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치 사랑하는 사람에게 꽃다발을 건네받은 것처럼 근사한 기분이 들었다. 태어나서 들은 말 중에 그보다 더 따뜻하고 이쁜 말이 있었나. 좋은 모습만 보여주지 못했고, 부족하고 못나고, 때론 바닥을 치는 모습도 보여줬는데, 나를 그런 사람으로 여겨 주다니. 코끝이 찡했다. 이름처럼 살았다는 말은 여기까지 잘 살아왔다는 말로 들리기도 했고, 또 앞으로도 계속 그렇게 살아가라는 응원의 말로 들리기도 했다. 퇴사하고 얼마간 나답지 않게 주눅이 들어있었는데, 아이가 별안간 훅 던진 말에 악당이 걸어놓은 저주가 풀린 것처럼 마음이 일순간 편안해졌다.
나는 올해 1월 퇴사를 했다. 대학을 졸업하고 반도체 회사에서 5년, 사회복지 노동자로 장애인복지 현장에서 10년을 일했다. 꼬박 15년을 임금노동자로 살다가, 노(No) 임금 가사노동자로 살려니, 줄어든 수입만큼 자신감도 줄어들었다. 월급이 들어오던 매월 25일만 되면 초조하고 불안했다. 뻔한 통장 잔액을 들여다보며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 계산하다가, 어느새 알바천국을 들여다보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인간관계도 예전 같지 않았다.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지고, 사람들도 자주 만나지 못하니 가끔 외딴섬처럼 외로웠다. 점심시간이면 후다닥 밥을 먹고, 서넛이 카페로 달려가 카페인과 수다로, 남은 하루를 버텨낼 에너지를 충전하던 시절이 그리웠다.
가장 큰 난관은 시간을 보내는 일이었다. 여덟 살 이후, 늘 어딘가에 소속되어 역할을 부여받고, 정해진 일정을 소화하며, 자기 주도보다는 타인 주도의 삶을 살아왔다. 온전히 내가 원하는 대로 사용할 수 있는 시간을 그토록 갈망했지만, 막상 백수가 되어보니 할 일이 별로 없다. ‘셀프 안식년’이라는 제법 그럴듯한 이름도 붙이고, 쉬는 동안 글을 쓰고, 영어공부도 하고, 살도 빼고, 수영과 자전거도 배울 거라 다짐했지만, 현실은 그냥 동네 백수다.
1년 정도 쉬는 시간을 보내고 더 멋지게 비상하리라던 포부는 어디로 사라졌을까. 길었던 직장 생활에 느닷없이 ‘점’ 하나를 찍고 제 발로 도망쳤지만, 그 점이 쉼표가 아니라 마침표가 될까 두렵다. 마흔 중반의 10년 차 사회복지사를 두 팔 벌려 환영할 기관이 있을지 자신이 없다. 본격적으로 재취업 준비를 해 보진 않았지만, 가끔 구직사이트에서 나이와 경력 제한을 둔 구인공고를 볼 때면 마음이 급격히 쪼그라든다. 살면서 ‘나이’ 때문에 시도조차 해 보지 못한 경험이 청소년 관람 불가 영화 외에 또 있었는지 생각해보면, 그런 일은 없었다. 마흔이 되기 전에는.
일과 양육을 동시에 수행하며 지내던 지난 8년간의 세월은, 마치 마블 영화 같다. 시작과 동시에 사정없이 때려 부수고, 치고받고, 하늘을 날고, 달리다 갑자기 끝나는 영화처럼, 그야말로 순식간에 지나갔다. 매일 아침 자유로를 달려 서울에 있는 직장에 출근해, 8시간 노동을 하고, 퇴근 시간이 되면 부리나케 집으로 돌아가, 다시 출근한 사람처럼 육아와 가사노동을 했다. 남편과 원팀이 되어 아이를 먹이고, 씻기고, 함께 놀고, 재우는 일을 무한 반복하는 사이, 어느새 나이 앞자리는 3에서 4로 바뀌어있었다. 마흔이 되었지만, 특별한 감정을 느끼지 못한 건, 차분히 앉아 지난 삶을 돌아보고, 앞으로 다가올 삶을 생각해 볼 여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당장 하루를 사는 데 바빴다. 무사히 직장을 다니고, 아이가 별 탈 없이 건강하게 자라 주는 것만으로 감사했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좀 달라졌다. 이제 아이는 꽤 커서 이전보다 손이 많이 가지 않는다. 엄마·아빠가 필요한 순간이 조금씩 줄어들고 있다. 비로소 좀 더 일에 집중할 수 있는 시기가 온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그런 사정을 일일이 배려하며 기다려주지 않는다.
다시 사회복지 현장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무조건 낙관할 순 없지만, 그렇다고 이대로 포기할 수도 없다. 그동안 쌓은 경험들이 아깝고, 아직 해야 할 일들과 하고 싶은 일들이 남아있다. 예전엔 내가 일방적으로 도움을 주는 사람인 줄 알았지만, 착각이었다. 지난 10년간 현장에서 만났던 장애 당사자와 가족, 이웃들 덕분에 여태 밥 굶지 않고, 사람 구실 하며 잘 살아왔다. 그러니 어떤 식으로든 받은 은혜를 돌려주고 싶다.
멈춤이 필요한 때가 있다. 갈 길이 멀 때는 더더욱 그렇다. 장거리 여행을 갈 때 중간에 휴게소에 들러 화장실도 가고, 배도 채우고, 기름도 넣고, 목적지까지 어떤 길로 가는 게 나은지 확인한다. 나는 지금 그러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비록 맞벌이할 때보다 가난해졌지만, 퇴직금이 남아있으니 내년은 모르겠지만, 올해는 괜찮다. 인간관계가 이전보다 좁아졌지만, 사람 귀한 줄 알게 되었으니, 오히려 고맙다. 시간을 만족스럽게 사용하는 일에는 여전히 서툴지만, 조금씩 나에게 맞는 생활 리듬을 찾아가고 있으니, 이 또한 즐겁다. 그러니 내일 걱정은 내일로 미루고, 오늘은 그저 감사하고 기쁘고 즐겁게 살아가자. 부모님이 지어주신 내 이름처럼, 나답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