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업 음식으로 개발한 양파전은 식구들 모두 좋아했고 잘 먹었다. 안 그래도 우리집 식재료의 소비 항목 중 양파는 늘 상위에 자리했던 터라 장(場) 보기 전 한 번씩 냉장고를 확인하는 버릇은 아예 루틴처럼 굳어졌다. 양파전에 대한 높은 호응도는 즉각적인 양파 소비량의 증가로 이어졌다. 아들과 딸이 독립한 후 2주에 한 번 망(網)에 든 양파를 사는 편인데 7~8개 분량이다. 두 식구의 소비치고는 적지 않은 양일 것이다.
백업 음식이 하나보다는 둘, 둘보다는 셋이 낫다는 것은 선택권의 확장이라는 점에서 불문가지(不問可知)다. 양파전을 대체할 또 다른 백업 음식이 필요했다. 이번에는 양파전 때처럼 고민하지 않고 손쉽게 해답을 찾아냈다. 익숙한 식재료이자 부침개로 인기가 많은 부추와 쪽파가 생각났고 양파전 이전에 가끔 밥상에 올렸던 게맛살 전이 기억났기 때문이다.
깨끗이 씻은 부추를 손가락 한두 마디 크기로 잘라 볼에 담는다.
이렇게 해서 부추전과 쪽파 전, 게맛살 전은 양파전에 이어 우리집 주말 밥상의 백업 음식 리스트에 이름을 올리게 됐다. 먼저 실행에 옮긴 것은 부추전이었다. 지난 양파전 이야기 때 언급했듯이 부추전의 재료 손질과 요리 방식은 양파전을 따랐다. 손가락 한두 마디 크기로 가지런히 자른 부추와 송송 썬 청양고추, 달걀물을 섞어 반죽을 만들었다.
달걀 세 개를 푼 달걀물과 부침가루 한 큰술을 섞는다.
양파전의 요리 방식에서 빗겨 나간 것이 하나 있다면 반죽할 때 부침가루 한 큰술을 얹는다는 점이다. 달걀물만 입히고서는 반죽의 점성이 안정적이지 않아 할 수 없이 내린 현실적인 처방책이었다. 잘게 다진 양파와 달리 부추가 달걀물을 빨아들이는 흡인력은 마땅치 않았다. 부침가루를 섞어 갠 반죽 재료를 팬에 꽉 차게 펼쳐 부치는 일반적인 형태의 부추전 방식을 혼용할 수밖에 없었다. 쪽파 전도 마찬가지다.
부침가루를 갠 달걀물에 부추와 청양고추를 넣고 섞어준다.
#정구지김치와 정구지찌짐
내게 부추는 어릴 때부터 익숙한 식품이다. 어머니는 부추로 담근 정구지김치를 수시로 밥상에 올렸고 봄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날 정구지로 찌짐을 부쳐 식구들이 나눠 먹은 기억은 지금도 생생하다. 정구지와 찌짐은 부추와 지짐이(전, 煎)의 경상도 방언이다.
식당에서 밥을 먹을 때 간혹 부추김치가 반찬으로 딸려 나오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어릴 때의 기억이 되살아나고 고향집의 밥상 풍경이 떠오르는 추억의 음식이기 때문일 것이다. 고춧가루와 멸치액젓, 다진 마늘, 설탕 따위를 넣고 담근 부추김치는 바로 먹어도 맛있고 신맛이 나면 더 맛있다. 씹을 때마다 혀를 타고 올라오는 부추 특유의 톡 쏘는 향이 매력적이다.
숟가락 두 개 분량의 반죽을 떠 하나씩 부친다.
부추는 예로부터 피를 맑게 해주는 식품으로 알려져 있고 칼륨과 비타민 A, C가 많아 면역력 강화와 간 해독에도 도움이 된다. 추어탕이나 부산 지역의 명물인 돼지국밥에 부추를 넣어 먹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부추 요리
부추를 이용한 음식으로 부추무침을 빼놓을 수 없다. 부추를 고춧가루와 참기름, 진간장, 다진 마늘 따위의 양념에 버무린 부추무침은 밥반찬으로 인기가 많다. 오래 두고 먹을 수 있고 밥 위에 올려 비벼 먹어도 맛있다. 족발 요리를 먹을 때 곁가지 반찬으로 빠지지 않는 것도 부추무침이다. 부추를 다진 마늘과 함께 간장을 넣고 볶은 부추볶음도 입맛을 돋우는 음식이다. 국내 유명 제과점의 인기 브랜드인 부추빵도 있다.
완성된 부추전
우리집 백업 음식 메뉴를 정리하다가 우연히 뜻밖의 사실 하나를 발견했다. 양파와 부추, 쪽파는 생물 진화상 동일한 계통에 속한 식용 식물이라는 점이다. 세 식품의 태생적 뿌리가 같다는 말일 텐데 의도하거나 알고서 선택한 것이 아니어서 흥미로웠다.
#우리집 백업 음식의 서열
식탁에 오르는 횟수로 우리집 백업 음식의 서열을 매기자면 부동의 1위가 양파전이다. 양파의 기본적인 특성은 부추나 쪽파처럼 알싸한 향과 자극적인 맛일진대 익힐수록 단맛이 나는 또 다른 특성이 있어 쉽게 물리지 않고 자꾸 손이 가게 되는 묘한 풍미 때문이 아닐까, 짐작한다. 2위는 집사람이 좋아하는 부추전이다. 쪽파 전과 게맛살 전은 드물게 요리하는 편이라 백업 음식의 백업 음식이랄 수 있다.
쪽파 전
나는 게맛살과 달걀물로만 게맛살 전을 부친다. 6cm 크기로 자른 게맛살을 결대로 찢어 달걀 세 개를 푼 달걀물을 입혀 요리하는 간편한 방식이다. 게맛살은 이름처럼 게살로 만든 식품이 아니다. 대구와 같은 흰 살 생선을 가공해 게살의 맛이 나도록 한 것인데 짭조름하면서 쫀득하고 부드러운 맛이 꽤 매력적이다. 게맛살은 생으로 먹어도 맛있어 맥주 안주로도 어울린다.
6cm 크기로 자른 게맛살을 결대로 찢어 달걀물을 입힌다.
내가 부추전을 만드는 방식은 이렇다.
1. 깨끗이 씻어 물기를 털어낸 부추를 손가락 한두 마디 크기로 가지런히 자른다. 청양고추 세 개도 송송 썰어 준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