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 부대 내에서 주말을 보내는 법
23. 부대 내에서 주말을 보내는 법
주말 생활관 풍경
주말 생활관(Barracks) 풍경은 썰렁하다. 카투사들이 부대 밖으로 대거 외출 또는 외박을 나가기 때문이다. 미군들도 마찬가지다. 동료들과 어울려 서울 이태원으로 쇼핑 나들이를 가거나 동두천 시내를 돌아다니며 시간을 보낸다. 집이 서울인 카투사는 집에 가고, 지방 출신이지만 서울 소재 대학에 재학 중이거나 졸업 후 입대한 카투사들은 모교로 가 친구들을 만난다. 생활관에 남아 있는 카투사는 십중팔구 본가(本家)가 지방인 비수도권 대학생들이다. 서울에 연고가 없는 이들이 주말마다 고향에 가기란 현실적으로 부담스럽다. 시간이 많이 소요되는 데다 교통비가 만만찮아서다. 개인차가 있겠지만 지방에서 올라온 카투사들은 한 달에 한 번꼴로 집에 들르는 편이다.
우리 중대에도 영남 지역과 충청권 대학에 다니던 카투사가 네댓 명 있었다. 이 중 집이 부산인 카투사 한 명은 생활관 지킴이라도 되는 양 웬만해선 외출도 삼가고 방에 틀어박혀 공부에만 매달리는 학구파였다. 주말이나 휴일에도 그의 방에는 불이 꺼진 날보다 불이 켜진 날이 더 많았다. 집이 서울이면서도 주말 외출이나 외박을 자제하는 카투사도 더러 있었다.
이런저런 사정으로 부대에 남아 있는 카투사들은 그들끼리 어울리며 주말을 보낸다. 마음만 먹으면 부대 안에서 얼마든지 유익하게 주말을 즐길 수 있다.
편의시설
미군 부대 안에는 쾌적하고 우수한 편의시설이 널려 있다. 스트레스도 풀고 에너지도 재충전할 수 있는 환경이 잘 갖춰져 있다. 포켓볼이나 당구, 볼링 등 다양한 오락 삼매경에 빠질 수 있는 레크리에이션 센터는 카투사들이 즐겨 찾는 곳이다. 주말과 공휴일은 물론 주중에도 일과 후 자주 방문하는 장소다. 1980년대 대학생들에게 당구는 익숙한 오락이다. 학교 다닐 때는 돈을 내고 쳐야 했지만, 이곳에서는 공짜로 무한정 당구를 칠 수 있어 카투사들이 애용했다. 당구와 달리 볼링은 처음이라는 카투사가 의외로 많았다. 밥값이나 술값 내기 게임을 많이 한 기억이 난다.
농구 마니아들은 수시로 체육관을 들락거렸다. 1대 1 또는 2대 2 미니게임을 하다가 비슷한 처지의 미군들과 의기가 투합되면 즉석에서 팀을 이뤄 정식 경기를 펼쳤다. 미군들의 농구 사랑은 알려진 것 이상이다. 신체 조건이 탁월한 그들은 농구공을 다루는 기술도 선수 못지않았다. 덩크슛을 처음 본 것도 이때였다. 어릴 때부터 농구공을 갖고 노는 문화가 정착된 데다 광범위한 생활 스포츠 기반 시설과 프로농구(NBA)의 인기 덕분일 것이다. 특히 신체 탄력성을 타고난 흑인들이 농구를 좋아하고 잘했다. 체육관에는 또 헬스장이 따로 있었다. 헬스장이 드물던 시절이라 눈에 보이는 헬스 기구 하나하나가 다 신기했다.
영화관도 빼놓을 수 없다. 언제든지 무료로 최신 영화를 관람할 수 있어 카투사들이 좋아했다. 1984년에 개봉한 알파치노 주연의 범죄 영화 스카페이스를 인상 깊게 본 기억이 생생하다. 미군 부대 내 상영관이라 한글 자막 서비스가 제공되지 않아 어학 능력 향상에도 도움이 됐다. 직업 군인인 미군들과 달리 카투사들은 부대 내 모든 시설을 공짜로 이용할 수 있다. 외출, 외박과 함께 카투사들만이 누리는 혜택이다.
레크리에이션 센터에서 정기적으로 시행하는 경품 추첨 행사도 반응이 뜨거웠다. 운이 좋으면 가전제품이나 생필품이 당첨됐다.
소요산
주말에 부대 근처 소요산으로 자전거 하이킹을 떠나는 재미도 쏠쏠하다. 미 2사단 정문에서 소요산 초입까지는 5km 조금 못 미치는 거리라 접근성이 뛰어나다. 소요산 입구 거치대에 자전거를 세워 놓고 20분 남짓 걸어 올라가면 빈대떡과 파전, 감자전을 파는 가게들이 길 양쪽으로 줄을 섰다. 날씨가 화창한 평일에도 동료들과 함께 소요산을 오르는 이유다.
수년 전 가족들과 소요산 단풍을 구경한 적이 있었는데 주변 광경이 군 복무 때와는 너무 달라 옛 추억을 기억 속으로만 더듬을 뿐이어서 아쉬웠다. 단풍이 물드는 가을날 바라보는 소요산 풍경은 일품이다. 소요산 단풍 여행은 동두천시의 대표적인 관광 상품이다.
요즘 미군 부대 내에는 스타벅스와 파파이스 등 유명 프랜차이즈 업체가 다수 입점해 있고 배달 음식까지 주문 가능하다고 하니 세월이 변해도 많이 변했다.
문득 생각난 여담(餘談) 하나. 1980년대 미 2사단에서 근무한 카투사들만 아는 이야기다. 이래도 따분하고 저래도 무료할 때가 있다. 그럴 때 카투사들끼리 7중대 또는 칠리(七里)라고 부른 곳을 찾아 자신만의 여흥(餘興)에 빠지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