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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인권 Nov 19. 2024

베이비 붐 세대의 주말 밥상 이야기

46. 생굴 무침

46. 생굴 무침     


#굴과 석화(石花)

 겨울철 스태미나 식품, 굴의 계절이다. 굴은 11월부터 이듬해 4월까지가 제철이다. 석화라는 용어도 굴을 가리키는 말이다. 우리나라에서 석화와 굴은 동의어처럼 사용된다.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에서도 그렇게 정의하고 있다. 

‘석화 : 굴과의 연체동물을 통틀어 이르는 말. 갓굴, 가시굴, 토굴 따위가 있다.=굴.’


석화(石花)는 한자로 돌 석(石) 자에 꽃 화(花) 자로 돌꽃, 즉 돌에 핀 꽃이라는 뜻이다. 바위에 붙어 서식하는 모습이 흰 꽃처럼 보여 유래된 이름일진대 문학적이고 근사한 명칭이다.      

사전적 정의와는 상관없이 사회적인 통용을 기준 삼았을 때 굴은 껍질을 깐 것, 석화는 껍질이 붙어 있는 굴이라고 알려져 있다. 껍질이 두껍고 단단하며 양식(養殖)으로 채취한 것은 굴, 바다에서 캔 껍질이 얇은 자연산 굴은 석화라는 주장도 있으나 석화도 양식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논쟁의 여지가 있다. 


횟집이나 마트의 풍경도 참조할 만하다. 이맘때 횟집에서 볼 수 있는 굴찜의 굴은 껍질 속에 든 것이라 찌고 난 뒤 일일이 손으로 껍질을 까서 알맹이를 파먹어야 하고 껍질 한쪽을 벗겨서 내놓는 석화 또는 석화회(石花膾)라는 메뉴도 있다. 껍질을 까서 알맹이만 접시에 담아 초고추장에 찍어 먹는 것은 생굴 회라는 메뉴다. 


마트에서는 껍질을 벗긴 굴을 봉지에 담아 파는 봉지 생굴과 무게를 달아 가격을 매기는 생굴, 껍질로 둘러싸인 석화를 구분해서 판매하고 있다. 일반적인 인식과 횟집과 마트에서 맞닥뜨리는 상황을 포괄하자면 껍질이 없는 깐 것은 생굴, 껍질이 있는 것은 굴 혹은 석화로 구분할 수 있겠다.     


깨끗이 씻은 생굴. 두 봉지의 양이다 


#자산어보(玆山魚譜)에 기록된 굴

 정약전(1758~1816)은 저서 자산어보에서 굴을 모려(牡蠣)라 일컫고 가시굴은 소려(小蠣), 껍데기가 얇고 붉은 색인 것은 홍려(紅蠣), 껍데기가 얇고 검은색으로 바위에 붙어 있어 쇠 송곳으로 채취하는 굴은 석화(石華)라 기록했다. 


정약전은 모려의 큰 놈은 지름이 1척(30cm) 남짓이며 껍데기가 매우 두텁고 종이를 겹쳐 바른 것처럼 포개져 있으며 맛이 달고 좋다고 했다. 껍데기는 갈아서 바둑돌을 만들며 바위에 붙어 서식하는 것과 갯벌 속을 떠돌아다니며 사는 것이 있다고 구분해 놓았다. <자산어보, 정약전 · 이청 지음, 정명현 옮김, 서해문집, 2021, p149~p149에 나오는 내용을 참조>          


모려는 수컷 모(牡), 굴조개 려(蠣)가 합쳐진 한자어다.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이 규정한 모려의 정의는 자산어보의 그것과는 다소 다르며 한방의학(韓方醫學)의 약재로 사용된다고 풀이했다. 

‘모려(牡蠣) :『한의』굴의 살을 말린 것. 성질은 차며 몽정(夢精), 대하(帶下), 갈증, 도한(盜汗) 따위에 쓰인다.’ 굴 껍데기를 불에 태워 만든 가루인 모려분(牡蠣粉)도 한방업계에서 사용하는 약재다. 


손질한 미나리와 무양파대파청양고추


#생굴로 숙취를 푼 직장 선배       

 아주 오래전 일이다. 애주가(愛酒家)를 넘어 두주불사(斗酒不辭)형 술꾼이었던 직장 선배가 이런 말을 했다.

“어젯밤 고등학교 동문 송년회에서 술을 아주 많이 마셨는데 새벽녘에 집 냉장고에서 발견한 생굴 한 봉지를 대접에 담아 꿀꺽꿀꺽 삼켜서인지 숙취(宿醉)가 말끔히 가시더라.”     


기이했다. 생굴로 숙취를 해소한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던 나와 동료들은 허풍이 세기로 소문난 선배의 장난기가 또 발동됐구나, 라며 웃어넘겼다. 송년회 시즌인 겨울만 되면 선배의 근거 없는 너스레는 알람이 울리듯이 되풀이됐는데 근거가 없지만도 않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고서 적잖이 놀랐었다. 생굴에는 아미노산의 일종인 타우린 성분이 다량 함유돼 있다. 생굴에서 비릿한 냄새가 나는 이유도 타우린 때문이다. 그런데 이 타우린이 간의 해독 기능을 활성화하고 과음 후 원기 회복을 도와주는 존재라는 것이다.


안타깝게도 직장 선배는 60대 중반을 넘기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역시 술에는 장사 없다. 과유불급(過猶不及)이다.     


먼저 채소를 양념장에 버무린다.


#바다의 우유

 굴은 특유의 비린 맛과 냄새가 뚜렷해 웬만큼 좋아하는 사람도 날것으로 먹기에는 거북스럽다. 그런 점에서 생굴을 초고추장에 찍어 먹거나 채소와 양념으로 버무린 무침으로 먹는 음식 문화가 정착한 것은 자연스러운 결과일 것이다. 식초를 쳐서 갠 초고추장은 생굴의 비릿한 맛과 향을 순화시킨다.     


굴의 별칭은 바다의 우유다. 뽀얀 속살이 우윳빛을 닮았고 다양한 영양소를 고루 품고 있어 몸에 좋은 음식이라 그렇게 불린다. 굴은 칼슘, 인, 철분 등 생체 유지에 꼭 필요한 무기질과 비타민, 타우린 등이 풍부한 알칼리성 식품이라 기력 회복과 체내 독소를 방출하는 효과가 뛰어나다. 굴에는 또 콜레스테롤 수치를 떨어뜨리고 치매와 암을 예방하는 효과가 있는 오메가3 지방산의 일종인 DHA도 많다.     


생굴도 넣고 부드럽게 무친다


#카사노바와 굴

 굴은 서양 요리의 식재료로도 잘 알려져 있다. 바람둥이의 대명사, 카사노바(1725~1798)가 굴을 즐겨 먹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굴을 섭취하면 남성 호르몬 분비와 남성 생식 세포의 활동이 촉진되는 효과가 있는데 굴에 포함된 성분 중 하나인 아연 때문이다. 카사노바의 굴 사랑은 굴이 남성성을 촉발하는 강장(强壯) 식품으로 호사가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대표적인 사례다.      


굴 요리로는 생굴 무침을 비롯해 생굴 회, 굴찜, 굴튀김, 굴전, 굴밥 따위가 있다. 빈대떡에 올려 먹으면 맛이 기가 막히는 어리굴젓과 매생이와 파래를 넣고 끓인 매생이굴국과 파래 굴국도 겨울에 먹을 수 있는 별미(別味)다.      


#생굴 무침 요리

 지지난 주 토요일 저녁 통영산 생굴 두 봉지를 사다가 생굴 무침 요리를 해 먹었다. 처음에는 생굴 회를 떠올렸다가 아무래도 밥반찬으로 먹기에는 부대낌이 만만찮을 것 같아 생굴 무침으로 방향을 틀었다. 무침용 부재료로는 맛과 향을 앞장서 이끌 미나리를 중심으로 무와 양파, 대파를 준비했다. 무는 채 썰고 미나리와 양파, 대파는 먹기 좋은 크기로 잘랐다. 매콤한 맛을 끌어올리기 위해 작은 청양고추 3개도 송송 썰어 넣었다.     


비릿하면서 물컹거리는 생굴의 거슬리는 맛과 식감을 중화시키는 양념은 고춧가루 세 큰술, 다진 마늘과 설탕 한 큰술, 식초 두 큰술, 멸치액젓 한 작은술, 통깨 한 큰술, 참기름 두 큰술을 섞어 만들었다. 생굴 두 봉지 기준이다. 큰술은 밥숟가락, 작은술은 찻숟가락 크기다.    


겨울이 제철인 영양소의 보고(寶庫생굴을 채소와 양념에 버무려 무침으로 만들어 먹으면 입맛도 살아나고 기력도 회복된다


생굴로 요리할 때는 세척이 중요하다. 굴 표면 곳곳에 붙어 있는 이물질과 비린내를 제거해야 하기 때문이다. 굴이 잠길 만큼 물을 붓고 굵은소금 두 큰술을 뿌린 뒤 부드럽게 살랑살랑 치대면 이물질이나 불순물, 비린내도 없어지고 살균도 된다.


생굴 무침 요리 방식은 다음과 같다.

1. 생굴을 깨끗이 씻는다.

2. 미나리와 무, 양파, 대파, 청양고추를 손질한다. 채소의 종류는 취향에 따라 취사선택을 하면 된다.

3. 양념장을 만든다.

4. 채소를 볼에 넣고 양념장으로 버무린다. 채소와 생굴을 한꺼번에 버무리면 자칫 생굴의 모양이 으스러질 수 있다. 

5. 생굴도 넣고 조물조물 가볍게 무친다.     

 

생굴 무침을 얼큰한 김칫국과 함께 먹으면 속이 확 풀린다.


 겨울이 제철인 생굴은 영양소의 보고(寶庫)다. 생굴을 채소와 양념에 버무려 무침으로 만들어 먹으면 입맛도 살아나고 기력도 회복된다. 칼칼한 김칫국과 함께 밥상에 차린 생굴 무침 한 접시를 집사람과 둘이 깨끗이 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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