의 개발에도 생태적 도시계획을 도입했다.


3단계에 걸쳐 개발된 보봉 지구는 현재 5000명 이상의 주민과 600개 이상의 일자리가 마련되어 있다. 이 개발에서 가장 핵심은 바로 주민참여와 협동조합에 의한 개발이라는 점이다. 계획 당국인 프라이부르크시는 ‘계획하면서 배운다’를 도시계획의 기본 원칙으로 삼고 개발에 관한 다양한 주민들의 제안을 수용하고 주민참여를 확대하면서 주민참여 도시계획의 전형을 이루어냈다.


에너지 자립 계획과 추진은 보봉 지구의 주민조직인 포럼보봉과 프라이부르크시 프라이부르크 에너지회사(FEW)의 협력으로 이루어졌다. 1992년 시의회는 시에 의해 매각된 토지에는 에너지 사용량을 절감하는 주택만 지을 것을 의결했고 보봉 지구의 모든 주택은 최소한의 에너지 사용으로 거주가 가능하도록 지어졌다.


또한 보봉 지구 주택들의 외관은 다 다른다. 이는 독일의 택지개발 정책으로 인한 효과이다. 독일은 택지를 개발하여 신도시를 만들 때 토지를 분양받거나 임대받는 건축 주체들에게 동일한 디자인의 주택을 짓지 못하게 한다. 이러한 건축 가이드라인 덕분에 독일 신도시는 다양한 주택 생태계를 가지고 있다. 프라이부르크는 주택 디자인과 배치에 대해 단독주택을 금지하여 콤팩트한 도시로 만들되 4층을 넘는 건물은 금지한다.


보봉 지구에서 가장 알려진 공동주택이 바로 패시브하우스 공동주택 단지이다. 이곳이 바로 태양의 마을로 일컬어진다. 50채 이상의 패시브하우스(난방에너지 소비기준 15kWh/㎡이하) 주택들이 밀집해 있고 전기를 생산하는 주택도 100채 이상 된다. 보봉 지구를 다니다 보면 태양열 패널과 태양광 전지는 일상적인 도시경관으로 자리 잡고 있다. 특히 에너지 생산 주택은 태양열 패널 자체가 주택의 지붕이기도 하다.  

보봉 지구 내 에너지 생산주택으로 지붕이 태양열 패널로 건축되어 있다.


가장 큰 태양광 패널(143㎡)은 학생조합 건물 지붕에 설치되었으며 공용주차장의 지붕에도 태양열 패널이 설치되어 있다. 그리고 우드칩과 천연가스를 연료로 하는 열병합 발전소에서는 급탕과 이 지역 전기의 65%를 생산하고 있다.


보봉 생태주거단지의 실질적인 주체는 지자체나 기업이 아니라 주민참여 조직이며, 포럼보봉 등 주민 스스로 ‘계획하며 배우는’이라는 원칙 아래 협력과 참여를 통해 생태도시를 만들어 낸 것이다. 포럼보봉은 태양에너지를 주 에너지원으로 채택하고 대중교통 중심의 교통체계를 구축하며, 이곳에 자란 큰 나무는 가급적 손대지 않고 개발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고 있다. 또한 쓰레기 발생량과 물 소비량을 줄이고 생태순환을 위해 콘크리트를 활용하지 않는다는 규약은 시민의 자발적인 논의와 의견 수렴을 통해 개발과정에 있어 일관되게 지켜온 기준이자 원칙이다.     


잔디밭 위로 달리는 경전철 ‘트램’     


보봉 지구에는 생태학적 교통과 보행이라는 원칙을 도시계획에 적용하였다. 이러한 원칙 속에서 개발하여 보봉 주민의 50% 가까이가 자가용을 소유하지 않고 있다. 대신 편리한 대중교통 체계를 마련하였다. 주민들은 기본적으로 자전거를 이용하며 자전거가 안전하게 다닐 수 있는 자전거 길도 마련되어 있었다. 독일 주민들은 기본적으로 어릴 때부터 자전거를 타는 게 하나의 문화이다. 특히 어린아이가 자전거를 익숙하게 타기 위해 유아용 자전거가 있다. 이 자전거는 페달과 보조바퀴가 없이 아이가 두발로 끌고 다니는데, 이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어린이가 자전거를 배울 때 타는 유아용 자전거


자동차가 없는 가정은 지역 주차장에 주차할 경우 발생하는 주차비용을 절약할 수 있고 카 쉐어링 조합에 가입하여 필요할 때 자동차를 이용한다. 또한 프라이부르크 내 모든 대중교통 무료이용권을 받을 수도 있다. 이렇게 주민들은 자동차 때문에 지출되는 비용을 아껴 생활의 질을 높이는데 활용한다. 물론 일부 주민들은 차 없는 삶을 강요하거나 방문자 주차에 관한 어려움을 호소하기도 했지만 대부분의 주민들이 대체적인 만족감을 표시하고 있다. 그렇다고 자가용 소유를 하지 못하게 막는 것은 아니다. 자가용 소유자들은 공용주차장을 이용하거나 보봉 지역 밖에 주차하도록 하고 있다.     


이곳에서 가장 눈에 띄는 교통수단이자 도시경관이 바로 경전철 철로였다. ‘트램(Tram·전차)’이라 불리는 이 경전철의 철로는 일부 회전 구간을 제외하고는 잔디로 덮여 있다. 트램의 철로를 잔디로 덮은 이유는 3가지 효과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우선 도시의 경관 향상이다.

잔디로 덮인 경전철로는 도시의 녹지공간을 더욱 확보하여 도시의 녹색경관 향상에 도움이 된다.


둘째로 소음방지 효과이다.      

실제 잔디로 덮인 철로를 경전철이 지나갈 때와 잔디로 덮이지 않은 철로를 지나갈 때의 차량 소음의 차이는 상당히 컸다.


셋째로 투수효과이다. 즉 빗물 저장 창고의 역할을 하는 것이다.

독일은 특별도시계획법에 따라 빗물이 땅으로 스며들지 못하는 아스팔트 및 콘크리트 포장에 대해서 빗물이 스며들 수 있도록 철거 후 재시공을 명령할 수 있다. 보봉 지구에서 최초로 시작된 경전철 철로를 잔디로 덮는 방법은 프랑스 파리 등 서구 유럽에서 점차 보편화되었다.     

프라이부르크 보봉 지구를 운행하는 트램


협동조합주택으로 이루어진 보봉 지구


보봉 지구는 협동주택건설자 제노바주택조합(보봉의 기존 토지소유자들이 결성하여 만든 조합), 자발적으로 결성된 학생조합 그리고 주민조직인 포봉포럼이 핵심적으로 마을을 만들어가고 있다. 이들 조합과 주민들은 삶과 일의 균형과 사회적 집단 간의 균형을 이루는데 공통을 목표를 두고 있다. 그런 목표로 인해 개발 과정에서 주민들의 참여로 보봉 지구의 견고한 커뮤니티를 이룰 수 있었다.


보봉 지구 개발에서 중요한 또 하나의 특징은 건축에 든 모든 비용이 개별적 개발보다 주택건축조합 방식의 공동주택 프로젝트를 통해 훨씬 적게 들었다는 것이다. 이는 소득이 낮은 사람들도 자기 집을 갖거나 저렴한 임대료를 지불하고 거주할 수 있게 만든 배경으로 작용했다. 이렇듯 혁신적인 도시계획에 의해 건설된 마을인 만큼 젊은 사람들의 거주비율이 높았는데 보봉 지구를 방문하던 날에도 아이들을 자주 볼 수 있었다. 2002년 통계에 의하면 주민의 20% 이상이 10살 이하의 어린이였다.  


보봉 지구는 ‘물리적 환경’이란 하드웨어를 ‘소통과 참여’라는 소프트웨어를 통해 지속적으로 뒷받침했다. 무엇보다 도시개발 과정에서 발견되는 문제를 주민들의 참여를 통해 해결했다는 점은 주목할 필요가 있다. 보봉 지구는 우리가 모든 것을 적용할 수는 없지만 하나의 ‘모델구역(Model District)’이 될 수는 있다. 여기서 ‘모델’이란 생태적일 뿐만 아니라 사회·경제·문화적인 요소를 두루 갖춘 ‘지속가능한 발전 모델로서의 주거단지’를 뜻한다. 다시 말해 보봉은 그 계획과 건설 과정에 있어서도 새로운 방법론적 모델을 창조해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프라이부르크는 현재 재생에너지 정책, 대중교통 및 자전거 정책, 녹지보호 도시계획조례 등을 키워드로 삼아 탄소중립의 모범이 되는 세계의 환경수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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