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인권 Feb 08. 2024

학창 시절 풍속사(風俗史)

29. 미션 스쿨과의 희한한 인연

미션 스쿨과의 희한한 인연     


#고등학교 가는 길     

 중3 겨울방학이 끝나갈 무렵, 새로 입학할 고등학교가 정해졌다. 또 미션 스쿨이었다. 중학교는 기독교 학교, 고등학교는 가톨릭 학교. 별 희한한 인연도 다 있다, 싶었다. 불교 신자라서가 아니라 중학교에 이어 고등학교까지 미션 스쿨에 배정된 점이 그랬다는 말이다.     


내심 중학교와 같은 재단의 상급학교 진학을 바랐던 나는 어쩔 수 없지, 하며 복불복(福不福)으로 돌리려던 차에 입학식 날 평상심(平常心)이 깨지고 말았다. 유쾌할 수 없는 경험의 발단은 이랬다.      


고등학교로 들어가는 길은 낯설었다. 학교는 대구 반월당(半月堂)을 지나 남문시장 입구에서 도보로 5분 남짓 되는 곳에 있었다. 익숙한 반월당 사거리와 익숙하지 않은 남문시장.      


#학교에 대한 첫인상

3년간 다니게 될 학교 교문(校門)을 들어서자, 왼편으로 저만치 학교 풍경 중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장면이 나타났다. 덩치가 아주 큰 구조물이었다. 짓다 만 체육관이나 강당을 닮았는데 눈에 거슬렸다. 철근 구조물과 콘크리트 골격, 뼈대를 드러낸 지붕, 여기저기 흩어진 채 방치된 건축 자재들. 흉물스러운 구조물을 둘러싼 을씨년스러운 분위기가 마음을 스산하게 했다. 봄이지만 봄, 같지 않은 날씨가 더욱 으스스했다.     


대구광역시 남산동 시절의 대건고 전경왼쪽 나무 옆이 중단된 체육관 공사 현장이다졸업한 지 9년이 지난 1990년 2월 달서구 월성동으로 교사(校舍)를 이전했다. <사진=대건고 30회 졸업 앨범>


#중단된 체육관 공사와 야구부 해체

 체육관 용도의 건물이었고 건축 도중에 불미스러운 일이 터져 공사가 중단된 것이라는 사실을 얼마 지나지 않아 알았다. 학교에 떠도는 소문은 입학 전해인 1977년 교내에 공금 횡령 사건이 터지면서 재정 상태에 비상이 걸렸고 그 여파로 공사가 전면 중단됐다는 것이다. 설상가상 이 해에 대구 지역 고교 야구의 다크호스였던 야구부도 해체되고 말았다.      


우리나라 최초의 가톨릭 사제(司祭) 김대건(金大建) 신부(1821~1846) 이름을 딴 고등학교 야구부 선수들은 해체된 해에 대거 충암고로 옮겨 선수 생활을 이어갔다. 충암고는 1977년 봉황대기 전국 고교야구대회에서 정상에 올랐다. 창단 7년 만의 첫 우승이었다. MVP는 충암고 포수 조범현(1959~). 고등학교 3년 선배다. 감독은 김성근(1942~).     


프로야구 삼성 라이온즈에서 선수로 뛰었던 권영호(1954~), 허규옥(1956~), 장태수(1957~)도 모교 야구부 출신이다.      


#입학식 날 만난 어릴 적 동네 친구

 입학 첫날 맞닥뜨린 학교 인상은 달갑지 않았다. 겨울방학 내내 길러 더부룩한 머리를 자르지 않고 교모(校帽)를 썼다. 머리에 썼다기보다 얹은 느낌이 들었다. 아들의 입학식에 참석한 학부모 몇 명도 드문드문 눈에 띄었다.     


입학식 행사가 시작되기 전, 누가 내 이름을 불렀다. 3년여의 세월이 흘렀지만 금방 얼굴을 알아봤다. 한동네에 살다 초등학교를 졸업하면서 다른 곳으로 이사한 어릴 적 친구였다. 그 친구 옆에 친구 어머니가 서 있었다. 기억이 나 얼른 인사를 드렸는데 친구 어머니가 한 말씀 하셨다.     


‘니 머리가 와 그리 기노? 괜찮겠나?’     


 반(班) 배정 결과 1학년 6반. 입학식 날 만난 옛 동네 친구도 같은 반이었다. 동네 친구 말고 아는 아이는 아무도 없었다. 중학교 동문(同門) 몇 명도 있었으나 반이 달랐다.      


#종잡을 수 없었던 담임 선생

 담임 선생의 담당 과목은 생물. 여성 톤의 목소리와 여성스러운 몸짓이 인상적이었다. 선입견은 곧 깨졌다. 담임에게는 아무도 예상치 못하게 순간적으로 감정이 폭발하는 무서운 데가 있었다. 입학 초 생물 시간에 겉보기와 다른 담임 선생의 두려운 면모가 실체를 드러낸 적이 있었다.     


담임이 수업 내용을 칠판에 판서(板書)하며 열심히 설명하던 중 맨 앞줄의 아이 한 명이 웃으며 싱거운 소리를 하자 갑자기 교실 분위기가 험악해졌다. 담임 선생은 앉아 있는 그 아이의 뺨을 여러 차례 후려갈기며 분을 삭이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날벼락을 맞은 아이

느닷없는 사태에 잔뜩 긴장한 우리는 침묵했다. 담임의 행동이 그럴만했다는 반응보다 이해하기 어렵다는 기류가 더 강하게 흐르고 있었지만 모두 속으로만 말을 삼킬 뿐이었다. 누구보다 날벼락을 맞은 아이가 가장 황당했을 것이다. 그 아이는 분명 별생각 없이 무심결에 내뱉은 말이었다고 느껴졌다. 고개를 숙이고 닭똥 같은 눈물만 흘리고 있는 모습에서 그런 심정은 더욱 굳어졌다.


 체벌이 일상적일 때 선생님들은 때리면서 왜 때리는지 그 이유를 꼭 적시했다. 그런데 담임은 그렇지 않았다. 우리도 당황했는데, 뜻밖의 봉변을 당한 당사자는 오죽했을까. 그날 이후 우리는 담임 앞에서 함부로 입을 놀리지 않았다.     


때 반 친구들과 찍은 사진아랫줄 오른쪽에서 두 번째가 나. <사진=대건고 30회 졸업 앨범>


#4월 고사(考查)의 의미

 입학 후 4월에 치른 첫 시험, 누가 누군지 모르는 신입생들의 학업 정체성이 처음으로 드러나는 순간이다. 나는 영어와 수학에 좀 더 비중을 두고 공부했고, 다른 과목들은 수업 진도에 맞춰 만족스럽지도, 그렇지 않지도 않게 준비했다.      


입학 후 4월 고사(考查)는 아직 서먹서먹한 학생들의 자존심이 걸린 첫 시험 무대라 여러모로 의미가 남달랐다. 영어는 난이도가 성문기본영어 수준이라 막히는 문제가 별로 없었고 수학도 뜻밖에 덕을 좀 본 셈이었다. 당시 수학 잡지로 인기가 많았던 월간 ‘수학 세계’를 구독했기 때문이었다.      


#월간 수학 세계

수학 세계 78년 3월호에 실린 예상 문제 중 몇 개가 학교 시험에 출제된 것이다. 주관식 한 문제를 풀지 못했는데 그것도 수학 세계에 게재된 문제였다. 급하게 훑어보느라 꼼꼼하게 챙기지 못한 내 불찰이라 속이 쓰렸지만 어쩔 수 없었다. 가채점(假採點) 결과 전체적으로 나쁘지 않게 본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시험이 끝나고 며칠 후 담임 선생이 4월 고사 결과를 발표했다. 발표 내용은 간단명료했다. 담임은 반 석차 1등만 호명(呼名)했다. 괜찮은 성적을 예상했으나 막상 내 이름이 들려 나도 깜짝 놀랐다. 아주 잘 본 것도 아니었고 연합고사 성적 전교 1등이 우리 반에 있다는 사실을 미리 알았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첫 통과의례는 무사히 넘어갔고 자연스레 어울리는 무리가 형성됐다. 전교 1등 아이가 먼저 말을 걸어왔다. 절친(切親)이 된 그 아이와의 첫 대면은 그렇게 이뤄졌다. 이 무렵, 내면에 웅크리고 있던 이성(異性)에 대한 탐구 욕망도 깨어나기 시작했다. 체육관 공사는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도 재개되지 않았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