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심 불편했던 마음의 소리를 몸이 들었다.
갑자기 다리가 저리고 머리도 어질하고 몸에 힘이 쭉 빠졌다.
그러자 짜증이 확 몰려왔다. 집에 가서 빨리 쉬고 싶었다.
이럴 때 보면 정신이 육체를 지배하는 게 틀림없어 보인다.
집에 오니 아이들이 배고프다고 짜파게티를 끓여 먹겠다며 냄비에 물을 받는다.
그사이 나는 빨래를 걷어 부엌을 가로질렀다.
무심결에 가스에 올린 냄비를 보니 물이 한강이다.
물이 너무 많은 것 아니냐고 했더니 아이는 어차피 버릴 거니 괜찮다고 한다.
나는 물이 아깝다고 한마디 하고는 그 공간을 벗어났다.
어차피 버릴 물인데 왜 그렇게 많이 받았냐는 뜻이었다.
그리고 잠시 후 다시 부엌에 와보니 아이는 그 한강 같은 물을 버리지 않고 수프를 넣어버렸다.
순간 화가 몹시 났다.
봉지에 레시피가 있는데 왜 보지도 않고 이렇게 했냐고, 이거 맛없어서 어떻게 먹냐고, 물 버린다고 하지 않았냐고 폭풍 같은 잔소리를 쏟아내니 아들은 엄마가 물이 아깝다고 해서 그랬다고 한다.
그러면서 실패하면서 배우는 거라고, 이렇게 실패해 봤으니 다음엔 잘할 거라고 한다.
옆에 있던 딸아이는 “엄마, 우리가 늦게 나와서 힘들었어? 미안해.” 라며 위로하며 사과한다.
아이는 내 눈치를 보며 짜증의 이유를 자신들에게서 찾았나 보다.
사과는 엄마가 해야지. 너희 때문에 그런 게 아니야. 엄마 자신 때문에 그런 거였어.
아이들이 나를 자라게 하고 어른이 되도록 가르쳐준다.
얼마 전 어떤 영상에서 요즘엔 부모들이 아이들에게 실패할 기회를 주지 않는다는 말을 들었다.
나 또한 그랬다. 아이들의 실패를 내가 수습해 주어야 한다는 생각에 실패를 방지했다.
혼자서 해볼 수 있는 일도 기다려 주기 힘들어서 혹은 일을 더 크게 만들까 봐 내가 알아서 다 해주었다.
그래놓고 아이들에게는 스스로 하라며 다그치기도 했다.
아이는 오늘 처음 짜파게티를 끓여봤다.
사실 아이들은 부엌에서 이것저것 만들고 싶어 하는데 뒤처리하는 게 힘들어서 만류하고는 했다.
설거지까지 약속받았지만 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래서 시집가고 장가가면 해야 하니 지금은 엄마가 해주겠다는 그럴싸한 말로 기회를 주지 않았다.
그깟 설거지가 뭐라고, 잠시 몸 고된 것이 뭐라고..
난 내 고생만 생각한 이기적인 엄마였고 아이의 성공을 바라면서도 정작 성공할 기회조차 주지 않았던 어리석고 짜증 많은 엄마였다.
아들아, 엄마도 이처럼 실패하고 실수해 봤으니 앞으로는 너희들을 더 잘 키워낼 수 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