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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얀 얼굴 학생 Apr 03. 2022

4번째 기업, 5번째 면접

1 - 팬시, 적성 검사

 3번째 기업을 탈락하고 얼마 지나지 않은 그에게 서류 합격 메일이 날아든다. 흐릿한 기억을 되살리기 위해 어느 직무로 이력서를 넣었는지 채용 공고를 다시 본다. 그는 4번째 기업 '재무회계' 직무로 서류 합격을 했다.


 4번째 기업은 매출액이 1000억을 살짝 넘는 기업이다. 매출은 그리 크지 않지만, 전국에 매장이 골고루 퍼져 있어서 한국 사람이라면 이름을 모르는 이가 없을 정도의 지명도를 자랑한다. 4번째 기업의 매장에서는 볼펜, 연필, 필통 등부터 시작해서 우산, 에코백, 키링, 선물 상자, 편지 등등 온갖 것들을 판매한다. 그의 눈에 4번째 기업의 제품들은, 핑크색 등의 원색 계열과 황금색이 많이 들어갔으며 캐릭터들이 프린팅되어 화려하다. 화려할 뿐만 아니라, 온갖 물품들이 여기저기 산재해 있어 그는 4번째 기업 매장이 약간 잡다하다는 인상을 받는다. 4번째 기업의 화려하고 반짝이고 다양한 제품들은, 그 같은 사람보다는 나이가 어린 여성들이 주요 타겟인 것으로 짐작된다.


 4번째 기업을 검색하는 그의 눈에, '팬시'라는 용어가 자주 보인다.  그는 4번째 기업이 문구류를 판매한다고 생각했지만 실제로는 우산이나 썬글라스, 이외 화려하고 귀여운 것들이 많다. 이러한 것들을 포괄하여 4번째 기업은 문구 및 팬시 브랜드라고 불린다. 그는 팬시업계라는 단어가 영어의 'Fancy'와 연관이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하나 정확히 확인된 바는 없다.

 Fancy - 화려한, 값비싼, (필요 이상으로) 복잡한

 그가 느끼기엔 4번째 기업 매장에 전시되어 있는 물품들과 이로 인한 분위기는, 영어 단어의 뜻과 통하는 부분이 있다. 하지만 4번째 기업 입장에서 들었을 때 부정적인 어감이 있지는 않을까, 그는 이러한 해석은 속으로만 남겨둔다.



 4번째 기업에서 제조하고 판매하는 제품들, 그리고 매장의 분위기는 그와 별로 부합하지 않지만 그는 우선 지원부터 하고 봤다. 매출이 1000억이 넘고, 무언가를 만들고 판매하는 제조업이라는 점에서 위안을 얻는다. 4번째 기업은 화려하고 다양한 캐릭터와 상품들을 유지하기 위해, 채용 공고에서 주로 디자이너와 MD(구매 직무)를 뽑는다. 두 직무 모두 최신 유행, 트렌드에 민감해야 한다. 유행 따위 아랑곳하지 않고 자기 갈 길만을 가는 그와는 거리가 먼 직무들이다. 디자이너와 MD를 제외하면, 그가 쓸 수 있는 직무는 '재무회계' 뿐이 없었다. 그는 복사와 붙여넣기를 사용해 최단시간에 이력서를 제출했고, 그 이력서가 서류 심사를 통과했다.


 4번째 기업은 조그만 기업에 속하지만, 채용 과정에서 '적성 검사'를 실시한다. 적성 검사, 이름 그대로 해석하자면 지원자의 적성이 기업과 맞는지 검사하는 것이리라. 하지만 기업이 이름 붙인 '적성'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적성이 아니다. 기업이 실시하는 적성 검사는 시험에 가깝다. 독해력, 논리력. 산술 능력, 공간지각 능력, 창의적 사고력 등을 평가하는 시험이다. 그리고 그중 단연코 높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바로 산술 능력이다. 결국, 숫자에 감각이 있느냐를 가려내는 시험인 것이다. 기업마다 적성 검사 과목이나 문제 난이도는 천차만별이다. 대기업으로 갈수록 과목이 많고 문제도 어려우며, 적성 검사 통과 여부가 최종 합격에 크게 영향을 주는 경우가 많다. 반대로, 소기업으로 갈수록 적성 검사의 과목이 적고 문제가 쉬운 경향이 있다. 과목이 적고 문제가 쉬울수록, 당연히 변별력이 떨어지고 최종 합격에 미치는 영향도 미미하다. 4번째 기업은 중소기업이며, 후자에 가까운 적성 검사를 실시한다. 그는 4번째 기업의 적성 검사를 치르며, 대기업의 채용 형태를 따라하고자 하는 형식적인 단계는 아닌가 생각한다.



 적성 검사, 영어로는 Aptitude Test다. 대기업일수록 적성 검사를 치르는 곳이 많으며, 취업 관문이 높아짐에 따라 중소기업들까지도 적성 검사를 치르는 추세다. 적성 검사를 실시하는 기업들은, 자신들의 적성 검사에 차별화를 주려는 마냥 이름을 붙인다. 적성 검사의 약자인 AT 앞에 기업명을 붙이는 식이다.

 예를 들어 기업 이름이 '삼소'라면, 이니셜인 S를 앞에 붙여 SAT라 명명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만일 삼소 기업이 한국을 대표하는 글로벌한 기업이라면, 맨 앞자리에 글로벌의 약자 G를 붙여 GSAT라고 명명할 수도 있다.


 그는 어느 주말, 4번째 기업 적성 검사를 실시했다. 4번째 기업은 적성 검사를 도입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듯하다. 독해력과 수리력 위주로만 검사하며, 총 문제 수도 20개 정도로 많지 않다. 대기업의 적성 검사를 준비하는 취준생들이 가장 애를 먹는 부분은, 문제가 너무 많아 시간이 촉박하다는 점이다. 4번째 기업은 1시간 정도의 시간을 주고 20문제를 풀게끔 했다. 시간도 널널하고, 난이도도 평이하다. 짤막한 지문을 읽고 요지를 파악하거나, 초중학교 수준의 친근한 수리 문제가 전부다. 누구에게나 쉬운 난이도였지만, 적성 검사가 처음인 그는 왠지 모를 자신감과 뿌듯함을 느낀다.


 일주일 뒤, 적성 검사 합격 문자가 도착한다. 면접 준비를 할 차례다. 난이도가 평이했더라도 어쨌든 적성 검사를 거친 뒤 진행하는 면접이다. 서류, 적성 검사 등의 프로세스를 진행하는 동안 4번째 기업에 어렴풋한 관심과 애정도 피어난 그다. 지금의 느낌이라면, 4번째 기업에 취업해도 만족스럽게 다닐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는 4번째 기업의 재무제표를 보며, 이전과 같이 면접 준비 자료를 만들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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