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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인권 Aug 07. 2024

베이비 붐 세대의 주말 밥상 이야기

7. 헌신적인 음식, 닭백숙

7. 헌신적인 음식, 닭백숙     


#신출귀몰한 토종닭

 아주 어렸을 때 시골에서 있었던 일이다. 경북 상주의 큰아버지 댁에서는 나와 형들이 갈 때마다 마당에서 뛰놀던 닭을 잡았다. 닭 잡는 일은 늘 할머니가 도맡았다. 할머니는 큰아버지 댁과 대구 우리집에 번갈아 머물렀다. 시골 마당에서 키우는 시골 닭은 몸집이 컸고 날랬다. 활동 반경이 넓어 운동량이 많고 먹을 것도 널려 있어 발육 상태가 빠르고 좋아서였을 것이다.


내가 다가갈라치면 시골 닭은 기다렸다는 듯이 날개를 퍼덕거리며 훌쩍 날아올라 담벼락 위로 도망치곤 했다. 뒤돌아보면 어느새 마당으로 내려왔는지 열심히 모이를 쪼아 먹고 있었다. 담벼락 높이가 족히 2미터는 됐을 텐데 눈 깜짝할 사이에 오르고 내리기를 밥 먹듯이 자유자재로 하는 모습이 신기했다. 어린 내 눈에 닭들은 날아다녔다. 닭은 날개 달린 짐승이라 날아다니는 것이 당연하다고 여겼으나 도시에서 본 닭들은 그렇게 날지를 못했다.     


깨끗이 씻은 영계 두 마리


해가 어둑어둑해지면 닭들은 모두 마당 한 구석에 철삿줄로 엮어 맨 닭장 속으로 들어갔다. 닭의 수는 꽤 많았는데 한 여남은 마리는 됐던 것으로 기억한다. 큰아버지 댁에서는 소도 키우고 돼지도 키웠다. 비호(飛虎)같은 몸놀림이 몸에 밴 닭을 할머니는 아무렇지도 않게 쉽게 낚아챘다. 할머니가 닭을 사로잡는 기술은 이랬다.     


#할머니의 닭 생포 작전

모이가 든 소쿠리를 받쳐 든 할머니가 마당으로 내려서면 닭들이 할머니 곁으로 모여들었다. 할머니가 입으로 ‘구구구’ 소리를 내며 한 움큼씩 쥔 모이를 땅바닥에 휘리릭 뿌리면 닭들은 서로 먼저 먹겠다며 경쟁적으로 달려들었다. 닭들을 유심히 지켜보던 할머니는 마침내 결심이 선 듯, 한 놈을 노려보다가 별안간 그놈의 모가지를 한 손으로 움켜쥐었다.


할머니는 늘 등을 돌리고 있는 닭을 정조준했다. 찰나에 닭을 낚아채는 할머니의 솜씨는 놀라웠다. 뒤에서 지켜보던 우리 형제들은 할머니의 손아귀에 목이 잡혀 죽겠다고 소리를 지르는 닭의 모습이 우스워 낄낄대면서 박수를 보냈다. 닭이 지르는 소리를 인간이 알아들을 리는 없겠지만 운명이 다한 자신의 신세를 본능적으로 알아챈 나머지 저절로 나오는 체념과 발악의 징표일 것이다.     


깐 마늘과 대추, 백숙용 약재 티백


닭의 경계심리를 모이로 꼬드겨 한눈을 파는 사이에 벼락같이 덮치는 할머니만의 노련한 생포(生捕) 작전은 기술을 넘어 오랜 세월에서 곰삭은 손동작의 예술이었다. 본능적인 욕망 앞에서 닭은 무릎을 꿇었고 우리 형제들이 큰아버지 댁을 방문할 때마다 똑같은 행동이 되풀이됐다. 닭들의 학습 효과는 태생적인 식탐 욕망을 이길 수 없었다. 식욕(食慾)도 본능이고, 삶에 대한 욕구도 본능일진대 닭들이 전자를 선택하는 것을 보니 그들은 숙명적으로 그런 삶을 타고났는지도 모르겠다.


형들과 나도 몇 번 할머니의 흉내를 내봤으나 그때마다 닭들이 놀라 내지르는 울음소리만 요란할 뿐, 닭들은 부리나케 달아나 버렸다. 형제들의 의도를 눈치채기라도 했듯이 닭들은 우리의 손동작을 읽고 있었다. 경험으로 스스로 익혀 체화(體化)한 것과 흉내를 낸 결과는 역시 달랐다. 닭요리는 항상 백숙이었다. 나의 최애(最愛) 닭요리가 백숙인 것도 어렸을 때의 이런 사정과 무관하지 않다.      


끓는 물에 닭을 데치는 모습


#백숙과 삼계탕

 백숙(白熟)과 삼계탕(蔘鷄湯)은 형제처럼 닮은 음식이나 사전적 정의에서는 미세하게 차이가 난다. 백숙은 한자 명칭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고기나 생선 따위를 맹물에 삶거나 끓인 음식을 말하나 통념적으로는 닭백숙을 일컫는다. 닭백숙의 정통 요리법은 내장을 제거한 닭을 끓는 물에 살짝 데친 뒤 아무것도 넣지 않은 밍밍한 맹물에 통째로 삶는 것이다.


반면 삼계탕은 병아리보다는 크나 아직 덜 자란 어린 영계의 내장을 빼내고 그 속에 찹쌀과 대추, 인삼, 밤 따위를 채운 뒤 푹 고아 끓인 보양식이다. 삼계탕에는 명칭의 첫 글자에 등장하는 인삼이 꼭 들어가야 한다.

백숙용 닭은 일반적으로 다 자란 닭이나 토종닭을 사용한다는 점에서 삼계탕과는 구분되나 영계로 백숙을 끓이기도 한다.


데친 닭과 마늘, 대추, 약재를 솥에 넣고 내용물이 충분히 잠길 만큼 물을 넉넉하게 붓는다.


사전적 정의와는 상관없이 음식점에서 내놓는 백숙이나 가정집에서 식탁에 올리는 백숙에도 찹쌀과 대추, 백숙용 약재에다 인삼까지 넣는 경우도 많기에 이름만 다를 뿐 삼계탕과의 구분은 사실상 의미가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삼계탕집에 가면 다양한 한방 약재를 넣고 삶은 한방 삼계탕 메뉴를 확인할 수 있다. 백숙과 삼계탕 둘 다 마늘을 여러 개 넣는데 잡내를 잡고 국물이 느끼해지는 것을 막아 주는 효과가 있다. 알다시피 마늘은 대표적인 항암 식품이라 백숙과 삼계탕 모두 몸에 좋은 음식일 수밖에 없다.     


솥에서 보글보글 소리가 나고 끓기 시작하면 설익힌 찹쌀을 넣는다.


닭을 삶는 시간은 크기가 압도적인 토종닭을 사용하는 토종백숙이 제일 많이 걸리고 백숙, 삼계탕의 순이다. 도심지 외곽의 유원지에 가면 종종 토종닭 전문 백숙집을 볼 수 있다. 주문하고 음식이 나오기까지 거의 1시간 가까이 소요돼 상당한 인내심을 갖고 배고픔을 참아야 한다. 먹어본 사람은 알겠지만, 닭다리 하나가 일반 닭의 거의 두 배에 육박하고 살이 찰지며 쫄깃쫄깃한 게 백숙 요리의 으뜸이라 할만하다.     


#옻닭

 백숙 전문 음식점에서 파는 옻닭은 옻나무 껍질을 넣고 끓인 백숙으로 여름철의 대표적인 보신(補身) 음식이다. 옻닭을 먹다가 옻이 오르면 피부가 가렵고 빨갛게 부으며 물집까지 생길 수 있어 조심해야 한다. 돌아가신 부모님은 유달리 옻닭을 좋아하셨다. 여름만 되면 아버지 어머니를 따라 한 달에 두세 차례 대구 앞산 자락의 유명한 백숙집을 찾았던 기억이 생생하다. 두 분은 옻닭을, 우리 3형제는 옻이 오를까 봐 일반 백숙을 땀을 뻘뻘 흘리며 맛있게 먹었다.


찹쌀 투입 후 중불에서 30분 이상 팔팔 끓인다.


거의 20년 전 음식점에서 주는 옻 알레르기 방지 알약을 삼키고 옻닭을 처음 먹은 적이 있었다. 옻은 오르지 않았는데 갈색 계통의 국물이 익숙지 않았고 국물 맛도 별로였다. 내 입맛에는 옻닭이 맞지 않았다.     


#볼뻔한 닭 잡는 광경

백숙과 삼계탕은 땀을 많이 흘리는 여름에 몸을 보호하고 원기(元氣)를 회복하는 데에 도움이 되는 음식으로 인기가 높다. 초복과 중복 말복에 삼계탕집이 문전성시를 이루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내가 어릴 때 고향집에서도 시장에서 막 잡은 닭을 사 와 백숙을 만들어 먹었다. 네 식구라 어머니는 꼭 큰 닭 두 마리를 샀다.


백숙 요리가 끝나갈 때쯤 후추도 두세 번을 친다.


고향집 골목길을 벗어나 신작로(新作路)를 사이에 두고 들어선 재래시장에 가면 생닭을 잡아 파는 닭집이 두세 군데나 있었다. 초등학교 때 어머니를 따라 닭집에 가서 닭을 잡는 모습을 볼 기회가 있었으나 실제로 보지는 못했다. 내 눈으로 직접 보는 것이 무섭기도 했고, 닭의 마지막 순간을 목격하고 나면 식욕이 달아난다는 어머니의 만류도 한몫했다. 지금 생각해도 안 보길 잘한 것 같다.


#닭백숙 장보기

 주말마다 가는 동네 마트에서 초복(初伏)을 이틀 앞두고 할인 판매하는 영계 두 마리와 백숙에 들어갈 티백 형태의 약재 한 봉지를 샀다. 평상시에는 10호(951~1,050g)짜리 생닭 한 마리로 백숙을 끓인다. 약재의 내용물은 황기와 헛개나무, 엄나무, 말린 대추 몇 알이다.


드디어 닭백숙 완성! 푹 삼킨 닭고기와 미음처럼 부드럽게 풀린 찹쌀, 진하게 우러난 육수에서 맛을 짐작하고도 남는다.


아들과 딸이 오피스텔을 얻어 독립한 후 4인용 식탁은 집사람과 나, 둘만의 차지다. 영계 두 마리 혹은 10호 크기의 닭 한 마리에 찹쌀을 넣고 백숙을 끓이면 2인분 한 끼 식사로 충분하고도 남는다. 남은 백숙은 닭죽으로 먹는다. 백숙에 든 닭고기는 닭고기대로, 닭죽은 닭죽대로 맛있다. 식사량이 많지 않은 나는 닭죽 한 그릇이면 배가 부르고 먹기도 편해 닭죽을 좋아한다. 닭죽 한 숟가락에 김치 한 조각을 얹어 먹으면 세상 부러울 게 없다.      


#백숙 요리의 전모(全貌)

 가장 먼저 할 일은 생닭을 뜨거운 물에 데치기 전에 하는 닭 손질이다. 손질 방법은 간단하다. 닭 날개 끝마디의 뾰족한 부분과 엉덩이 아래쪽에 붙어 있는 기름 덩어리는 물론 꽁지까지 가위로 잘라내면 된다. 모두 불필요한 부위이고 기름 덩어리는 거슬리는 냄새를 유발할 수도 있다. 조금 더 세심하게 손질하고 싶다면 닭의 몸 군데군데 축 늘어진 주름진 지방도 싹둑 잘라준다.      


밥상에 차려진 닭백숙.


손질한 닭은 끓는 물에 1분 남짓 데친 뒤 흐르는 물에 몇 번 헹구고 약재와 함께 솥에 넣는다. 냉장고에 보관 중인 대추 여남은 개와 깐 마늘 열댓 개도 준비한다. 인삼과 대파는 생략. 넣으나 안 넣으나 크게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 개인적 취향이니 괘념치 마시길. 잊지 말아야 할 게 하나 있다. 닭의 몸에서 나는 잡내를 제거하기 위해 넣는 소주다. 소주의 양은 소주 컵 기준으로 반 컵~한 컵 정도.      


물은 닭이 충분히 잠길 정도로 넉넉하게 채운다. 요리 과정에서 찹쌀이 물을 먹기 때문이기도 하고 찹쌀이 퍼진 구수한 백숙 국물을 식구들이 좋아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우리집의 닭백숙 상차림은 단출하다.      


백숙용 솥에 가스 불을 켠 다음 작은 냄비 하나를 꺼낸다. 나는 찹쌀을 백숙 솥에 바로 넣지 않고 작은 냄비에서 먼저 설익힌다. 찹쌀 양은 쌀통용 계량컵으로 한 컵에다 3분의 1컵 정도를 더한 양이다. 찹쌀 냄비가 끓기 시작하면 약불로 줄이고 설익은 상태에서 불을 끈다.     


백숙용 솥에서 끓는 소리가 날 때 찹쌀을 집어넣는다. 육수의 간을 맞출 가는소금도 가미한다. 소금의 양은 티스푼으로 두 술이다. 어디까지나 우리집 기준이다. 이때부터 중불로 불의 세기를 낮추고 30분 이상 끓인다. 끓는 도중에 큰 주걱으로 백숙용 솥 밑바닥을 한 번씩 저어준다. 찹쌀이 눌어붙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먹기 편하고 맛도 좋아 한 끼 식사로 모자람이 없는 닭죽


육수가 넘칠라치면 솥뚜껑을 대각선 방향으로 비스듬히 기울인다. 육수에 뜬 기름 거품도 걷어내야 한다. 불을 끄기 전에 후추도 두세 번 친다. 닭고기에서 나는 느끼한 냄새를 희석하고 후추 특유의 자극적인 향이 입맛을 당기게 하는 효과가 있다. 재료 손질에서부터 백숙이 완성될 때까지 걸리는 시간은 대략 1시간 이내다.


백숙을 식탁에 올리기 전 마지막으로 할 일이 남아 있다. 집게와 가위를 들고 푹 익은 닭을 먹기에 알맞게 잘라 큰 그릇에 옮겨 담는다. 집사람과 마주 앉아 부드럽게 잘 익은 고기 한 번 뜯어먹고 흐물흐물해 술술 넘어가는 찹쌀 한술 떠서 먹는 백숙의 맛은 행복한 밥상의 향연(饗宴)이다. 고기 살점을 가는소금에 아주 조금 살짝 찍어 먹어도 색다른 맛이 난다.      


닭백숙을 먹을 때 빠지지 않는 송송 썬 오이와 양파, 풋고추


 백숙을 먹을 때는 송송 썬 오이와 양파, 풋고추도 빠지지 않는다. 입이 개운해지고 더부룩한 뒷맛도 달아난다. 백숙 요리는 두세 끼를 책임지는 헌신적인 음식이다. 말복(末伏)이 낀 다음 주 주말에도 백숙 밥상을 차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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