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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인권 Aug 21. 2024

베이비 붐 세대의 주말 밥상 이야기

13. 고등어조림

13. 고등어조림


#국민 생선 고등어

 등 푸른 생선 고등어는 국민 생선이다. 값이 비싸지 않고 그 어떤 생선보다 살이 튼튼하고 실해 먹을 것이 많아 먹을 맛이 난다. 웬만한 크기 한 마리면 두 명이 먹고도 남아 가성비가 뛰어나다. 잔가시는 거의 없고 큰 가시만 두드러져 갈치처럼 살을 발라내느라 애를 쓸 필요도 없다. 구워 먹어도 맛있고 조림으로 먹어도 맛있다.      


예닐곱 살 때는 젓가락질이 서툴다. 어머니는 늘 고등어 살점을 손톱 크기만큼 발라내 내 밥숟가락 위에 얹어 주었다. 갈치구이가 밥상에 올랐을 때도 어머니는 똑같은 행동을 나에게 보여주었다. 고등어와 갈치 맛의 차이를 잘 모를 때라 살이 더 많아 먹을 게 많은 고등어가 더 좋은 생선이라고 생각했다.


미각적 즐거움보다는 양적 포만감에 마음을 뺏기기 쉬운 어린아이의 심리가 그대로 반영된 결과였다. 다행히 우리집 밥상에는 갈치보다 고등어가 올라오는 날이 더 많았다. 생선값을 알 리 없는 내가 바라는 바였지만, 그것이 내 취향과 입맛에 대한 배려와는 아무런 상관없이 이루어진 일이라는 것은 나중에 알게 됐다. 그때도 고등어는 갈치보다 쌌다. 누구에게나 있을 법한 유년 시절의 기억이다.      


어머니가 어린 나에게 그랬듯이, 나도 아들과 딸이 어렸을 때 고등어 살을 발라 그들의 밥숟가락 위에 얹어 주곤 했다. 아들과 딸이 내가 얹어 준 고등어 살점을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면서 아득한 옛 기억이 떠올랐고 30대 중반이었을 젊은 어머니의 얼굴도 되살아났다.      


깍둑썬 무와 손가락 마디 크기로 다듬은 대파, 청양고추. 우리집 고등어조림 요리의 부재료들이다.


고등어를 등 푸른 생선이라 하는 것은 등 부분에 푸른빛을 띤 흑색 물결무늬가 있어서다. 생선회의 제왕 참치와 삼치도 등 푸른 생선이다. 고등어는 불포화지방산을 함유한 생선이다. 불포화지방산은 심장질환 예방 등 우리 몸의 건강 기능을 촉진하는 유익한 성분이다. 다만 과다 섭취하면 역효과가 난다. 과유불급(過猶不及)은 만고(萬古)의 진리다.


고등어는 주로 구이와 조림으로 먹지만 일식집에서는 초밥용으로 사용하고 일부 횟집에서는 고등어회를 선보이기도 한다. 고등어 통조림도 있다. 식용 방법이 다양하다는 것은 그만큼 맛이 뛰어나다는 증거다. 저렴하고 살이 많고 가시가 적고 맛있고 몸에 좋은 고등어가 국민 생선으로 불리는 이유다.      


#자반고등어

 고등어의 대중화와 관련해 빼놓을 수 없는 게 자반고등어다. 간고등어라고도 하는 자반고등어는 고등어를 소금에 절여 염장(鹽藏) 처리한 것이다. 등 푸른 생선인 고등어는 지방이 많아 상온에서 빠르게 상한다. 시간이 지나면서 고등어 비린내가 심해지는 이유다.


고등어를 바다에서 잡아 올리자마자 소금으로 간을 하면 변질되지 않고 멀리 떨어진 내륙 지역에서도 안심하고 먹을 수 있다. 안동 간고등어가 자반고등어의 대명사처럼 굳어진 이유는 과거 포항 일대 근해(近海)에서 염장 처리한 고등어가 안동에서 대량으로 유통된 데서 비롯됐다.


#고등어회   

 도심지 식당가에서 먹기가 쉽지만은 않지만 드물게 고등어회를 내놓는 횟집도 있다.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뒷골목에 남한에서 제일 큰 산 이름을 상호로 끌어다 쓴 꽤 소문난 횟집이 있다. 30여 년 전 제주도 출신 직장 상사의 소개로 개업한 지 얼마 안 된 그 집에 간 적이 있었다.


그곳에서 고등어회를 난생처음 먹었다. 날것 그대로의 고등어회에서는 특유의 생선 비린내가 강하게 났다. 고등어를 회로 먹으면 등 푸른 생선의 특성상 비릿한 냄새는 어쩔 수가 없다. 살균력이 뛰어난 식초에 절인 초절임 방식으로 고등어회를 많이 먹는 것도 다 그런 이유에서라고 한다. 고추냉이를 듬뿍 얹고 간장을 찍었는데도 비린내가 완전히 가시지는 않았다. 상사는 그게 바로 서울에서는 먹기 힘든 고등어회의 맛이라며 아직 입맛이 여물려면 한참 멀었다고 놀렸다.     


고등어회와 관련해 뒤늦게 안 사실이 하나 있다. 바닷가에서 금방 잡은 고등어를 그 자리에서 회를 쳐서 먹게 되면 ‘비린내의 비’ 자도 느낄 수 없고 천상(天上)의 맛에 황홀해진다는 것이다. 여태껏 그럴 기회는 오지 않아 확인할 길이 없으나 언젠가 다른 술자리에서 제주도 출신 상사는 맞는 말이라고 거들었다.


냄비 바닥에 무를 깔고 그 위에 큼지막하게 토막 낸 생물 고등어를 가지런히 얹는다. 소주 컵으로 소주 반 컵과 물 한 컵도 붓고 가스 불을 켠다.


#서민들의 술안주, 고갈비

 고등어는 술안주로도 즐겨 먹는다. 대표적인 요리가 고갈비로 통칭하는 고등어 소금구이다. 고갈비는 생물 고등어의 배를 반으로 갈라 소금을 뿌린 뒤 석쇠에 구운 생선을 말한다. 국내 고등어 유통망의 전진기지인 부산에서 1960~70년대에 고안돼 전국 각지로 퍼져 나가면서 서민들의 술안주로 자리매김했다.


전통적인 방식의 고갈비는 소금을 친 뒤 6시간 정도 숙성시켜 구워 먹는다. 장시간 염장한 간고등어보다 신선하고 담백하면서 고소한 맛이 뛰어나다. 전국구 술안주로 정착하는 과정에서 고갈비의 스펙트럼은 고갈비 양념구이로 확장됐다. 고갈비 양념구이는 배를 갈라 소금 간을 한 고등어에 간장 양념 또는 고추장 양념을 발라 구운 것이다. 자극적인 맛을 선호하는 술꾼들의 취향이 낳은 산물이랄 수 있겠으나 고갈비 예찬론자들 사이에서는 아류(亞流)로 취급받는다.     


고갈비라는 명칭의 유래는 정확하게 밝혀진 바는 없으나 부산 지역 고갈비 상인들의 말을 종합하면 다음과 같이 유추할 수 있다.      


값비싼 소갈비나 돼지갈비를 사 먹을 형편이 아닌 시절에 고지방 생선이라 소고기나 돼지고기처럼 구울 때 연기가 많이 나는 고등어 소금구이를 일컬어 고갈비라 불렀다는 설이 있다. 살점이 풍성하고 노릇노릇하게 익은 고등어를 갈비처럼 뜯어 먹는다고 해서 고갈비라는 이름이 붙었다는 말도 있다. 정리하면 주머니 사정이 가벼워 갈비를 먹을 수 없는 서민들이 석쇠에 고등어를 구워 먹으며 대리 만족을 느낀 데서 유래된 저잣거리 명칭이 하나의 보통명사로 굳어진 것으로 짐작할 수 있겠다.      


무와 고등어가 익을 동안 양념장을 만들어둔다. 고춧가루와 진간장, 매실액, 맛술, 설탕, 다진 마늘, 후추를 섞어 만든 것이다.      


내가 대학생이던 80년대 초 대학가 술집에서도 고갈비는 막걸리 안주로 인기가 많았다. 용돈이 궁한 대학생들에게 고갈비는 싼값에 먹을 수 있는 맛있는 안주이자 단백질을 섭취할 수 있는 훌륭한 대체 먹거리였다. 고추냉이를 푼 간장에 고갈비를 찍어 먹으면 입이 개운해지는 맛이 기가 막혔다.      


서민들의 생선인 고등어를 노래한 대중가요도 있다. 가수 김창완(1954~)이 1983년에 발표한 ‘어머니와 고등어’란 노래다. 고등어구이로 집밥을 차리는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을 풋풋한 목소리와 일상적 가사로 표현해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곡이다.


#고등어조림 요리

 고등어조림은 고등어구이에 비해 손이 많이 가는 음식이다. 둘 중 어떤 요리를 더 좋아하느냐는 순전히 개인의 취향에 달려 있다. 조림은 조림대로 맛있고 구이는 구이대로 맛있기 때문일 것이다. 굳이 따지자면 매콤하게 간이 밴 생선 살과 얼큰한 국물 맛을 선호한다면 조림 쪽일 테고 고소한 풍미에 더 끌린다면 구이 쪽을 택하지 않을까, 싶다.      


고등어조림에는 생물 고등어 한 마리와 부재료로 무, 대파, 청양고추가 필요하다. 부재료는 일반적인 생선조림에 들어가는 채소 그대로다. 구이가 불맛이라면 조림 요리는 양념이 맛의 관건이다. 양념은 또 고등어 비린내를 잡기 위해서도 중요하다. 내가 우리집 밥상에 올리는 고등어조림 양념과 부재료는 굳이 넣지 않아도 될 군더더기를 걷어내 몸집이 가벼운 편이다.      


냄비가 끓기 시작하면 만들어둔 양념장을 고등어 위에 골고루 끼얹는다고등어가 잠길 정도로 물도 붓고 중불로 끓인다


양념장

나만의 양념장은 고춧가루 세 큰술과 진간장 네 큰술, 매실액 두 큰술, 맛술 두 큰술, 설탕 한 작은술, 다진 마늘 반 큰술, 후추를 넣고 섞어 만든다. 멸치액젓과 들기름, 굴 소스, 올리고당, 다진 생강, 심지어 된장까지도 추가한다는데 나는 일절 생략이다. 번거롭기만 할 뿐, 맛의 차이를 느끼지 못해서다.


어차피 집마다 입맛은 다 다르니 자기만의 원칙을 세워 식구들이 맛있다고 느끼면 그만이다. 두루두루 입맛을 만족시키는 솜씨라면 음식점을 차릴 일이다. 시각적 풍미를 위해 홍고추를 넣기도 하는데 나는 건너뛴다. 양파는 어쩌다 가끔 넣을 때도 있다.     


조리 과정

 익는 데 시간이 걸리는 무를 냄비 바닥에 깔고 그 위에 토막 낸 고등어를 얹는다. 무는 일반 무 기준으로 5분의 1 정도의 양을 깍둑썰기로 준비한다. 소주 컵으로 소주 반 컵과 종이컵으로 물 한 컵을 붓고 중불에서 끓인다. 생선조림이나 매운탕 요리에 소주를 가미하면 잡내 제거에 효과가 있고 청량감이 살아난다. 물을 붓고 끓이는 것은 물이 없는 상태에서 열을 가하면 무가 냄비 바닥에 눌어붙고 고등어의 수분이 과다 증발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무의 시원한 기운이 고등어 살에 스며들면서 끓기 시작하면 중불로 불의 강도를 줄인 뒤 양념장을 고등어 위에 골고루 끼얹고 청양고추도 얹어 준다. 냄비 가장자리로 돌아가면서 고등어가 잠길 정도로 물도 부어준다. 지글지글 끓는 소리가 나면 숟가락으로 양념 국물을 떠 고등어 위에 뿌려준 다음 약불로 조정한 뒤 뚜껑을 덮고 양념을 먹은 물이 자작자작하게 졸여질 때까지 놔둔다.


중간중간에 숟가락으로 양념 국물을 떠 고등어에 뿌려준 다음 마지막으로 대파를 넣고 후추를 친 뒤 1~2분 뒤 불을 끈다.


불을 끄기 1~2분 전 손가락 마디 길이로 썬 대파를 넣고 후추도 한두 차례 친다. 간은 양념장만으로 충분하니 신경 쓸 필요가 없다. 조리에 걸리는 시간은 35분 남짓이다.      


고등어 위에 또 무를 까는 방법도 있다. 조리 과정에서 고등어의 수분이 증발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다. 나는 이 방법 대신 고등어가 잠길락 말락 할 정도의 물을 채워 요리한다. 무의 비중이 너무 과하면 양념의 기운을 앗아가 양념 맛이 반감된다는 것을 경험적으로 깨달았기 때문이다. 물론 나만의 방식이고 나만의 요리 취향이라 정답일 수는 없다는 점도 참고하시길.


무와 고등어를 올리고 처음부터 양념장과 물을 붓고 끓이는 방식을 선호하는 사람도 있고, 무부터 익히고 고등어를 올리는 사람도 있다. 어차피 모범답안은 없는지라 선택사항이다.     


 고등어조림은 두툼한 고등어 살을 젓가락으로 뜯어먹는 즐거움과 함께 짭짤하고 매콤하게 졸여진 국물을 떠먹으며 밥에 비벼 먹는 풍미가 그만이다. 고등어조림은 등 푸른 생선 요리의 백미(白眉)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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