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인종료 후 300일 안에 태어난 아이 친아빠 자녀로 출생신고하는 법
한 가정을 해체하는 일이 너무 쉬워선 곤란하겠죠. 그래서 이혼 과정은 꽤 번거롭고 힘듭니다. 두 사람이 이혼에 완전히 합의하고 그외 다른 문제가 전혀 없어도 (미성년 자녀가 있으면) 적어도 4개월 이상이 걸립니다. 아무리 서로 이혼에 합의했어도 어느 정도는 ‘숙고(熟考)’하라는 차원입니다. 재판상 이혼은 이보다 더한데요. 짧아도 7~8개월에서 길게는 2~3년이 걸리기도 합니다.
이혼을 결심하고 실행에 옮기는 데에는 이처럼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립니다. 그렇다면 이혼 과정에 있는 부부는 어떨까요. 아직 이혼이 안 됐으니 사이가 좋을까요. 당연히 그렇지 않을 겁니다. 열에 아홉은 남보다도 못한 사이가 되고 맙니다. 이혼 과정에 있는 부부는 그래서 누군가를 만나는 것도 자연스럽다고 볼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을 통해 위로받고 싶은 마음이 클테니까요. 그런데 만약 이혼소송 중에 다른 사람을 만났다는 이유로 불이익을 당해야 한다면 어떨까요. 억울하지 않을까요.
마포구에 사는 영희 씨(34세, 주부)는 3년 전 가정폭력을 견디다 못해 집을 나왔습니다. 전남편은 술만 마시면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됐습니다. 멀쩡하다가도 술만 마시면 살림을 부수고 주먹을 휘둘렀습니다. 병원 신세를 진 것도 여러 번이었습니다. 영희 씨가 가출한 후에도 변한 건 없었습니다. 낮에는 잘못을 빌다가도 저녁엔 전화나 문자로 죽이겠다고 협박했습니다. 이혼소송은 길어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전남편은 절절한 반성문을 제출하며 잘못을 빌었고, 판사는 이혼 결정을 쉽게 내리지 못했습니다.
그사이 영희 씨는 직장 동료로 만난 수남 씨(36세, 건축기사)와 연인 사이가 되었고, 둘 사이에 아이가 생겼습니다. 2심까지 진행된 소송이 끝나고 6개월이 지났을 무렵 아이가 태어났습니다. 아이 출생 신고를 하러 주민센터를 방문한 부부는 놀라운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출생 신고를 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정확하게는 친아빠를 아빠로 하는 출생신고는 불가능하다고 했습니다. 친생부인허가청구라는 소송을 해야만 가능하다고 했습니다.
영희 씨는 두려웠습니다. 소송이라니. 만약 전남편이 이 사실을 알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알 수 없었습니다. 또 얼마나 오랜 시간을 괴롭힐지 가늠이 되지 않았습니다. 어렵게 다시 찾은 소중한 가정을 잃을까 무서웠습니다. 영희 씨는 무사히 아이 출생 신고를 마칠 수 있을까요.
민법에는 친생추정이라는 제도가 있습니다. 내용은 이렇습니다. 부부가 혼인 중 아내가 임신한 아이는 남편 아이로 추정한다는 겁니다. 이게 무슨 의미인가 좀 이해가 안 될 수도 있는데요. 당연한 말을 뭐하러 굳이 법에 규정까지 했나 싶기도 하고요. 그러나 아빠와 자식 사이는 엄마와는 또 다릅니다. 조금 더 살펴보겠습니다.
엄마는 아이를 직접 낳습니다. 출산 과정은 많은 사람이 목격하게 되는데요. 요즘처럼 병원에서 아이 낳는 게 일반화된 상황에서는 더욱 그렇습니다. 엄마가 아이를 낳았다는 사실을 본 사람이 많으므로 속일 수도 없습니다. 출산이라는 사실만으로도 엄마와 아이 사이는 분명히 확인되는 겁니다. 출생증명서는 이렇게 많은 사람이 목격한 상황을 공적으로 증명해주는 문서라고 할 수 있죠.
아빠와 아이 사이에도 이런 사건이 있을까요. 아닙니다. 없습니다. 아빠가 의심하려고만 들면 얼마든지 그럴 수 있다는 말입니다. 실제로 아이가 아빠를 닮지 않았을 수도 있고, 아빠가 원래부터 의심이 많은 사람일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런 의심을 다 허용한다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요. 그 의심이 해소되기까지 아이 출생 신고는 미뤄지고, 그 기간만큼 아이는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당연히 받아야 할 보호를 받지 못하게 될 수도 있는 겁니다. 신분이 불안해진다는 말입니다.
민법이 친생추정을 둔 이유는 바로 아이 신분 보호를 위해서입니다. 혼인 중 임신했다면 일단 남편 아이로 추정하여 아이의 신분상 불안 요소를 제거한 다음, 필요한 경우 친생부인의 소를 통해 잘못된 가족관계를 바로잡도록 하는 겁니다. 다만 이 절차는 정식 소송으로 꽤 복잡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민법이 ‘혼인 성립 후 200일 이후 또는 혼인 종료 후 300일 이내’ 태어난 경우도 ‘혼인 중 임신’으로 본다는 점입니다. 이혼한 후에 아이를 낳아도 아직 300일이 지나지 않았다면 친생부인의 소를 통하는 게 원칙이라는 겁니다. 앞서 본 대로 이혼하는 데 점점 오랜 시간이 필요한 점을 참작하면 이혼 후에 아이를 낳았다는 점만으로 친생추정을 미치는 게 하는 건 아무래도 불합리한 점이 많습니다.
결국 이런 점을 인정해 지난 2015년 헌법재판소는 ‘혼인 종료 후 300일 이내’에 태어난 경우까지 무조건 친생부인의 소를 거치게 하는 건 불합리하다는 이유로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습니다. 그렇게 새로 도입된 제도가 바로 친생부인허가청구입니다.
친생부인허가청구는 친생부인의 소보다 간소화된 절차라고 보시면 됩니다. 판사가 제출된 서류만으로도 (굳이 당사자 의견을 따로 들을 필요 없이) 판단할 수 있다는 겁니다. 다만 심판 과정에서 재판부 판단에 따라 전남편의 동의서를 요구하거나 그의 의견을 청취할 수 있다는 점은 다소 아쉬운 점입니다. 전남편에게 굳이 알리고 싶은 경우가 얼마나 될까를 생각해보면 (그동안 저희가 맡았던 백여 건 사건 중 전남편에게 알려도 좋다는 경우는 1~2건 정도에 불과했습니다) 과학적인 근거가 분명한데도 불구하고 과연 꼭 필요한 수단인지 의문이 드는 게 사실입니다.
전남편에게 알려지길 원치 않는다면 친생부인허가청구 심판 제기할 때 반드시 전남편에 대한 통보나 의견 청취 등에 관해 미리 의사를 명확히 밝혀야 합니다. 어렵게 회복한 일상의 평화가 이 심판청구 때문에 깨질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어렵게 심판이 마무리되고 나서도 실무자들의 어이없는 실수로 전남편에게 그 결과가 송달되기도 합니다. 친생부인의 허가 제도는 시행된 지 몇 년 안 된 탓에 지방법원의 경우 여전히 사건을 진행해본 경험 자체가 부족하여 실무관 차원에서 여러 실수를 하기도 합니다. 불필요한 시행착오를 미리 차단하고 싶다면 반드시 경험이 풍부한 전문가에게 문의해야 한다는 점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