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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투사 일기

11. 새벽 점호와 PT(Physical Training)

by 박인권

11. 새벽 점호와 PT(Physical Training)


#탄탄한 근육질의 흑인 부사관

1985년 11월 미 제2보병 사단 자재관리 중대의 하루가 시작됐다. 새벽 5시 30분, 해가 뜨기 한참 전이라 사방이 어둑어둑했다. 일과(日課)의 첫 일정은 새벽 점호(Formation). PT(Physical Training, 체력 훈련) 복장을 한 180여 명의 중대원 모두 생활관(Barracks) 근처의 공터에 모여 분대별로 인원을 점검했다. PT 복장이라야 별다를 게 없는 노란 체육복. 하복(夏服)과 동복(冬服)이 구분된 요즘과 달리 사계절용이라 겨울에는 안에 두툼한 동내의(冬內衣)를 껴입었고 신발은 운동화를 신었다.


보디빌더 선수라 해도 영락없을 울퉁불퉁한 근육질의 흑인 부사관이 전면에 나섰다. PT 체조를 이끄는 지휘자다. 추위를 타지 않는지, 강철처럼 탄탄한 몸매를 드러내고 싶어서인지, 혼자만 반바지에 민소매 차림이다. 구령(口令)에 맞춰 한 동작씩 체조가 진행되고 그때마다 어둠의 밑바닥이 아주 조금씩 드러나고 초겨울 해도 시나브로 기지개를 켜는 낌새가 있건만 날이 밝으려면 아직 멀었다.


흑인 부사관이 몸을 놀릴 때마다 그의 가슴팍과 어깻죽지, 팔뚝과 허벅지의 근육이 탱탱하게 부풀어 오르면서 선명한 힘줄이 불끈 솟아 마치 원맨쇼의 주인공을 보는 것 같았다. 우람하고 강렬하게 굴곡진 신체 곳곳에 오랜 시간 감내했을 각고의 노력이 탁본(拓本)처럼 새겨져 있었다. 흑인 부사관은 절도 있는 동작과 숙련된 몸짓 중간중간에 의미심장한 웃음과 함께 야릇한 자세를 취해 그것이 다분히 의도적인 제스처임을 내 비췄고 그런 모습 앞에서 남녀 중대원들 모두 실실 웃었다. 중대원들이 킥킥거리며 웃을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그가 에로틱한 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 선정적인 동작을 천연덕스럽게 표현했기 때문이었다. 그는 중대원들이 따분하고 귀찮게 여길 법한 새벽 체력 운동의 분위기를 반전(反轉)시킬 줄 아는 익살스러운 인물이었다.


졸리는 눈을 껌뻑이며 의례적으로 체력 운동을 따라 하던 중대원들도 그가 PT를 이끄는 날이면 금세 짓누르던 잠을 쫓아내고 생기를 되찾은 양 움직임이 빨라졌다. 미군 PT 체조는 맨손체조와 다를 게 없다. 팔과 다리, 발목과 무릎, 목과 가슴, 옆구리와 등배, 몸통, 뜀뛰기, 숨쉬기 운동 등 온몸의 근육을 풀어주고 신체 각 부위의 발달을 꾀하기 위한 기초 운동이다. 팔 굽혀 펴기(push-up)와 윗몸일으키기(sit-up)가 포함된 것이 차이라면 차이다.

새벽 점호와 PT 현장에서는 근무 장소가 각기 다른 중대원들을 한꺼번에 만날 수 있어 낯선 이름과 얼굴을 익히는 친목 도모의 유용한 장(場)이기도 했다.


11-1. 캠프 케이시 영내에서 진행되고 있는 구보(驅步).jpg

캠프 케이시 영내(營內)에서 진행되고 있는 구보(驅步). ⓒSpc. Sara Wiseman • defenseimagery.mil. • wikipedia commons, public domain


#2마일 구보(驅步)

맛보기 격인 PT에 이어 2마일 구보(驅步)가 시작되면 군가(軍歌)를 부르는 소리가 새벽 찬 공기를 갈랐고 한참을 달린 뒤 출발 지점으로 돌아오면 어슴푸레한 해가 반쯤 얼굴을 드러냈다. 구보 때에는 보폭(步幅)과 속도를 조절할 수 있는 앞줄에 선 것보다 뒷줄에서 달리는 것이 더 힘들었고 미군보다 평균 키가 작은 카투사들은 더욱 그랬다. 왕복 3.2km 거리의 새벽 구보는 성가시고 숨이 차 카투사들이 다 싫어했고 미군이라고 다르지 않았다.


2마일 구보는 통상 영내(營內) 도로를 달렸지만, 가끔 캠프를 빠져나가 동두천 시내를 누빌 때도 있었다. 영외(營外) 구보 때는 야광 조끼를 입고 야광봉을 든 로드 가이드 두 명이 각각 선두(先頭)와 후미(後尾)에서 대열의 안전한 이동을 이끌었다.

하절기(夏節期) 때의 아침 점호는 동절기(冬節期) 때보다 30분 빨랐다. 새벽 5시 점호를 위해서는 늦어도 새벽 4시 50분경에는 일어나야 한다. 카투사들은 각자 탁상용 알람 시계를 소지하고 있었는데 잠결에 알람 소리를 해제하는 버튼을 누르고 깜빡 잠들어 새벽 점호에 지각하는 일도 더러 있었다.


지금과 달리 1980년대 카투사들에게 밤 9시에 실시하는 저녁 점호는 딴 나라 이야기였다. 일과(日課)가 끝나면 무제한 자유를 누릴 수 있어 밤늦게까지 통음(痛飮)하는 일이 적지 않았다. 이런 날 맞이하는 새벽 점호와 2마일 구보는 카투사들에게 악몽이다. 가뜩이나 속이 메스껍고 울렁거리는 판에 성미가 고약한 숙취(宿醉)의 심보가 얌전히 가만있을 리 없다. 녹초가 된 몸을 이끌고 끌려가다시피 2마일 구보에 동참하던 중 끝내 임계점을 돌파한 숙취의 기세에 눌린 나머지 카운터펀치를 맞고 허물어지는 복서처럼 반사적으로 대열을 이탈해 주저앉아 눈물 반 콧물 반을 흘리며 고통스러운 숙취의 민낯을 외마디 비명과 함께 토해내는 것이다. 시야가 흐릿해진 당사자의 눈앞에 순식간에 수북이 쌓인 무더기는 그가 간밤에 마시고 먹은 것들일 텐데 위액과 섞여 형질이 몰라보게 달라진 기이한 모습에 놀라고 역겨운 냄새에 또 한 번 놀라 기진맥진할 뿐이다.


카투사들의 음주 습관과 주량(酒量)을 잘 아는 미군들은 민망해하면서도 재미있다는 듯, 깔깔거리며 달리던 길을 계속 달렸다. 가끔 3마일을 달릴 때도 있었는데, 이런 날 과음한 카투사들은 초주검을 각오해야 했다. 11월 초순의 해는 아침 7시가 지나서야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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