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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 기와집에서 겨울나기 ①한겨울 공부방
기와집에서 겨울나기 ①한겨울 공부방
#2평이 채 안 되는 공부방
연일 영하의 기온이 기승을 부리는 겨울날, 70년대 고향 집 방 안 공기는 독하게 춥고 사나웠다. 연탄불의 열기가 펄펄 끓는 아랫목은 살이 데일 정도로 뜨거웠고, 윗목은 이빨이 떨리고 온몸이 움츠러드는 한데나 다름없었다. 2평이 될까 말까, 한 공부방의 윗목과 아랫목도 정반대의 얼굴을 드러내고 있었다.
공부방이라고 별다른 게 아니라 형들과 함께 자는 방이 공부방이고 공부방이 자는 방이었다. 중2 때부터 공부에 눈을 뜬 나는 공공 도서관이나 독서실보다 집에서 공부하는 것을 선호했다. 이런저런 신경 쓸 일이 없고 오가는 시간을 낭비할 일 없이 오롯이 나만의 공간에서 나만의 시간에 집중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혹독한 공부방의 추위
겨울방학 때 학습 공간도 공부방, 즉 작은 방이었다. 작은 방의 추위는 혹독했다. 윗목의 오싹한 기운은 보온, 방음 기능이 없는 홑창을 뚫고 들어오는 칼바람의 기세에 더욱 매서워져 두꺼운 내의와 겉옷을 단단히 챙겨 입은 채비도 소용없이 몸을 덜덜 떨리게 몰아붙였다.
체감 추위는 철제 책상에 앉아 양팔을 책상 위에 올리는 순간 수직 상승하며 인내심을 테스트하기 시작하는 데 나름의 방책을 갖춘다고 갖추는 게 털실로 짠 장갑을 끼는 것이었다. 참고서나 문제집을 보면서 수시로 필기해야 하는 손, 특히 오른손을 보호하기 위해서였다. 철제 책상 특유의 차가운 성질머리는 여간 성가신 게 아니었다.
책상 바로 옆이 창문이라 창문 틈새를 교묘하게 헤집고 들어오는 찬바람 공세에도 속수무책으로 시달려야 했다. 칼바람을 막는 대책이라고 창문 틈새를 문풍지로 꼼꼼하게 싸매 차단했는데도 불청객 겨울바람은 허가 없이 무시로 방안으로 침입했다.
두툼한 털 스웨터와 장갑, 귀마개는 영하 10도를 오르내리는 강추위가 몰아닥치는 날, 내 몸을 따뜻하게 보호하는 수호천사들이다. ⓒPARK IN KWON
#난방 보조기구 석유난로
장갑을 꼈는데도 손이 곱기는 마찬가지라 어차피 추위를 감당할 수 없을 바에야 필사(筆寫)와 메모라도 자유롭게 하자며 벗었다가도 이내 다시 끼고 또 벗었다가 끼기를 반복하는 행위는 시계추처럼 반복됐다. 윗목과 실내를 따뜻하게 데울 요량으로 겨울철 필수 난방 보조기구였던 석유난로를 피워보기도 했지만 메케한 기름 냄새에 머리가 지끈거리고 몸쪽으로만 열기가 쏠릴 뿐, 책상 위를 맴도는 차가운 공기의 흐름은 달라지지 않아 추위 환경 개선에 큰 도움이 되지는 않았다.
추위를 느끼는 주체는 육체적 감각이라 난로의 방향을 몸쪽으로 맞춰 신체 온도를 높여야 하는데 이러다 보니 얼굴 위로 열기가 집중돼 맑고 또렷한 기운을 유지해야 할 두뇌 회전에는 오히려 방해 요소가 된 것이다. 이런 이유로 공부에 몰두할 동안에는 석유난로를 아예 꺼 놓거나 한 번씩 켜더라도 열기가 몸쪽으로 오지 않도록 방향을 틀곤 했었다.
석유난로는 연탄불을 동력으로 한 온돌 난방이 대세였던 70년대 기와집 생활에 꼭 필요한 필수 겨울용품이었다. 우리 집에도 방마다 석유난로가 있었고 대청마루에도 한 대가 늘 놓여 있었다. 석유난로가 주요 난방 보조기구인 점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지만 영향력에 한계가 있어 방 안 공기 흐름을 바꾸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석유난로의 또 다른 단점은 석유가 연소하면서 발생하는 기름 냄새를 빼놓을 수 없는데 바깥공기가 차단된 방 안에서 냄새에 오래 노출되면 두통의 원인이 되기도 했다.
#추운 공부방의 아이러니
한참을 철제 책상 위에서 고군분투하다가 인내심의 배터리가 다 떨어지면 아랫목에 접이식 작은 밥상을 펴고 양반다리 자세로 공부하기도 했다. 소득도 있었다. 추위로 고생한 것과 달리 학습 효과는 오히려 향상됐다는 점이다. 방안 위를 떠도는 공기가 차가워 뇌세포가 바짝 긴장해서인지 머리가 잘 돌아갔고 졸음을 쫓는 데에도 추위가 도움이 됐다.
겨울방학 내내 손과 얼굴이 시린 작은 방이자 공부방에서 추위에 맞서 버티며 책과 씨름한 고군분투는 적지 않은 학업적 성과로 나타났다. 한 달을 훌쩍 넘긴 기간 동안 리듬이 끊기지 않고 계속된 학습의 총량이 상당했고 잡념 없이 계획대로 목표에만 매진할 수 있어 집중도도 높았던 터라 기대 이상의 학업적 성취를 이뤘다.
나는 찬 공기로 가득한 한겨울 고향 집 공부방에서 두 번의 겨울방학 학습 효과를 실감했는데, 한 번은 중3 겨울방학이었고 나머지 한 번은 고2 겨울방학 때였다. 겨울방학 때마다 학습 장소가 집이라는 점은 변함이 없었지만, 중3과 고2 겨울방학 때 가장 열심히 공부했고 학업적 결실도 가장 만족스러웠던 걸로 기억한다.
시대별 니베아 크림. ⓒSusana22BN• wikipedia commons, public domain
#추위에 취약한 손등과 손가락
윗목의 추위가 괴롭힌 신체 부위는 손과 손등, 콧등과 뺨, 귓불에 집중됐다. 시리기야 다 마찬가지지만 유독 손등과 손가락 부위가 추위에 취약했다. 콧등과 뺨, 귓불도 추위를 타 빨갛게 익은 나머지 가려움증을 유발했으나 손등과 손가락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중3 겨울방학과 고2 겨울방학이 끝나갈 무렵 나는 두 손등의 피부가 트고 살갗이 부어오르는 경미(輕微)한 동상에 걸린 경험이 있다. 방안의 추운 공기에 오래 노출된 대가였는데 피부가 갈라져 따끔따끔하고 가려워 몇 날 며칠을 고생했었다.
귓불도 그렇지만 손등과 손가락의 가려움은 참기가 어려웠다. 긁으면 상처가 도진다고 억지로 참다가도 어쩔 수 없이 긁게 되고 잠결에 무심결에 손을 대기 일쑤라 아침에 깨 보면 손등과 손가락이 퉁퉁 부어오르곤 했었다. 그때는 지금과 같은 핸드크림은 없었고 손이 트면 니베아라는 이름의 기능성 로션을 약방의 감초처럼 발랐다.
겨울에는 몹시 춥고 여름에는 지독하게 더운 곳에서 자란 나는 겨울과 여름 둘 다 달가워하지 않지만 하나를 선택하라면 겨울에 조금 더 후한 점수를 주고 싶다. 겨울은 여러 겹의 옷과 목도리, 장갑, 귀마개 등으로 칭칭 동여매고 중무장하면 웬만큼 견딜만하나, 여름은 그마저도 마땅한 대책이 없기 때문이다.
70년대 한겨울 고향 집 공부방 책상 위는 정말 추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