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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인권 Feb 12. 2024

학창 시절 풍속사(風俗史)

31. 욕쟁이 괴짜 선생과 종교 수업

욕쟁이 괴짜 선생과 종교 수업     


#괴짜 선생의 출현

 기이했다. 우리 앞에 나타난 선생님의 입에서 가장 먼저 튀어나온 말은 쌍소리였다. 예상 밖이었다.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상황 앞에서 다들 어안이 벙벙했다. 놀란 우리를 쳐다보는 선생님의 눈빛이 너희들 왜 그런 표정? 이어서 우리는 또 한 번 놀랐다.      


거친 된 발음의 두 음절 욕설은 종교 선생의 캐릭터를 암시하는 조짐이었고 앞으로 진행될 종교 수업의 기류를 어림짐작게 하는 신호이기도 했다.      


고등학교 1학년 1학기 첫 종교 수업. 키가 훤칠하고 다부진 체격에 우락부락한 인상을 한 종교 선생은 우리가 생각한 통상적 이미지와는 너무 달랐다. 종교 선생의 외모라고 딱히 정해진 바는 없겠지만 통념상 그러할 것이라는 일반적 인상을 여지없이 무너뜨리는 바람에 학생들 모두 궁금증이 일었다.      


#욕을 입에 달고 산 종교 선생

종교 선생은 호방했고 욕을 입에 달고 살았다. 첫마디도 욕이었고 그다음 말도 다르지 않았다. 수업 시작에 앞서 스스로 밝힌 종교 선생의 이력(履歷)에서 종교적인 색채는 찾아볼 수 없었다. 선생의 전공(專攻)이 종교와는 거리가 멀었고 살아온 행적(行跡)도 그러했으며 추구하는 가치 또한 실천주의(實踐主義) 성향이 강한 현실 지향적이었기 때문이었다.      


 종교 선생은 한마디로 솔직 담백하고 튀는 스타일이었다. 가톨릭계 학교라 종교 수업이 정규 과목으로 편성돼 있었고, 시험 점수에도 반영됐다. 중학교 성경 시간 때 그랬던 것처럼 종교 수업 때도 기도를 필수 통과의례로 생각한 나의 고정관념이 형해화(形骸化)된 것도 이 무렵이었다.      


다른 아이들도 나와 생각이 다르지 않았던지 우리는 기도(祈禱)의 기, 자도 입 밖에 꺼내지 않는 종교 선생에게 어느 날 선생님, 기도 안 합니까, 라고 돌발적인 제안을 했다. 어이없다는 듯 피식, 웃고 난 선생은 우리의 예상대로 즉각 도발적인 답변을 내놨고 교실 안은 와, 하는 함성으로 들썩들썩했다.      


고등학교 시절 수업 풍경. 70명에 가까운 학생들로 앞, , , 우 공간이 빼곡하다. <사진=대건고 30회 졸업 앨범>


#종교 선생의 기도관

 우리는 수업 때마다 들어 몸에 밴 종교 선생 표(表) 습관성 육두문자를 바랐고, 종교 선생은 우리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차마 필설(筆舌)로 옮길 수 없는 종교 선생의 기도관(祈禱觀)은 당신의 자유분방하고 직설적인 기질과 분리해서는 생각할 수 없을 터인데, 말에서 고약하고 상스러운 표현을 덜어내면 대략 이랬다.     


기도? 기도가 뭐꼬? 너그가 생각하는 기도는 기도가 아니다. 기도는 남이 보라꼬 하는 게 아니란 말이다. 기도하고 나쁜 짓 하느니 안 하는 게 낫고, 마음속으로 하는 기도가 진짜 기도다. 알아들었나? 너그도 기도하기 싫어하는 거 다 안다.     


스스로 종교 수업을 못마땅해하는 눈치라는 점을 알고 있으면서도 종교 선생의 입에서 나온 발언은 파격적이었다.     


 듣고 보면 틀린 말도 아니다. 물론 종교인들은 생각이 다를 것이다. 종교 선생의 기도관에 대해 그럴 수도 있겠다는 일반인의 시각과 달리 종교인들의 눈에는 이단아로 비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개인적으로 종교 선생이 종교 수업을 담당하게 된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에서 비롯된 게 아닐까, 싶었다. 어쩔 수 없는 일이 무어냐고 물어볼 필요는 없어 물어보지 않았고, 종교 선생도 저간의 속사정을 굳이 밝힐 이유가 없어 내색하지 않았을 것이라 혼자만의 상상을 해봤다.      


#인기가 많았던 종교 수업   

 어쨌거나 우리는 선입견과 고정관념을 뒤흔든 종교 수업이 재미있고 즐거웠다. 고등학교 때 종교 수업은 이례적으로 학생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종교 재단에서 운영하는 학교를 나온 사람은 알겠지만, 교리(敎理) 위주의 설교(說敎)식 종교 수업이 학생들의 흥미를 끌기란 쉽지 않다. 들어도 그만, 안 들어도 그만인 내용에다 상급 학교 진학을 위한 입시 과목도 아니라 긴장감이 조성되기 어렵고 주목도도 떨어질 수밖에 없다.     


아마 학교 재단의 윗분들도 이런 교실 사정을 모르지는 않았을 것인데, 우리가 종교 수업을 좋아한 진짜 이유는 몰랐을 것이다.      


반(反) 특권의식, 탈권위적이었던 종교 선생의 수업 내용은 세 줄기로 진행됐다. 사춘기 학생 사회에서나 난무할 비속어와 통속적인 저잣거리 뒷담화로 수업 초반 분위기를 띄운 선생은 갑자기 진지한 표정을 지으며 민감한 사회적 이슈에 대해 열변을 토했다. 민감한 이슈는 대개 낯부끄러운 줄 모르는 정치인들의 민낯과 권위적인 교육계 풍토, 학교 행정의 그늘진 구석에 대한 거침없는 비판이었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학생들이 몰입한 수업이 후반부로 접어들고도 한참 지나고 나서야 선생은 종교 선생 본연의 자세로 돌아가 종교의 유래와 가톨릭교회의 역사, 성경 교리를 설명하는 식이었다. 말똥말똥하던 아이들의 눈이 풀리고 하품이 나올라치면 수업 종료 벨이 울렸다.


졸업 전, 종교 선생은 평소 바람대로 교단(敎壇)을 떠나 정책 기관으로 자리를 옮겼다. 나의 상상이 아주 틀린 것만은 아니었다.      


 엄중했던 70년대, 시대상을 직시하는 발언을 서슴지 않았던 몇 안 되는 고등학교 은사(恩師) 중 종교 선생에 관한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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