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는 한 달에 한 번꼴로 식구들을 데리고 불고기 식당을 찾았다. 외식(外食)하러 가는 날, 나와 두 형은 아침부터 불고기를 실컷 먹을 수 있으리란 기대감에 들떠 신이 나 있었다. 가족 외식은 대개 일요일 점심때 이루어졌고 메뉴는 이름만 들어도 군침이 도는 소불고기였다. 1970년대에 소불고기는 언감생심 꿈도 못 꿀 귀하고 비싼 음식이었다. 생활 수준이 지금 같잖아 소고기는 아주 특별한 날에만 먹을 수 있는 별미 중의 별미였다.
소고기 소비문화가 지금처럼 다양하지 못한 시절이라 음식점에서 파는 소고기의 요리 형태는 구이 메뉴가 드물었고 소불고기가 지배적이었다. 우리 식구는 대구에서 제일 큰 우시장(牛市場) 근처 불고기 골목에 자리한 식당만 애용했다. 아버지의 단골집인 줄로만 알았는데 소불고기 맛이 일대에서 가장 좋다고 난 소문이 괜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먹을 때마다 실감했다.
국거리용 소고기 300g
소불고기는 지금처럼 볼록하게 솟은 가운데 부분에 구멍이 숭숭 뚫려 있는 둥그런 불고기 전용 불판에 올려 익혀서 먹었다. 요리 방식은 그때나 지금이나 다를 바가 없지만 연탄불을 사용한 점이 차이라면 차이다.
그때는 소불고기가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음식인 줄 알았다. 움푹 팬 불판 가장자리를 따라 육수를 넉넉히 채우고 양념장으로 숙성시킨 불고기와 대파, 마늘, 버섯, 당면이 올려진 모습을 보고 있으면 군침이 돌다 못해 침이 꼴깍 넘어가는 소리가 들렸다. 형들이라고 다르지 않았고 3형제는 고기가 빨리 익기만을 기다리며 불판이 뚫어져라 쳐다봤다.
침묵이 흐르고 마침내 “이제 먹어도 된다”라는 아버지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우리 형제는 마파람에 게 눈 감추듯 빛의 속도로 소불고기를 먹어 치웠다. 첫 주문으로 4인분을 시키고 추가로 2~3인분을 더 시킨 것으로 기억한다.
냄비에 참기름을 두르고 소고기를 달달 볶기 시작한다.
고기와 밥을 다 먹고 난 뒤에도 아쉬움은 남았다. 그럴 때는 밥 한 그릇을 더 시켜 육수를 끼얹어 형들과 나눠 먹었다. 어릴 때 먹은 소불고기의 맛은 지금도 잊지 못한다.
#소고깃국의 위상
소고기는 지금도 가격 면에서 비교 우위의 으뜸 육류지만 옛날에는 더욱 그랬다. 가정에서 소고기를 먹는 방식은 주로 소고기를 넣고 끓인 소고깃국이었고 그나마 자주 먹을 수도 없었다. 소고깃국이 나오는 날에는 일부러 밥을 국에 말아 정신없이 퍼먹고는 국물이 모자란다며 어머니에게 더 달라고 말하곤 했었다. 이런 사정을 잘 아는 어머니는 늘 우리집에서 제일 큰 냄비에다 소고깃국을 끓였다.
지금 생각하면 소고깃국에 든 고기가 특별한 맛이 날 리 없는데도 소고기 자체가 귀하던 때라 소고기를 먹는다는 심리적 보상의식이 크게 작용했던 것 같다.
소고기가 어느 정도 익으면 나박썰기한 무를 넣고 볶는다.
어머니가 국을 퍼 담을 때 형제들은 자기 국그릇에 고기가 조금이라도 더 들어가게끔 경쟁적으로 주문을 했다. 그럴 때마다 어머니는 이미 우리의 마음을 알고 있다는 듯, 일부러 고기만 국자에 듬뿍 얹어 형제들을 안심시켰다. 어머니가 끓인 소고깃국은 경상도식이었다. 고춧가루를 풀어 국물이 빨갰고 매콤하면서 자극적인 맛이 식욕을 부추겨 땀을 뻘뻘 흘리면서 한 그릇을 다 비우고 나면 배도 부르고 힘이 났다.
내 또래들이 어렸을 때 소고깃국은 단순한 국이 아니었다. 고기반찬이 흔치 않던 시절이라 소고기는 없어서 못 먹는 귀한 대접을 받았다. 소고기를 자주 먹을 수 없다 보니 소고깃국을 먹으면서 소고기를 먹는다고 여겼다. 소고깃국은 냄새부터가 달랐다. 부엌에서 소고깃국이 한창 끓고 있을 때 방 안으로 솔솔 풍기는 냄새는 강렬했다.
고춧가루를 넣고 고추기름이 나올 때까지 볶는다.
아버지 세대의 로망이던 이밥(하얀 쌀밥)에 소고깃국이 1970년대의 자식들에게도 대물림된 것일까. 소고깃국이 밥상에 오르는 날이면 형들이나 나나 밥 두 공기에 소고깃국 두 그릇씩을 거뜬히 해치웠다. 소고깃국은 밥을 부르는 밥도둑이었다.
소고깃국을 먹을 수 있는 날은 정해져 있었다. 가까운 친척이 왔다거나 극진한 예우를 갖춰야 하는 손님이 방문한 날에는 어김없이 소고깃국이 차려졌다. 아버지에게 목돈이 생긴 날 저녁에도 소고깃국은 밥상에 올랐고 가족의 생일을 맞은 날 아침에는 소고기를 넣은 소고기미역국을 먹을 수 있었다. 어머니에게 특별히 기분 좋은 일이 생긴 날에도 소고깃국은 모습을 드러냈고 형제들이 월례고사를 앞둔 날에도 소고깃국이 등장했다.
물을 붓고 국간장과 다진 마늘을 넣은 뒤 팔팔 끓인다.
#경상도식 매운 소고깃국
경상도식 매운 소고깃국은 자극적이고 얼큰한 맛이 특징이다. 고춧가루가 들어가지 않은 맑은 소고기뭇국이 점잖은 맛이라면 소고깃국은 거칠고 사나운 맛이다. 소고기뭇국은 여성적, 소고깃국은 남성적이라고 할까. 소고깃국은 매운 만큼 시원한 맛도 뛰어나다.
경상도식 소고깃국은 외양이 육(肉)개장(醬)을 닮았으나 둘은 엄연히 다른 음식이다. 차이점은 여러 가지다. 우선 육개장은 고기로 육수를 내고 소고깃국은 무와 대파로 육수를 낸다. 육개장은 삶은 소고기를 가늘게 찢어 채소와 함께 끓이지만, 소고깃국은 신선한 국거리용 소고기를 칼로 썰어 요리한다. 육개장 요리에는 고사리와 토란, 숙주, 대파를 부재료로 사용하나 소고깃국은 무와 대파만 넣고 끓인다.
물이 비등점을 돌파하고 10여 분이 지난 뒤 대파와 청양고추를 넣고 2분 후 후추와 참기를 뿌린 뒤 불을 끈다.
요리 방법은 다음과 같다.
1. 소고기와 나박썰기한 무를 참기름에 달달 볶는다. 불은 중 · 약불.
2. 소고기와 무가 어느 정도 익으면 고춧가루 두 큰술을 넣고 계속 볶는다.
3. 고추기름이 나올 때쯤 물을 붓고 국간장 세 큰술과 다진 마늘 한 큰술도 넣은 뒤 간을 본다. 싱거우면 소금으로 간을 맞춘다.
4. 무가 완전히 익으면 대파를 넣고 2분 후 후추와 참기름을 뿌리고 불을 끈다. 매운맛을 좋아하면 대파와 함께 청양고추 한 개를 넣어준다. 양념은 2인분 기준.
얼큰하면서 시원한 맛이 뛰어난 경상도식 소고깃국
물에 빠진 고기는 먹지 않는다는 말이 가당치 않은 시기도 과거가 된 지 오래다. 소득 수준의 향상과 육류 소비문화의 발달로 소고깃국의 위상은 예전만 못하나 여전히 변함없는 국거리임에는 틀림없는 사실이다.
우리집 주말 밥상에도 소고깃국은 시대의 흐름을 거슬리지 못하고 어쩌다 한 번씩 추억의 음식으로 내비칠 뿐이다. 국거리의 절대 강자였던 빨간 소고깃국을 볼 때마다 짠한 감정이 밀려드는 것도 이 때문이 아닐까. 음식 문화의 부침(浮沈)이야 어쩔 수 없다 치더라도 향수는 향수로 남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