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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인권 Feb 09. 2024

학창 시절 풍속사(風俗史)

30. 당꼬바지

당꼬바지     


#획일성과 개성의 충돌

 학생복에도 유행이 있었다. 전교생이 색깔과 디자인이 천편일률(千篇一律)적인 제복(制服) 차림이었지만 제복이라고 다 같은 제복이 아니었다. 교복이라는 이름으로 획일성을 강요당한 학생들은 각자 나름의 방식으로 교모(校帽)와 상의, 바지 스타일에 독창성을 불어넣어 개성(個性)을 살렸다.      


이를테면 시커먼 교모 챙 가장자리를 두 손으로 구부려 휘어지게 각(角)을 잡는다거나 상의 옷깃을 풀어 헤치기 위해 단추 대용(代用)인 갈고리 모양의 쇠고리, 즉 후크를 일부러 채우지 않았다. 교모 각 잡기는 웬만한 아이들도 다 따라 한 70년대 학생 사회의 관행이었으나 후크를 채우지 않는 행동은 좀 달랐다. 반듯한 행동거지에 뒤따라야 할 복장 규정에 어긋나는 일이라 적발 대상이었기 때문이다.      


문제는 후크를 채우면 빳빳한 재질의 상의 옷깃이 목을 조여와 고개를 움직이기 불편한 탓에 아이들은 나름의 요령을 피웠다. 평소에는 눈치껏 후크를 풀었다가도 등교 시간만 되면 교문 앞에서 원칙을 지키는 척한 것이다.     


#교복 당꼬바지의 출현

 학생복에 깃든 통일성을 보란 듯이 허문 결과는 바지에서 드러났다. 이른바 당꼬바지, 라고 불린 무릎 아래에서부터 바지통이 좁아지는 스타일의 옷이다. 승마 바지를 닮았다는 당꼬바지의 형태는 이랬다.     


허벅지 부분은 펑퍼짐하고 무릎부터 차츰 폭이 좁아지면서 발목에 이르면 찰싹 달라붙게 생겼다. 발음에서 짐작되듯, 당꼬(たんこう)는 일본어로 탄광(炭鑛)을 뜻하는데 석탄을 캐는 광산(鑛山) 노동자들이 입는 바지에서 유래됐다는 설(設)이 유력하다.     


탄광에서 일할 때 바짓가랑이와 바지 밑단이 거치적거리지 않게 허벅지 부분은 헐렁하게, 무릎 아래에서 발목까지는 딱 붙게 만든 바지다. 노동의 편의성을 위해 고안된 기능성 바지인 셈인데 70년대 일부 불량한 학생들 사이에서 위세 과시용 바지로 변질돼 유행했었다.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한 드라마에 나오는 순사(巡査) 복장이나, 해방 후 군복 바지도 당꼬바지와 비슷했다.     

당꼬바지와 정반대의 바지가 나팔바지다. 나팔바지는 허벅지에서 무릎까지 몸매가 드러날 정도로 바지통이 좁은 형태지만 무릎부터 아래로 내려가면서 점점 넓어지기 시작해 아랫단에 이르는 모습이 나팔처럼 생겨 붙은 이름이다. 1960년대 유럽과 북아메리카 지역의 패션으로 인기를 끌면서 알려졌다.      


젊은이들의 작업복 패션이나 일상복으로 유통되는 남성용 당꼬바지. 70년대 바지통을 줄여 입은 교복 당꼬바지와 비교하면 발목이 드러날 정도로 바지 길이가 짧고 무릎 아래 통도 약간 넓다.


#1일 천하로 끝난 당꼬바지 체험

 입학 후 학교를 오가면서 당꼬바지의 정체를 알게 됐다. 그 교복이 그 교복인 칙칙한 학생복의 세계에서 당꼬바지는 단번에 눈길을 끌었다. 튀는 행동은 튀는 아이들이 한다고, 당꼬바지를 입고 다니는 아이들도 껄렁껄렁하거나 그런 척, 흉내를 내는 아이들이 많았다.     


봄바람에 홀리기도 했고, 괜스레 멋있어 보이고 싶어 객기(客氣)를 부리고자 한 마음에 취하기도 해 1학년 1학기 중반 어느 날 에라 모르겠다며 학교 근처 세탁소에 교복 바지를 맡겼다. 만용(蠻勇)에 기대 성취한 소원의 유효기간은 아쉽다기보다 다행스럽게도 그날로 끝이 났다.     


당꼬바지를 입고 집에 온 내 모습을 본 아버지는 버럭 고함을 질렀다. 예상한 바라 놀라지는 않았지만, 죄송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당꼬바지의 의미를 잘 알고 있었고 나도 그랬기 때문이었다. 공연한 나의 호기는 그렇게 1일 천하로 꼬리를 내리고 나는 원래의 자리로 다시 돌아왔다.     


#돌고 도는 유행(流行)

 유행도 다 한때라고, 다시는 볼 수 없을 줄 알았던 당꼬바지는 잊힐만하면 슬그머니 나타났다 사라지기를 주기적으로 반복하면서 최근 몇 년 새 젊은이들의 워크 웨어, 소위 작업복 패션이나 일상복으로 인기라니 유행은 돌고 도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지난해 아들이 입은 당꼬바지를 한 번 본 적이 있었는데 내 기억 속의 당꼬바지와는 비슷한 듯 달랐다. 허벅지 통이 헐렁하고 바짓가랑이와 밑단이 좁은 것은 닮았지만, 발목이 드러나게 길이가 짤막해 옛날 당꼬바지라 하기에는 좀 어색했다. 교복 당꼬바지는 무릎 아래 통도 요즘 당꼬바지보다 더 좁았다.     


흥망성쇠(興亡盛衰)의 세상 이치처럼 당꼬바지도 시대감각이 반영되는 유행의 물결에 따라 부침(浮沈)을 거듭하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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