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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얀 얼굴 학생 Apr 01. 2022

3번째 기업, 4번째 면접

재무회계 신입, 회계 / 세무

 1번째 기업 최종 탈락 이후, 그는 서류 합격 메일을 거의 받아보지 못한다. 설상가상, 그가 주요 직무로 설정한 해외영업과 기획은 채용 공고가 많지 않다. 그는 점점 조급해진다. 2번째 기업 때의 주택영업처럼 너무 동떨어진 직무는 배제하더라도, 다른 직무까지 지원 범위를 넓혀야하나 고민한다.


 그가 고민했던 이유는, 매일매일 채용 공고를 확인하며 어느 정도 추세를 파악했기 때문이다. 해외영업은 그나마 공고가 종종 올라오지만, 기획을 신입으로 채용하는 경우는 꽤 드물다. 그가 지원해야하나 고민하는 직무는 바로 '경영지원'이다. 그는 경영학도이며, 경영지원은 직무가 다양하다. 인사, 재무, 회계, 총무, 구매 등의 직무들을 포괄하는 넓은 범주다. 경영기획도 결국 경영지원의 틀에 속하는 셈이다. 취업이 절박하고 조급한 그는, 결국 경영지원 직무까지 지원 범위를 확장한다.


 지원 직무 범위가 확대됨에 따라, 그는 3번째 기업에 이력서를 넣었다. 3번째 기업은 제약회사이며, 그가 넣은 직무는 재무회계다. 3번째 회사는 이번 공고에서 R&D(연구개발), 임상 등의 인원을 많이 뽑는다. 당연히 의약계열을 선호하며, 그가 넣을 수 있는 직무는 애초에 재무회계 밖에 없다. 그는 학교에서 회계 과목을 수강하긴 했지만 기억이 가물가물하며 성적도 좋지 않다. 그는 어쨌든 이력서를 작성하고, 자기소개서도 복사-붙여넣기를 통해 어떻게든 단시간 내에 지원을 완료한다. 미덥지 못한 이력서일 것이란 사실은 그 본인이 더 잘 알았기에, 그는 3번째 회사로부터 서류 합격 메일을 받았을 때에도 별로 기쁘지 않다.



 면접 당일, 버스를 타고 면접장으로 향하는 그에게 전화가 온다. 면접에 참석할 것인지, 더 빨리 와줄 수는 없냐는 전화다. 그는, 자신을 이렇게까지 간절히 원한다는 착각에 빠져 기분이 좋다. 하지만 버스를 더 빠르게 달리게 할 수는 없다. 그는 정해진 면접 시간의 약 15분 전에 도착한다.


 면접 시작 전, 그는 대기실에 도착한 면접자 1에게 인사를 건넨다. 면접자 1은 그의 인사를 듣지 못한 것인지 별 대꾸가 없다. 면접자 1이 심하게 긴장했다는 점이 한눈에 보이기에, 그는 인사를 무시당한 것에 별로 기분이 상하지 않는다. 잠시 뒤 인사팀 직원이 들어와 안내할 때도, 그는 면접자 1에 대한 자신의 생각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재확인한다.


 인사팀 직원 : 안녕하세요. 재무회계 면접 보러 오신 분들이죠? 잠시만 기다렸다가 진행하겠습니다. 기다리시는 동안 앞의 물 드시고, 화장실도 자유롭게 다녀오시면 됩니다.

 면접자 1 : 저.. 질문 있습니다! 화장실 좀 다녀와도 되겠습니까?!! (군대식으로 소리 지르듯 질문한다)

 인사팀 직원 : ...? 네. 자유롭게 다녀오시면 됩니다.


 잠시 뒤, 면접 시간에 꼭 맞추어 면접자 2가 도착한다. 인사팀 직원의 뒤를 따라, 그를 포함한 3명의 면접자들이 나란히 줄을 서서 면접장으로 들어선다.




3번째 기업 재무회계 신입


면접자 : 그를 포함해서 3명, 모두 남자

  키와 덩치가 꽤 큰 편이며, 심하게 긴장한 듯한 면접자 1

  보통 체격에 조용한 성격으로 보이는 면접자2 [CTA(세무사)준비 경험이 있다]

  그


면접관 : 총 3명으로 모두 남자. 그의 시선에서 왼쪽부터

  키는 작아보이나 상체가 둥글며, 머리가 하얗고 동그란 안경을 낀 40대 면접관 1 (재경팀으로 예상)

  가운데, 키와 덩치가 크고 피부가 검은 40대 면접관 2 (영업팀으로 예상)

  오른쪽, 깔끔한 인상에 보통 체격인 40대 면접관 3 (인사팀으로 예상)



 면접자 1, 2, 그가 차례대로 들어가 인사하고 자리에 앉는다.


  면접관 3 : 안녕하세요. 면접 시작하겠습니다. 자기소개해주세요.

  면접자 1 : 안녕하십니까! 소통과 숫자에 강한 지원자, 면접자 1입니다! 저는 학교 수업에서 많은 팀플을 한 경험이 있습니다. 팀플 당시 제가 맡았던 부분은, 바로 재무제표 분석이었습니다! 다른 학우들은 재무제표를 어려워했지만, 저는 굴하지 않고 재무제표를 분석했습니다. 그리하여 대학교가 끝날 즈음, 저는 수십 개의 재무제표를 분석한 경험을 갖게 되었습니다! ... 두 번째, 소통입니다! ...


 면접자 2 : 안녕하십니까. 재무회계에 지원한 면접자 2입니다... (자세히 기억나진 않으나, 면접자 2는 자기소개를 약 20초 이내로 짧게 끝내버린다)


 그 : 안녕하십니까! 3번째 기업 재무회계 직무에 지원한 하.얀. 얼.굴. 입니다! 저는 두 가지 강점을 통해 저를 간략히 소개하겠습니다.  첫 번째, 강한 실천력입니다. 저는 호주 워킹홀리데이에서... (그는 이전 면접들의 자기소개에서 회사 이름과 직무만 바꾸고, 나머지는 토씨 하나 빼먹지 않고 똑같이 써먹는다)



  면접관 2 : 네 잘 들었습니다. 허허... 면접자 1께서는 키가 굉장히 크시군요.

  면접자 1 : 감사합니다!

  면접관 2 : 하얀 얼굴 씨, 취미로 운동을 좋아하신다고요?

  그 : 네 맞습니다! 현재 공놀이를 취미로 하고 있습니다.

(면접관 2가 분위기를 부드럽게 하려는 듯 가벼운 질문을 하나씩 건넨다)

...


  면접관 1 : (안경을 고쳐 쓰고, 분위기를 바꾸려는 듯한 목소리로) 여러분께서 지원하신 직무는 재무회계입니다. 아무래도 재무회계 쪽은 다른 직무에 비해 직무 지식이 중요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부터는 제가 직무 관련한 지식을 물어보겠습니다. 재무제표를 이루는 4가지 구성 요소가 무엇인가요? 면접자 1부터 답해주세요.

  면접자 1 : 네! 재무제표를 이루는... 4가지 요소는! 자산! 자산 그리고.... 어.... 자산! 아....

  면접관 2 : 알겠습니다 거기까지. 면접자 2, 방금 질문에 대답해보세요.

  면접자 2 : 네. 재무제표는 재무상태표, 손익계산서, 현금흐름표, 주석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정답이다. 면접자 2의 깔끔한 답변으로 인해, 그에게는 차례가 주어지지 않는다. 그는 속으로, 자신도 답변을 알고 있었는데 아쉽다고 생각한다.


  면접관 1 : (안경 속 조그만 눈을 번뜩이며) 면접자 1, 부가가치세 중 면세에 대해 설명해보세요.

  면접자 1 : 네! 면세는 부가가치세가 없는 것입니다! 면세란.... (애매한 답변이었다)


  면접관 1 : 면접자 2, 부가가치세 중 영세에 대해 설명해보세요.

  면접자 2: 영세는 부가가치세율이 0%인 것으로, 주로 수출 시 적용됩니다... (깔끔한 답변이었다)


  면접관 1 : 하얀 얼굴 씨는, 원천징수에 대해 말해보세요.

  그 : (체념하며) 죄송합니다. 해당 개념에 대해 잘 숙지하지 못했습니다.

  면접관 1 : 알겠습니다.



  면접관 2 : 면접자 1께서는 재무회계에 지원하셨는데, 직무 관련 지식이 부족하신 것 같아요. 맞나요?

  면접자 1 : 아닙니다! 저는 학교 팀플에서 항상 재무제표 분석을 도맡아 했습니다!

  면접관 2 : 재무제표를 분석했다고 하시는데, 몇 개나 분석했나요?

  면접자 1 : 100곳이 넘게 분석했습니다!

  면접관 2 : 그러면 우리 회사 재무제표도 분석했겠네요?

  면접자 1 : 네, 분석했습니다!

  면접관 2 : 분석해보니 어떻던가요?

  면접자 1: 네, 3번째 기업 재무제표를 보았습니다! 총자본 1000조! 그중에 자본금이 400조! 그래서 탄탄한 기업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도 면접 준비가 덜 되어 있긴 했으나, 자산/자본/부채 금액은 외워둔 상태다. 3번째 기업의 총자본은 1000조가 아닌 1000억이며, 자본금 또한 400조가 아닌 400억이다. 면접자 1은 3번째 기업의 규모를 1만 배 부풀려서 말하고 있다. 아마 단위를 잘못 본 탓이리라.


  면접관 3 : 잠깐, 자본금이 400조가 아니라 400억입니다. 우리가 아직 그 정도 회사는 아니고요... 방금 말한 총액은 자산 총액을 말한 건가요, 자본 총액을 말한 건가요? (어느 쪽이 되었든 둘 다 틀렸다)

  면접자 1 : 자본을 말씀드린 겁니다!

  면접관 3 : 아 네... 알겠습니다. (면접관 3은 이후 면접자 1에게 다시는 질문하지 않는다)


  면접관 2 : 하얀 얼굴 씨, 재무제표를 보셨나요? 소감이 어떻던가요?

  그 : 네, 3번째 기업의 자산은 1000억 / 부채 600억 / 자본 400억이며 상당히 건전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자신도 숫자만 외웠을 뿐 똑바로 보진 않았다. 건전하다고 하면 면접관들이 좋아할 것이라 생각했다)



  면접관 1 : 재무제표를 구성하는 요소들에 대해, 최대한 깊고 상세하게 본인들이 이해한 바를 말해보세요. 면접자 1, 재무상태표에 대해 설명해보세요.

  면접자 1 : 네! 재무상태표는...


  면접관 1 : 면접자 2, 손익계산서에 대해 설명해보세요.

  면접자 2 : 손익계산서는...


  면접관 1 : 하얀 얼굴 씨, 현금흐름표에 대해 설명해보세요.

  그 : 아... 현금흐름표... 죄송합니다. 제가 제대로 숙지하지 못했습니다.

  면접관 3 : 회계 공부할 때 뭐가 제일 어렵던가요? 저는 현금흐름표가 제일 어렵더라고요. 하하...



  그는 회계 수업을 듣긴 했으나, 기본적인 개념만 알고 있으며 학점도 낮다. 또한 그의 차례가 가장 마지막이어서, 기본에 속하는 개념들은 앞 지원자들이 모두 답해버리고 그는 생소한 것들만 질문을 받는다. 마지막 순번이 그에게는 최악의 자리였다.

 면접자 1의 긴장과 반복되는 실수, 그의 개념 미숙지로 인해 면접관들의 관심은 자연히 면접자 2에게로 쏠린다.


  면접관 1 : 면접자 2께서는 세무사를 준비했었는데, 그만두게 된 계기가 있나요?

  면접자 2 : 공부를 하다가, 세무사보다는 더 실무에 가까운 기업세무에 몸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지원하게 되었습니다. ...

  면접관 1 : 기업에 다니다가, 후회가 되서 나중에라도 세무사 시험을 다시 보겠다는 마음이 들지 않을까요?

  면접자 2 : 아닙니다. 공부는 할 만큼 해보았고, 기업세무에 대한 관심이 더 크기 때문에...


 확실히 전문직 자격증 시험을 준비해서인지, 면접자 2는 회계와 세무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듯 보인다. 면접관들도 굳이 더 캐묻지 않는다. 다만 그의 개인적인 느낌상, 면접자 2의 말투/몸짓/표정 등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힘 빠지게 하는 부분이 있다. 그의 눈에도 보이는데 면접관이 알아채지 못할 리가 없다.



  면접관 2 : 음..... 이 점은... 조금 조심스럽지만 제가 이야기를 할게요. 면접자 2의 경우, 어떻게 보면 불량하다고 느껴지는 부분이 있어요. 그러니까, 말할 때 인상을 찡그린다던지, 고개를 흔든다던지 하는 점이 눈에 띕니다. 고치라는 건 아니지만, 그렇게 보일 수도 있다는 점을 말해주고 싶었습니다.


  면접자 2 : 그 부분에 대해서, 제가 말씀드려도 되겠습니까? 사실은 제가, 눈이 많이 안 좋았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눈이 많이 안 좋아서, 자세히 보려고 하다보니 이런 식으로 습관이 된 것 같습니다. 그래도 얼마 전 눈 수술을 하게 되어, 점점 더 좋아지고 있습니다. 말씀하신 부분은, 점차 개선해나가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면접관 1 : 수술을 했다는 건, 일상생활과 업무 때에 지장은 없다는 건가요?


  면접자 2 : 네 맞습니다.



 면접자 2의 독주가 끝나고, 면접은 막바지에 이른다.


  면접관 3 :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해보세요. 이번에는 하얀 얼굴 씨부터 해보세요.

  그 : 네, 우선 불러주셔서 감사합니다. 3번째 기업 면접 준비를 하면서, 기업에 대해서도 알게 되고 저에 대해서도 알게 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부디 면접에 합격해서, 3번째 기업과 함께 나아가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면접자 2 : 저도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


 면접자 1 : 네, 저는 태어나게 해주셔서 감사하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그는 이 말을 듣자마자 참지 못하고 피식 웃었다. 무리수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저의 어머니께서, 제가 어릴 적 몸이 많이 아팠다고 하셨습니다! 그때, 3번째 기업의 약을 먹고 제가 건강해졌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3번째 기업에서 일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태어나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면접이 끝났다.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 안, 그는 마치 격투기 스파링에서 신나게 두드려 맞은 것 마냥 정신이 뻐근하다. 면접관 1이 줄기차게 뻗는 회계 개념 펀치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얻어맞기만 한 그다. 이변은 일어나지 않고, 그는 3번째 기업에서의 4번째 면접에서 탈락한다.


 그는 자신이 잘 알지도 못하는 회계나 재무 직무로 지원하는 것이 맞는 일인지 고민한다. 하지만 날이 갈수록 그는 점점 생각을 멈춘다. 계속되는 서류와 면접 탈락, 길어질 것만 같은 취준 생활은 그의 조바심을 부추긴다. 시간이 갈수록 그는 기존의 해외영업과 경영기획에 더불어, 그가 넣을 수 있는 경영지원 직무 공고까지도 모조리 이력서를 난사하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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