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의 조건
비가 억수로 쏟아지는 컴컴한 새벽녘, 보통의 날이라면 희끄무레한 먼동을 맞이할 시간이다.
운전하는 동안 시야를 자꾸만 가리는 비를 와이퍼로 밀어내고 어둠을 천천히 짚으며 나는 목적지를 향해 나아갔다.
같은 시간, 누군가는 온몸으로 쏟아지는 비를 맞으며 묵묵히 걸어가고 있었고 누군가는 밑창이 얇은 신발을 신고 물 웅덩이를 이리저리 피한다.
그러나 거침없이 달리는 차들은 그들의 조심성 따위는 안중에도 없이 물보라를 일으키며 빠른 속도로 제 갈길을 간다.
비 갠 새벽, 어둠을 서서히 물리치며 하얗게 터오는 먼동이 선명하게 보이는 날이다.
어떤 이는 시간의 재촉을 받으며 덜 마른 질퍽한 땅을 밟는다.
삶의 무게가 실린 낡은 신발에 진흙이 덕지덕지 달라붙으며 그들의 걸음을 붙잡을지라도 서슴없이 걷는다.
하늘이 아주 바짝 마른날은 그들의 빠르고 힘찬 걸음에 흙먼지가 폴폴 나부낀다.
역동적인 그들의 에너지가 발밑에서부터 피어오르고 있다.
언제나 그랬듯 나는 안온한 차 안에서 그들을 관찰한다.
때로는 감사라는 것이 얼마나 이기적이고 타산적이며 위선적인가를 생각하게 된다.
타인과의 비교를 통해 내 삶을 감사하는 것, 이것이 순수한 감사인지 하는 고민을 잠시 했다.
물론 걷고 있는 그들을 불쌍하고 가련하게 생각하거나 내 삶이 우월하다는 생각 따위는 하지 않는다.
그저 내가 감사했던 수많은 순간에 이런 비교가 없었는가 생각해 보았고 그것의 진정성에 대해 잠시 생각해 보았다.
그리고 세상은 역시 불공평하다는 재확인과 함께 어떤 미안한 감정과 아련한 기억들이 뒤엉켜서 마음이 복잡했다.
문득 오래전 저 빗속을 걸었을 나의 아빠가, 그리고 부러운 듯 차들을 바라봤을 내가 떠올랐다.
어른이 된 나는 아직도 그때의 어린아이 시선으로 차 안에 있는 나를 바라보고 있다.
그래서, 신앙인이 된 나는 밖에서 비를 맞으며 걷는 내 삶도 감사할 수 있겠느냐는 질문에 아직도 그렇다고 답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