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한수정 Oct 25. 2024

내가 왜 방송작가가 될 수 없었냐면


방송작가를 하고 싶어 했던 때가 있었다. 그런데 그걸 해보려고 마음먹었을 때는 이미 서른이라서 늦은 감이 있었다. 내가 하고 싶었던 건 영화 관련 프로그램이었는데 지원서류를 넣어도 연락이 오지 않았다. 그쪽으로 관련 경력이 없어서 내 나름대로 기존의 영화 프로그램 코너를 따라한 원고를 만들어서 보내기도 했으나 딱히 가산점이 되지는 않았던 모양이다. 20대 초중반이 대부분일 막내작가 자리에 서른은 아무래도 부담스러웠을 것이다. 






그즈음 새로운 소식을 들었다. 방송국에서 행정직으로 다녔을 때 함께 일했던 A피디님이 팀을 옮겨서 특집 프로그램을 준비하신다는 거였다. A피디님은 부장님으로 계실 때도 화를 내거나 짜증 내는 걸 한 번도 못 봤을 정도로 꽤 사람 좋은 분이었다. 나는 바로 그분께 연락을 드리고 찾아뵈었다. A피디님은 행정으로 일했던 내가 작가를 하고 싶어 하는 줄은 몰랐다며 의외라는 반응을 보였다. 그러면서 몇 달 동안 3·1절 특집 다큐멘터리를 제작할 예정이라고 했다. 소규모로 진행할 거라 나더러 자료조사와 조연출 업무를 겸해서 같이 해보는 건 어떠냐고 제안하셨다. 나는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게다가 두 가지 업무를 하는 거라서 경력이 없는 것 치고는 페이도 좋았다. 


A피디님은 사람이 좋은 만큼 일을 많이 시키지 않으셨다. 받는 돈에 비해서 일이 빡세지 않은 건 좋았으나 반대로 생각하면 내가 원했던 작가 일의 비중은 거의 없었기 때문에 좋지 않기도 했다.


같이 일하면서 행정직으로 일했을 때 알고 지냈던 다른 피디님들과 함께 만나 술자리를 갖기도 했다. 그 자리에는 그들과 오랫동안 호흡을 맞춰 일해 온 메인작가도 있었다. (그 작가님과 나는 사적인 친분이 없었다) 피디님들은 뒤늦게 작가 일을 시작하게 된 나를 축하해 주었다. 메인작가님은 나를 응원하면서도 힘든데 왜 굳이 이 일을 하려고 하느냐는 말을 씁쓸하게 덧붙였다. 


3·1절 프로그램에는 중간에 재연이 몇 장면 들어가서 배우가 필요했다. 그 때문에 배우 섭외 건으로 한 에이전시 팀장님과 연락을 주고받게 되었는데, 그분은 이후로도 방송국에서 나와 마주칠 때마다 싹싹한 태도로 먼저 다가왔다. 누가 보면 오래 알아온 사이처럼 보였을 법하지만 우리는 단 한번 만났을 뿐이었다. 그가 내게 작가님, 작가님 하면서 부를 때마다 나는 괜히 송구스러웠다. 그 프로그램의 원고와 구성은 A피디님이 했기 때문에 내가 작가도 아니었거니와 그분의 에이전시를 다시 부를 일은 없었기 때문이다. 물론 그도 그런 사항에 대해 어느 정도 알았을 수도 있고, 넉살 좋은 언변은 일의 연장선이었을 것이다. 그와 마주칠 때마다 부담스러웠던 건 작가님이라는 호칭에 대해 스스로 쪼그라드는 마음을 어찌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 사이사이에 다른 프로그램의 막내작가 자리에 서류를 넣었지만 잘 되지 않았고 결국 나의 방송 생활은 그렇게 끝나게 되었다.






그때 만약 방송작가 일을 시작했다면 어땠을까? 아직도 하고 있었을까? 

왜 굳이 힘든 이 일을 하려고 하냐는 메인작가의 말이 이상하게도 계속 맴돈다. 종종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의 스태프 자막에서 그분의 이름을 본다. 그분은 힘들어도 그 분야에서 인정받고 자신이 좋아하기 때문에 그 일을 아직까지도 하는 것이리라. 


새로운 일을 하는 것에 있어서 조금이라도 의욕과 마음이 있다면 시도해보려 한다. 모든 시도가 성공하지는 않지만 시도가 빠를수록 기회도 많아진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기 때문이다. 작더라도 시도가 거듭될수록 성공이든 실패든 내게 남는 것도 많아질 것이다. 앞으로 시도하고 싶은 일이 몇 가지 있다. 시간이 지나 그에 대해 어떤 자산이 남을지 스스로도 궁금해진다. 

이전 04화 단 한 번의 백일장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