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Buyoung May 25. 2022

Vivid한 단어 연대, Pastel의 단어 협력

국제개발현장에서 일한 한 꼭지의 만남.

“안녕하세요, 이번에 같이 연대해서 사업 같이 해보고 싶어 연락드렸어요, 협력하면 좋은 사업 진행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사무실에서 한 번 이야기 나눠보시면 어떠실지요?”




매년 6월과 7월, 제안서 제출 마감일을 앞두고 꽤 여러 곳에서 전화가 온다. 컨소시엄을 장려하는 사업, 컨소시엄이 필수 조건인 사업, 여러 사업의 선택지를 염두한 연락들이다. 후원금도 크지 않고, 사업도 많이 없고, 심지어 국제개발협력NGO인데 국가별 지부도 많지 않은  작은 기관임에도 파트너십을 맺자는 연락을 주는 상대 기관에 감사한 마음에, 버선발 마중을 나간다. 연간보고서, 분기별로 발행하는 뉴스레터, 사업 성과자료집, 사업 소개 리플렛. 겹겹이 우리를 소개할 수 있는 자료들을 준비하고, 더워지는 날씨에 오는 중 이미 지치지는 않았을까 시원한 커피도 올려놓는다. 같이 마실 커피도 한 잔.


(사무실에 방문한 상대기관) “저희가 정말 준비를 많이 했어요, 요즘은 워낙 컨소시엄 조건들이 많다 보니 저희가 여력도 안되고, 좋은 기관을 찾지 못해서 그동안 사업을 못했지만, 지역에서 조사도 열심히 하고, 기반도 많이 다졌어요.” 


(나) “기관에 연락 주셨을 때 저희 기관이나 사업에 대해 잘 알아보셨겠지만, 저희도 한 번 소개를 드려보고 싶어요. 그리고 정말 같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지 고민해보면 좋겠습니다.”


(상대기관) “뭐 여기야 워낙 사업 잘한다고 많이들 말씀하시니까요, 많이 가르쳐주시고, 일단 제안서 쓰면서 대화 나누면서 할 수 있는 일은 정리하면 되지 않을까 해요. 저희가 작성한 개요서 보내드릴테니 한 번 봐주시고, 제안서 경험 많으실 테니 수정해주시면 저희가 맞춰볼게요. 그리고 예산 부분은 먼저 제안 주시면 좋겠어요. ”


준비했던 커피 중 한 잔이 그대로 남았다. 벌컥 벌컥 들이마시면서, 미팅으로 보낸 한 시간 반이 그저 아까워 서둘러 책상으로 돌아간다. 미팅이 어땠는지 물어보는 연락에 그저 고개만 절래 절래, 이번에도 그랬냐는 듯, 수고했다는 답변만 돌아온다. 




왜 사업을 컨소시엄으로 하도록 했을까? 지원기관에서는 공모 요강을 만들 때 이런 뒷이야기들을 들어는 봤을까? 어떤 기관이 함께 ‘연대’해야, 사업을 모집하는 기관이 기대했던 목적을 달성할 수 있을까? 그 ‘연대’는 어떤 만남을 통해서 첫 단추를 여맬 수 있을까? 사업을 위한 연대, 그 조건을 구성하기 위한 가이드라인은 그 색채가 매우 강하고 뚜렷하지만, 연대를 기반으로 펼쳐 내야 할 협력과 그 역할은 흐릿하기만 한데, 그래도 괜찮은걸까?


한 번은 어떻게 타 기관과 연대하며 사업을 수행하는지 잘할 수 있었던 노하우와 진행하며 어려웠던 점들을 나누어 달라는 요청이 왔다. 열심히는 하지만, 여전히 부족하고, 특히 연대에 관해서는 어디서 자신감 있게 이야기 할 마음의 준비가 안되서 머뭇 머뭇했지만, 어쩔 수 없이 강의를 준비했다. 그러면서 지금 컨소시엄으로 진행하고 있는 사업에 우리 이 두 기관은 어떻게 만났나 돌아보았다.


사업은 2019년에 시작했지만, 기관 간의 첫 맛남은 2017년이었고, 양 기관의 대표님들이 서로 조우한 기간은 꽤 오래 전이었다. 사회활동에 뜻이 맞는 두 대표님들의 신뢰를 기반으로, 사업과는 별개로 같이 무언가를 해보자는 결의를 다지며 손을 잡았다. 자비로 한국과 필리핀을 오가며 인사했고, 이해관계자를 서로 소개하며 네트워크를 만들었다. 그리고 사업을 시작했다. 생각해보면 사업을 하며 수월했던 것보다 어려웠던 점이 더 많았는데, 그럼에도 서로를 향한 ‘신뢰’라는 색채가 선명하게 도화지에 그려져 있어서, 물방울을 한 방울 씩 떨어뜨리며 희미한 협력의 색들을 은은하게 퍼뜨릴 수 있었던 것 같다. 


꼭 서로 알고 지낸 기간이 신뢰라는 방정식은 아닐 것이다. 신뢰가 있다고 해서 연대로 이어지는 것도 아닐 것이다. 어쩌면 느슨한 협력이 먼저 이루어지다가 끈끈한 연대가 만들어 질 수도 있다. 그 방법도, 정도도, 색감도 다 다를 수 있다. 


그런데 연대와 협력이라는 이름으로 손을 맞잡을 생각을 한다면, 적어도 상대가 무슨 물감을 가지고 있는지, 우리가 그리려는 것이 산인지, 바다인지 아니면 도시에 높이 솟은 빌딩인지는 알고 손을 잡아야 하지 않을까? 무작정 색을 섞어버리면, 무작정 연대라는 이름으로 상대의 색을 다 받아들이고 내가 가지고 있는 색을 다 준다는 마음이라면, 금새 까만 도화지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남겨본다.


매거진의 이전글 나만의 '지속가능한 연대'를 찾아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