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 후 300일 이내 태어난 아이 출생신고하는 법
이혼 과정은 간단치 않습니다. 한 가정을 해체하는 일이 너무 쉬워선 곤란하겠죠. 두 사람이 이혼에 관해 완벽히 합의하고 다른 문제가 전혀 없어도 (미성년 자녀가 있으면) 적어도 4개월 이상이 걸립니다. 아무리 서로 이혼에 합의했어도 어느 정도는 ‘숙고(熟考)’하라는 차원입니다. 재판상 이혼은 더한데요. 짧아도 7~8개월에서 길게는 2년이 넘게 걸리기도 합니다.
이처럼 이혼을 결심하고 실행에 옮기는 데에는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립니다. 그렇다면 이혼 과정에서 부부는 어떨까요? 아직 이혼은 안 됐으니 사이가 좋을까요? 당연히 그렇지 않을 겁니다. 열에 아홉은 남보다도 못한 사이가 되고 맙니다. 이혼 과정에 있는 부부는 그래서 누군가를 만나는 것도 자연스럽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만약 이혼소송 중에 다른 사람을 만났다는 이유로 불이익을 당해야 한다면 어떨까요? 좀 억울하지 않을까요.
신림동에 사는 지민 씨(30세, 직장인)는 3년 전 가정폭력을 견디기 어려워 집을 나왔습니다. 전남편 상훈 씨는 술만 마시면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됐습니다. 맨정신일 땐 멀쩡하다가도 술만 마시면 살림을 부수고 주먹을 휘둘렀습니다. 병원 신세를 진 것도 여러 번이었습니다. 지민 씨가 가출한 후에도 낮에는 잘못을 빌고, 저녁엔 전화나 문자로 협박했습니다. 이혼소송은 2년 넘게 이어졌습니다. 상훈 씨가 여러 번 반성문을 제출하며 잘못을 빌었고, 판사는 이혼 결정을 쉽게 내리지 못했습니다.
그사이 지민 씨는 직장에서 동료로 만난 민수 씨(33세, IT 개발자)와 연인 사이가 되었고, 둘 사이에 아이가 생겼습니다. 어렵게 이혼 결정이 나고 6개월이 지났을 무렵 아이가 태어났습니다. 아이 출생 신고를 하러 주민센터를 방문한 부부는 놀라운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지금 상태에서는 출생 신고를 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친생부인허가청구라는 소송을 해야만 가능하다고 했습니다.
지민 씨는 두려웠습니다. 소송이라니. 만약 상훈 씨가 이 사실을 알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알 수 없었습니다. 어렵게 다시 찾은 소중한 가정을 잃을까 무서웠습니다. 지민 씨는 무사히 아이 출생 신고를 마칠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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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법에는 친생추정이라는 제도가 있습니다. 내용은 이렇습니다. 부부가 혼인 중 아내가 임신한 아이는 남편의 아이로 추정한다는 겁니다. 이게 무슨 의미인가 좀 이해가 안 될 수도 있는데요. 당연한 말을 뭐하러 굳이 법에 규정까지 했나 싶기도 하고요. 그러나 아빠와 자식 사이는 엄마와는 또 다릅니다. 조금 더 살펴보겠습니다.
엄마는 아이를 직접 낳습니다. 출산 과정은 많은 사람이 목격하게 되는데요. 요즘처럼 병원에서 아이 낳는 게 일반화된 상황에서는 더욱 그렇습니다. 엄마가 아이를 낳았다는 사실을 본 사람이 많으므로 속일 수도 없습니다. 출산이라는 사실만으로도 엄마와 아이 사이는 분명히 확인되는 겁니다. 출생증명서는 이렇게 많은 사람이 목격한 상황을 공적으로 증명해주는 문서라고 할 수 있죠.
아빠와 아이 사이에도 이런 사건이 있을까요? 아닙니다. 없습니다. 아빠가 의심하려고만 들면 얼마든지 그럴 수 있다는 말입니다. 실제로 아이가 아빠를 닮지 않았을 수도 있고, 아빠가 원래부터 의심이 많은 사람일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런 의심을 다 허용한다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요? 그 의심이 해소되기까지 아이 출생 신고는 미뤄지고, 그 기간만큼 아이는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당연히 받아야 할 보호를 받지 못하게 될 수도 있는 겁니다. 신분이 불안해진다는 말입니다.
민법이 친생추정을 둔 이유는 바로 아이 신분 보호를 위해서입니다. 혼인 중 임신했다면 일단 남편의 아이로 추정하여 아이의 신분상 불안 요소를 제거한 다음, 필요한 경우 친생부인의 소를 통해 잘못된 가족관계를 바로잡도록 하는 겁니다. 다만 이 절차는 정식 소송으로 꽤 복잡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민법이 ‘혼인 성립 후 200일 이후 또는 혼인 종료 후 300일 이내’ 태어난 경우도 ‘혼인 중 임신’으로 본다는 점입니다. 이혼한 후에 아이를 낳아도 아직 300일이 지나지 않았다면 친생부인의 소를 통하는 게 원칙이라는 겁니다. 앞서 본 대로 이혼하는 데 점점 오랜 시간이 필요한 점을 참작하면 이혼 후에 아이를 낳았다는 점만으로 친생추정을 미치는 게 하는 건 아무래도 불합리한 점이 많습니다.
결국 이런 점을 인정해 지난 2015년 헌법재판소는 ‘혼인 종료 후 300일 이내’에 태어난 경우까지 무조건 친생부인의 소를 거치게 하는 건 불합리하다는 이유로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습니다. 그렇게 새로 도입된 제도가 바로 친생부인허가청구입니다.
친생부인허가청구는 친생부인의 소보다 간소화된 절차라고 보시면 됩니다. 판사가 제출된 서류만으로도 (굳이 당사자 의견을 따로 들을 필요 없이) 판단할 수 있다는 겁니다. 다만 심판 과정에서 재판부 판단에 따라 전남편의 동의서를 요구하거나 그의 의견을 청취할 수 있다는 점은 다소 아쉬운 점입니다. 전남편에게 굳이 알리고 싶은 경우가 얼마나 될까를 생각해보면 (그동안 저희가 맡았던 수백여 사건 중 전남편에게 알려도 좋다는 경우는 5~6건 정도에 불과했습니다) 과학적인 근거가 분명한데도 불구하고 과연 꼭 필요한 수단인지 의문이 드는 게 사실입니다.
전남편에게 알려지길 원치 않는다면 친생부인허가청구 심판 제기할 때 반드시 전남편에 대한 통보나 의견 청취 등에 관해 미리 의사를 명확히 밝혀야 합니다. 어렵게 회복한 일상의 평화가 이 심판청구 때문에 깨질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어렵게 심판이 마무리되고 나서도 실무자들의 어이없는 실수로 전남편에게 그 결과가 송달되기도 합니다. 이런 가능성을 미리 차단하고 싶다면 반드시 경험이 풍부한 전문가에게 문의해야 한다는 점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