셀린 송 감독 영화 <머트리얼리스트>를 보고
영화 <머터리얼리스트(Materialists)>는 <패스트 라이브즈(Past Lives)> 이후 찜해두었던 셀린 송 감독의 두 번째 작품이다.
제목 그대로 materialist, 즉 ‘물질주의자’를 전면에 내세운 영화다. 하지만 이 영화가 말하는 물질주의는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얄팍한 소비주의가 아니다. 이 영화의 물질은 삶을 지탱하는 조건, 생존을 가능하게 하는 기반, 사랑을 버티게 때로는 포기하게 만드는 구조 그 자체다.
그리고 이 단단한 구조 위에서, 루시라는 인물이 흔들리고, 망설이고, 다시 자신을 들여다본다.
루시에게 결혼은 제도를 기반으로 한 계약, 인생에서 가장 비싼 비즈니스 딜이다. 그녀는 30대 중반의 커플 매니저다. 사랑을 미화하지 않고, 조건과 계산 구조를 읽어내는 데 누구보다 능숙하다. 이런 그녀의 현실감각은 개인적 경험에서 왔다. 가난하게 태어나 부모가 ‘돈 때문에 싸우는 장면’이 일상의 소음처럼 반복되던 가정에서 자랐기에 배우자의 조건이 명확하다.
첫 번째 조건: 부자일 것.
My non-negotiables are that they're rich.
두 번째 조건: 정신이 멍할 만큼, 말도 안 되게, 가슴이 시릴 만큼 부자일 것.
My nice-to-have is that they're numbingly…. absurdly….. achingly.. rich.
그래야만 삶이 흔들리지 않는다고.
그런데 그녀가 성사시킨 커플의 결혼식에서 ‘유니콘’을 만난다. 신랑의 형 해리. 부자로 태어나 늘 부자였고, 잘생기고, 매너 좋고, 중후한 매력까지 갖춘 남자. 재력·외모·성품·안정감을 다 갖춘 ‘완성형 스펙트럼’. 루시기 평생 꿈꾼 모든 조건의 총집합. 놀랍게도 해리는 루씨에게 첫눈에 반한다.
하지만 그 결혼식장에는 또 다른 변수가 있다. 20대 시절, 서로 너무 사랑했지만 빈털터리였기 때문에 헤어질 수밖에 없었던 남자. 무명배우 존. 여전히 소극장에서 돈 안 되는 연극을 하며, 케이터링 회사 알바로 생계를 이어가는 존이 그 자리에 서 있다 그저 나이만 들었다.
루시도 여전히 그를 사랑한다. 존도 루시도 사랑한다. 하지만 외부 조건은 변하지 않았다.
존은 말한다.
“I still can’t afford to be with you.”
그 말은 고백이기도 하고, 사과이기도 하고,
그들 사이의 시간을 한 줄로 요약하는 가장 슬픈 문장이기도 하다.
루시는 그 순간 깨닫는다.
사랑은 시간이 지나도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다는 걸.
그러나 사랑이 있다고 해서 현실이 바뀌는 것도 아니라는 걸.
해리는 그녀가 미래라고 믿어온 모든 것의 총합이다.
존은 그녀가 과거라고 믿어온 모든 감정의 남은 온기이다.
이 지점에서 Materialist는 루시라는 인물을 통해 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루씨는 조건을 믿는 사람이다. 계산의 구조를 믿는 사람이다.
그래서 그녀가 스스로를 “나는 materialist”라고 되뇌는 것은 스스로에 대한 방어다.
사랑을 선택하기엔, 그녀가 본 ‘가난의 기억’이 너무 생생하고, 너무 현실적이다.
하지만 해리와 존 사이에 선 그녀를 보면, 사실 그녀가 평생 떠나지 못한 건 ‘조건이나 계산’아니라 ‘감정’이라는 걸 알게 된다. 선택이 어려운 이유는 둘 사이의 간극이 너무 크기 때문이다.
사랑하지만 가난한 남자
모든 걸 가졌지만 사랑은 느껴지지 않는 남자
한쪽은 현실의 안전망
다른 한쪽은 마음의 기원의 자리.
이 딜레마는 여자들의 고전적 서사라기보다,
인간이라는 존재가 벗어나지 못하는 구조적 아이러니다.
가난과 사랑, 안정과 열정, 합리와 비합리 사이에서 인류가 반복해 온 영원한 딜레마.
사랑을 선택하면 불안이 찾아오고, 안정을 택하면 가슴이 비어 간다.
과연 은행 잔고가 고작 2000달러가 있는 ‘사랑’이
1200만 달러 펜트하우스의 ‘현실’을 이길 수 있을까?
하지만 ‘현실’이 ‘사랑’을 대체할 수 없는 것도 사실이다.
루시의 선택은 어쩌면 두 남자 사이의 선택이 아니라,
평생 부정해 온 자신의 가장 인간적인 부분과 화해하는 과정인지도 모른다.
그녀가 고른 것은 재력도, 가난도 아닌
“내가 진짜로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질문 그 자체다.
그리고 그 질문 앞에서는,
스스로를 materialist라 믿는 사람도 결국 humanist가 된다.
사랑은 계산 바깥에서만 움직이고, 인간의 결정적 순간은 언제나 그 계산 바깥에서 일어난다.
셀린 송 감독은 어쩌면 뻔할 수 있는 구도를, 가볍지도 무겁지도 않게 절묘한 균형으로 세련되게 풀어냈다.
세 번째 작품이 기다려지는 감독으로 다시 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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