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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 흔들릴 때 필요한 것

삶을 고정하는 작은 닻

by 루이보스J


"앙카 볼트로 가조립한 상태입니다."


회의 중 한국 설계사 쪽에서 이 말이 나왔을 때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앙카 볼트?!


대규모 자동화 물류 센터 설계회의의 통역 중이었다. 기술 회의에서는 늘 그렇듯 전문 용어나 외래어가 빈번히 등장한다. 특히 첨단 기술이나 새로운 이론이 외부에서 도입될 경우, 원어 자체를 사용하는 것이 의미를 보존하고 정확히 전달하기에 유리하다. 가령, ‘알고리즘’이나 ‘빅데이터’ 같은 용어는 일상화된 사례들이다.

대부분 이런 용어는 맥락 속에서 추측할 수 있다. 하지만 '앙카 볼트'라는 말이 나왔을 때는 순간적으로 멈칫했다. '볼트의 한 종류인가? 아니면 특정 브랜드 이름인가?' 곰곰이 생각하다가, 불현듯 깨달았다.

'앙카'는 다름 아닌 'Anchor'였다.


'Anchor'는 본래 닻을 뜻한다. 닻은 배를 한 지점에 고정시키는 도구다. 그러나 이 단어는 물리적 기능을 넘어 정신적 영역에서도 쓰인다. ‘정신적 지주’라는 비유적 의미를 떠올려 보라. 어떤 이에게는 부모나 친구가, 또 다른 이에게는 삶의 목표가 앵커가 될 수 있다.

건축과 공학에서도 앵커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앵커 볼트(anchor bolt)는 콘크리트 구조물이나 기계를 단단히 고정하기 위한 필수 부재다. 진동과 충격을 흡수하고, 하중을 안정적으로 전달하며, 구조물의 안전과 내구성을 보장한다. 간단히 말해, 세상의 변덕스러운 힘에도 불구하고 중심을 잡아주는 도구다.


삶의 앵커, 리추얼
우리의 일상에도 이런 앵커가 필요하다. 정신없이 흘러가는 하루 속에서 나를 지탱해 줄 기준점, 즉 '앵커 리추얼(anchor ritual)이다. 여기서 리추얼은 고정적이고 답답한 규율이 아니다. 오히려 자유로움을 기반으로 한 지속 가능한 뼈대다. 바쁜 삶 속에서도 스스로를 잃지 않게 해 주고, 삶의 중심을 유지시켜 주는 것이다.


나의 앵커 리추얼은 지극히 평범하다. 단순하지만 내 삶의 흐름을 꽉 붙들어준다.


1. 운동

하루 중 어느 때라도 좋다. 컨디션이 좋다면 근력과 유산소를 각각 한 시간씩 하고, 피곤한 날엔 요가나 스트레칭으로 대체한다. 중요한 것은 매일 몸을 움직이는 것이다.


2. 햇볕 쬐기

햇살이 좋은 날이면 단 5분이라도 햇빛을 쬔다. 이 짧은 순간은 나를 자연과 연결시켜 준다.


3. 라디오

나로 돌아가는 저녁 6시 '세상의 모든 음악', 잠들기 전 10시 '당신의 밤과 음악'의 오프닝은 놓치지 않는다.


4. 하루 계획

저녁마다 다음 날의 일정을 점검하고 필요한 것을 미리 준비한다. 일을 머릿속에서 한 번 리허설하면 마음이 정리된다.


5. 독서와 일기

잠들기 전에 몇 장이라도 책을 읽고, 하루를 돌아보며 짧게라도 일기를 쓴다. 이 작은 습관은 하루를 완성하고 새로운 시작을 준비하는 시간이다.



삶은 때로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무겁고 복잡하지만리추얼은 단순해야 지속가능하다. 작은 행위가 큰 변화를 만든다. 앵커 볼트가 거대한 구조물을 고정하듯,우리의 앵커 리추얼은 거대한 삶 속에서도 우리를 단단히 붙잡아 준다.


흔들리되 넘어지지 않도록


당신의 앵커 리추얼은 무엇인가?

그것이 당신을 어디로 이끌고 있는가?

질문에 답하기 위해 앵커를 내릴 순간이 지금이다.

표지/본문 사진:iSto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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