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생부인의 허가심판청구로 이혼 후 아이 출생신고하는 법
민법에는 친생추정이라는 제도가 있습니다. 친생(親生)과 추정(推定)의 뜻을 풀어보면 ‘친자식’으로 ‘미루어 짐작’한다는 말입니다. 친자식이 맞으면 맞고 아니면 아닌 거지 무슨 추정이 필요한가 싶은 분들도 계실 텐데요. 그러나 조금만 생각해보면 이 제도에는 나름 합리적인 이유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겁니다. 친생추정이란 혼인 중 아내가 임신한 아이는 남편 아이로 추정한다는 뜻인데요. 그렇다면 친생이라는 추정이 미쳤을 때 우리가 어떤 효과가 생길까요.
우선 친생추정이 미치면 그 아빠는 일단 무조건 그 자녀의 아버지가 됩니다. 설사 자기 자식이 아니라는 의심이 들더라도 말이죠. 자기 자녀가 아니라는 사실을 주장하려면 반드시 ‘친생부인의 소’라는 소송을 제기해야만 합니다. 복잡한 절차를 거쳐야만 자식 여부를 부정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마찬가지로 친부 역시 당장은 법적 아버지가 될 수 없습니다. 추정이라는 용어가 무색하게 법률적 효과는 매우 강력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사례를 하나 살펴보겠습니다.
A와 B가 결혼했고 두 사람 사이에서 예쁜 딸 C가 태어났습니다. 그런데 C의 친아빠는 사실 A가 아니었습니다. 만일 결혼 전 B의 연인이었던 D가 친아빠였습니다. 이때 법률관계는 어떻게 될까요. 우선은 (실제 혈연관계와 상관없이) 민법 규정에 따라 순심이는 태어나자마자 일단 갑돌 씨 아이로 추정됩니다. 갑돌 씨 아이로만 출생신고가 가능하다는 말입니다. 정돌 씨는 아무런 자격이 없습니다.
갑돌 씨가 자신과 전혀 닮지 않은 순심이를 자녀로 인정하고 싶지 않다면 반드시 친생부인의 소라는 소송을 진행해야만 합니다. 이때 상대방은 갑순 씨가 됩니다. 그렇다면 정돌 씨는 이 소송을 제기할 수 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정돌 씨는 전혀 자격이 없습니다. 출산 과정은 많은 사람이 목격하게 됩니다. 본 사람이 많으므로 속일 수도 없습니다. 출산이라는 사실만으로도 엄마와 아이 사이는 분명히 확인되는 겁니다. 출생증명서는 이렇게 많은 사람이 목격한 상황을 공적으로 증명해주는 문서라고 할 수 있죠. 아빠와 아이 사이에는 이런 사건이 없습니다. 아빠가 의심하려고만 들면 얼마든지 그럴 수 있으므로 아이 신분이 불안해질 수도 있다는 말입니다.
민법이 친생추정을 둔 이유는 바로 아이 신분 보호를 위해서입니다. 혼인 중 임신했다면 일단 남편 아이로 추정하여 신분상 불안 요소를 제거한 다음, 필요한 경우 소송을 통해 잘못된 가족관계를 바로잡도록 하는 겁니다. 이때 소송이 바로 친생부인의 소입니다. 까다로운 소송이죠.
문제는 민법이 ‘혼인 성립 후 200일 이후 또는 혼인 종료 후 300일 이내’ 태어난 경우를 ‘혼인 중 임신’으로 봐서, 이혼한 후에 아이를 낳아도 아직 300일이 지나지 않았다면 친생부인의 소를 거치게 한다는 점입니다. 요즘은 이혼하는 데 점점 오랜 시간이 소요되는 걸로 볼 때 이혼 후 300일 이내에 낳은 아이에게 친생추정이 미치게 하는 건 아무래도 불합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 때문에 지난 2015년 헌법재판소는 ‘혼인 종료 후 300일 이내’에 태어난 경우까지 무조건 친생부인의 소를 거치게 하는 건 불합리하다는 이유로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습니다. 그렇게 새로 도입된 제도가 바로 친생부인 허가청구입니다.
친생부인 허가청구는 친생부인의 소보다 간소화된 절차입니다. 굳이 소송을 거치지 않아도 제출된 서류만으로 판단할 수 있는 ‘비송’절차인 겁니다. 다만 심판 과정에서 재판부 판단에 따라 전남편 동의서를 요구하거나 의견을 청취할 수 있다는 점은 다소 아쉬운 점입니다. 전남편에게 굳이 알리고 싶은 경우가 얼마나 될까를 생각해보면 과학적인 근거가 분명한데도 불구하고 과연 꼭 필요한 수단인지 의문이 들기도 합니다.
전남편에게 청구사실이 알려지길 원치 않는다면 친생부인 허가청구 심판 제기할 때 반드시 전남편에 대한 통보나 의견 청취 등에 관해 미리 의사를 명확히 밝혀야 합니다. 어렵게 회복한 일상의 평화가 이 심판청구 때문에 깨질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어렵게 심판이 마무리되고 나서도 실무자들의 어이없는 실수로 전남편에게 그 결과가 송달되기도 합니다. 이런 어이없는 가능성 하나라도 모두 미리 차단하고 싶다면 반드시 경험이 풍부한 전문가 도움을 받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