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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2/26

by 우아한 우화


-잠을 잘만하니 알람이 울린다.

오늘은 도시락을 싸지 않아도 되지만 제시간에 일어났다.

아이들은 스쿨런치 메뉴로 ‘비프 필렛’이 나오면 먹고 싶어 한다.

집에서는 가끔 미역국에 소고기를 넣는 것 빼고는 거의 소고기 요리를 하지 않기 때문에 비프 필렛이 점심으로 나오면 먹이려고 한다.

소고기가 한국보다 저렴해도 사지 않는 것은 잘못 요리하면 질기기도 하고 특유의 노린내 때문에 어쩌다 정말 신선한 소고기를 보면 살까, 대부분 닭과 돼지만 먹는다.

난 생선 손질도 못한다.

그래서 조금 비싸도 손질해 주는 가게를 간다.

엄마가 해줄 때는 몰랐는데 생선과 육류를 손질하다 보면 입맛이 달아난다.

제육볶음, 돼지고기 김치찜… 뭐 이런 종류도 좋아하는데 냄새를 잡는다고 공을 들여도 고기 특유의 냄새가 나서 먹지 못하는 경우가 있어 고기류는 될 수 있으면 조리하지 않고 대부분 굽는다.

그래야 냄새가 덜난다.

나만 그런 게 아니라 남편도 예민해서 힘들게 요리해서 먹지 못하면 속상해진다.

내가 요리를 못해서 그런 건가 싶기도 하고…


-아이들도 비트 주스를 먹겠다고 해서 넉넉하게 주스를 만들어 놓고 나도 한잔 마셨다.

보통은 일어나자마자 커피부터 마시는데 오늘은 주스만 마셨다.

그래서였을까? 아이들이 학교에 간 후 피곤이 밀물처럼 밀려왔다.

다리가 묵직하고, 뭐라고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항상 잔잔한 통증이 있다.

다리가 가볍다는 것은 어떤 느낌일까 궁금해졌다.

그렇게 가벼운 다리로 잠이 들면 꿀잠을 잘 수 있을까?

좀 쉬어야겠다 싶어서 다리 마사지기를 하고 소파에 누웠다.


남편은 아침에 깼다가 다시 자고 일어나면 개운하다고 했는데, 나는 아닌 것 같다.

엄청 피곤해 잠시 눈을 붙였더니 몸이 더 무겁고 개운하지가 못하다.

그래도 할 일이 있으니 꾸역꾸역 일어났다.

커피를 마시지 않아 몸이 이리 무겁나 싶어 남편에게 커피를 내려달라고 부탁했다.

커피로 겨우겨우 달아나려는 정신을 붙들고 햇볕을 쬐야할 것 같아 일부러 해가 잘 드는 곳에 앉아 글쓰기 숙제를 마무리했다.

인터넷을 바꾼 후 프린터기는 장식용이었는데 오늘 다시 남편 노트북으로 시도하니 됐다.

프린트까지 마치고 나니 후련하다.

아이들이 오기 전에 좀 더 쉬어야겠다.

오늘은 운동이고 나발이고 책이고 뭐고 다 모르겠다.


-딱, 쉬려고 하는 순간 Y에게 톡이 왔다.

집 앞 쇼핑몰에 왔는데 커피 한잔하러 나오라는 것이다.

난 거절을 모르는 사람이니 대충 선크림만 바르고 나갔다.

이미 1시가 넘었으므로 커피대신 점심을 먹고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다.

난 배가 고팠던 것일까?

먹고 나니 기운이 좀 났다.

분명 아침에 커피에 빵을 푸지게 먹었는데, 이상하다.


-지인에게 부탁한 옥수수가 왔다.

픽업 시간이 애매해 남편에게 집에 오는 길에 부탁했더니 현관으로 들어서면서 자기 보고 오지랖이라고 뭐라고 하더니 나도 오지랖이라고 짜증을 낸다.

그 맘이 충분히 이해가 됐다.

바람은 많이 불고 해는 뜨겁지, 차는 막히지, 옥수수자루는 무겁지.

거기다 나이로비는 해발고도가 1,700m로 높다.

그래서인지 두통도 잦고 조금만 돌아다녀도 집에 오면 피곤이 몰려온다.

남편은 여기저기 많이 돌아다니느라 더 피곤할 것이다.

그런데다 60개의 옥수수가 든 자루를 들고 올라왔으니 짜증이 났겠지.

속으로 옥수수 산지 얼마나 됐다고 또 이렇게 많이 샀나 했을 것이다.

그 맘 내가 다 안다네 남편님~

나도 때로는 누가 대신 주문해 줘서 그렇게 사기도 한다고 이해를 바라며 얘기하니 알았어~라고 금세 수긍한다.

기진한 그에게 비트주스 한잔 줄까요?라고 하니 좋다고 해서 시원해진 주스를 대령하니 그제사 기분이 좀 나아진 것 같다.


옥수수를 보니 주일 에피소드가 생각난다.

옥수수를 받은 나는 옥수수를 어떻게 쪄먹을지 고민했던 것 같다.

뉴슈가를 넣어야 하나 소금을 넣어야 하나 아니면 둘 다 넣어야 하나, 아니면 그냥 쪄먹을까, 별 하찮은 생각에 나름 골몰하고 있었던지 교회 직원인 폴이 사야 할 비품 얘기를 하는데 엉뚱한 얘기를 했다.

그가 슈가(설탕) 10킬로를 사야 한다고 말했는데 나는 그게 영어로 인식이 안 됐던 것인지(그게 토, 일 합쳐 처음 듣는 영어였다), 아~ 뉴슈가? 코리안 스타일 슈가?라고 내 머릿속에 있는 생각을 말해버렸다.

그랬더니 폴이 이게 무슨 말인가 싶은 의아한 얼굴로 슈가, 교회 슈가라고 해서 그제야 그게 설탕을 의미한다는 것과 교회 비품에 대해 얘기한다는 걸 알았다.

아… 큰일이다.

점점 내 생각대로 듣고 말한다.


누룽지를 만들려고 일부러 압력솥에 밥을 했다.


묵은 알타리와 갓김치를 지지고 고등어 구이로 저녁을 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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