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행을 마치고 서울로 올라온 우리는 신혼집으로 향했다. 우리의 신혼집은 재동국민학교 근처였는데 기만이와 기창이가 사는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그리고 삼춘의 가회동 하숙집도 근처여서 모두가 근방에 살게 된 것이 무엇보다 맘에 들었다. 복덕방 주인 말로는 우리 신혼집의 주인은 조상 대대로 가회동과 삼천동 일대에서 살아온 부잣집이어서 한옥 집을 포함해 여러 채의 집을 가진 가회동 근방에서 손꼽히는 부자라고 했다. 집주인은 전쟁 때 자식을 잃은 것이 유일한 걱정이어서 그런지 우리 부부에게 퍽 친절하고 자상했다.
나는 방과 부엌이 딸린 살림집이 아이들이 태어나면 뛰어놀 수 있는 작은 안마당도 있어서 무척 맘에 들었다. 우리 신혼집은 재동국민학교를 포함해 근처에 중학교와 여고까지 있어서 아이가 태어나도 오랫동안 살고 싶은 집이었다. 이렇게 맘에 드는 집을 구하느라 복덕방 주인과 여러 곳의 집을 보러 다녔던 나는 이 신혼집을 얻기 위해 필요한 돈을 큰댁의 아주버니께서 일조해 주셨다는 남편의 이야기에 적잖이 놀랐다. 고향에서 구두쇠로 소문이 나있던 시아주버니께서 큰돈을 쓰신 일도 그렇지만 남편과 아주버니가 큰 형님 거취 문제로 얼굴을 붉혔던 일도 있던 터라 걱정이 되었는데 이리 큰돈을 내어주시니 감사했다.
저녁을 일찍 먹고 잠잘 이부자리를 펴는데 남편은 무어가 바쁜지 책상에서 분주해 보였다.
"주무셔야지유. 내일부터 출근하시는디."
"알겠오. 대통령 선거 준비로 정국이 어수선 하니 신문사도 덩달아 바빠지니 준비할 것들도 있고 해서 신문도 읽고 그러느라 늦었오. 어서 잠자리에 듭시다."
우리의 신혼집에서 첫날은 그렇게 저물고 다음날 남편은 평소보다 더 일찍 출근을 했다. 나는 영숙 씨와의 약속이 있기에 약속 장소인 명동을 가기 위해 서둘러 전차에 몸을 실었다. 우수 경칩이 지난 날씨는 봄이 곧 올 것 같은 기대를 잔뜩 품게 따뜻한 바람이 귓불을 스쳤다. 3월엔 삼춘이 영숙 씨와 명동성당에서 결혼식을 올린다. 우리보다 먼저 만났지만 이런저런 사정으로 결혼이 늦어지면서 대통령 선거 전에 결혼식을 서둘러하는 것이다. 결혼식 전 준비해야 할 것도 많고 마음도 바빠진다는 영숙 씨가 오늘은 나와 함께 웨딩드레스를 보러 가기로 했다. 드레스를 고르고 점심을 먹고 명동성당에 들려 혼인성사에 필요한 절차도 확인한다고 했다.
안국역 근처에서 전차를 타고 을지로쯤에서 내려 약속 장소에 이르니 영숙 씨가 기다리고 있었다.
"여기요."
"그간 잘 지냈셨는감유. 결혼식 때 참 많은 도움을 받고도 감사 인사 한 번 못해서 지송해유."
"아휴, 왜 그래요. 우리가 남인가요? 이젠 가족인데."
"맞지유. 지한텐 영숙 씨가 외숙모가 되니께유."
"외숙모라고 하니까 내가 엄청 나이 든 사람처럼 느껴져요. 그냥 언니라고 부르면 좋은 데 그러면 안 되겠죠."
영숙 씨가 상기된 얼굴로 웃었고, 나도 함께 미소를 지었다. 영숙 씨는 아주 화려한 문양의 레이스와 진주가 달린 웨딩드레스를 골랐고 점심으로 만두와 냉면을 먹은 우리는 명동성당에서 혼인성사를 위한 절차도 확인했다.
"신행 마치고 어제 서울로 올라 오서 피곤할 텐데 시간 내줘서 고마워요. 삼춘이 대통령 선거 준비로 도통 시간이 안 난다고 해서 생각나는 건 순열 씨 밖에 없었어요. 알다시피 언니도 없고 동생도 없는지라."
"말씀대로 가족인데 지가 도와야지유. 지가 도와드릴 수 있어서 다행이구먼유. 미리 결혼 축하드려유."
"고마워요. 축하를 받으니까 결혼이 실감 나네요."
영숙 씨와의 일정으로 하루를 다 보내고 서둘러 집에 돌아온 나는 남편이 퇴근 후 저녁을 먹고 온다는 소식을 듣고 기만이와 기창이 집으로 갔다.
기만이는 막 퇴근을 해 씻고 있었고 기창이도 하교를 한 지라 모처럼 셋이 모여 저녁을 먹었다.
"누나, 매형은 어쩌고 이리 혼자 온 겨?"
"이잉, 임 선생님이랑 저녁 약속이 있어서 늦는다고 연락이 왔구먼. 시방 대통령 선거한다고 바쁘잖어. 삼춘도 매형도 모두 선거 때문에 눈코 뜰 새가 없을 겨."
"그나저나 삼춘 결혼식은 잘 준비되고 있는겨?"
"그렇잖아도 영숙 씨랑 그것 땜에 명동 다녀왔다. 명동성당에서 결혼식 올린다고 허든디."
"그랴? 천주교 신자니께 그런가 보네. 세례도 받았다고 허든디. 삼춘도 세례인가 뭔가 받은 겨?"
"그건 아니고 영숙 씨가 받았응께 괜찮은가 벼."
저녁을 먹고 설거지까지 하고 집으로 돌아오니 남편이 생각보다 일찍 귀가해 있었다.
"언제 오신규? 저녁 자시고 술도 한 잔 하실 것 같아 기만이 기창이랑 저녁을 먹고 왔는디유."
"잘했오. 내 임 선생님과 함께 한 자리에서 신익희 선생 쪽 사람도 만났지 뭐요."
"에구 그러셨구먼유. 신익희 선생님이면 민주당 쪽 대통령 후보 아닌감유?"
"그렇소. 그분 역시 큰 형님을 알고 있었소. 임정에서 독립운동하던 시절에 큰 형님을 알게 된 인연으로 나를 만나고 싶었다고 하더군."
"예, 그러셨구먼유. 불편허시진 않으셨유? 정치는 멀리 허구 싶다고 허셨잖어유."
"그러게 말이오. 윤이 자유당 쪽 일 허는 것도 맘에 안 든 판에 민주당 쪽 사람 만나는 것 역시 편치는 안했오. 큰 형님이 살아 계셨다면 어찌하셨을지 궁금하기도 하고..."
"고단하셨을텐데 어여 주무 세유."
아주 어려운 자리를 있다 온 남편은 몹시 고단해했고, 그런 남편을 보자니 내 마음도 편치 않았다. 그 누구도 고단하지 않은 날이 오면 좋으련만 세상은 너무나 복잡하고 시끄럽게 돌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