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번째 기업, 재무회계 신입
면접자 : 그를 포함해서 총 6명 (남자 3 / 여자 3)
스튜어디스 같은 분위기를 풍기는 여자 면접자 1
증권사 인턴을 하고 AICPA를 취득한 여자 면접자 2
키가 중간에 안경을 끼고 머리에 약간 노란 빛이 도는 남자 면접자 3
키가 작고 말랐으며, 안경을 낀 남자 면접자 4
그
키가 작고 말랐지만 목소리가 또랑또랑한 여자 면접자 6
면접관 : 총 2명 (남자 1 / 여자 1), 여자 면접관이 상사로 보이며 주로 면접을 진행한다.
40대로 추정되는, 단발머리에 강한 눈매를 가진 여자 면접관 1
안경을 낀, 30대 후반~40대로 보이는 온화한 인상의 남자 면접관 2
토론 면접이 끝난 뒤, 면접관 1은 다시 면접을 진행한다. 각 지원자들의 이력서를 보고, 궁금한 점이 있으면 질문하는 방식이다. 특이한 마케팅 수상 경험이 있는 여자 지원자들, 회계 공부를 많이 했다는 남자 지원자들에게 질문이 몰린다. 수상 경력도, 회계 공부를 많이 하지도 않은 그에게는 질문이 거의 오지 않는다. 그는 두세 개 정도의 기본적인 질문만 받는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토론 면접에서 강한 인상을 남겼다고 생각했으므로, 크게 개의치 않는다.
면접관 1 : 지원자 1께서는 마케팅 수상 경력이 있다고 했는데, 자세히 말해주겠어요?
지원자 1 : 네. 시에서 주최한 대회로, 이벤트 상품의 홍보와 판매를 기획해야 했습니다. 저는 다른 팀원들의 의견을 모으고 방향을 제시하는 역할로서...
면접관 1 : 지원자 2께서는, AICPA(미국 공인회계사 자격증)를 땄네요? 원래부터 관심이 있었나요?
지원자 2 : 네, 회계 쪽에 관심이 있어서 취득하였습니다.
면접관 1 : 향후 미국 쪽으로 취업할 생각도 있는 건가요?
지원자 2 : 아뇨, 그렇진 않습니다. 해당 자격증은 ...
AICPA 자격증이 있다는 말에, 그의 눈이 커진다. 그는 속으로, AICPA까지 취득한 사람이 왜 조그만 4번째 기업에 지원했는지 의문이 든다. AICPA는 미국의 공인회계사 자격증이다. 한국의 공인회계사 자격증은 KICPA, 줄여서 CPA라고 부른다. 미국 공인회계사 자격증이라고 하니 괜히 엄청 어렵고 멋있게 들리지만, 실상은 한국의 KICPA가 수험 기간이나 난이도 측면에서 취득하기 훨씬 어렵다. 한국 회계사를 취득할 정도면, 영어만 준비하면 미국 회계사는 쉽게 취득할 정도라고 한다. 지원자 2는 한국 회계사가 아닌 미국 회계사만 취득했다. 말을 들어보니, 학원을 통해 공부하고 취득한 듯하다. 한국 회계사보다는 못하더라도, 미국 회계사도 회계와 재무 분야에서는 꽤 알아주는 자격증이다. 4번째 기업은 매출이 크지 않고, 급여도 3000 언저리 정도다. 지원자 2는 4번째 기업보다 더 좋은 조건의 기업을 골라갈 수 있을 터다. 지원자 2는 정말 취업이 급한 것이거나, 아니면 면접 경험 삼아 왔으리라 예상하는 그다.
면접관 1 : 지원자 3, 회계 위주로 공부를 한 것 같아요. 어떤 과목을 들었고 공부해보니 어땠나요?
면접자 3 : 네, 저는 회계학원론을 들으며 재미를 깨달았습니다. 이후 재무, 원가회계 등을 수강하며...
토론 면접으로 시간을 많이 잡아먹은 이후이므로, 문답이 길게 이어지진 않는다. 편안하게 짧은 문답만 오가다가, 면접관 1이 슬슬 끝내려는 눈치를 보인다.
면접관 1 : 자, 이 정도면 된 것 같아요. 오늘 이 자리에 오신 분들은, 다들 적성검사에서 90점 이상(100점 만점) 받으신 분들이에요. 정말 대단하네요. 이제 질문만 받고 마무리할게요. 질문 있나요?
면접관의 질문 요청에, 면접자들은 의무감에 억지로라도 질문을 한다. 이럴 때 질문을 해야 기업에 관심이 있다는 뜻으로 해석이 되리라는 절박함에서다. 물론 깊이 있거나 의미 있는 질문은 거의 없지만, 그래도 면접자들은 애처로운 마음을 숨기고 순수함과 패기로 포장한 질문들을 만들어낸다. 면접관은 질문들 중에서도, 면접자 3의 질문이 가장 마음에 들었던 듯하다.
면접자 3 : 재무제표를 봤을 때, 4번째 기업은 부채 항목의 '보증금' 액수가 커서 놀랐습니다. 혹시 왜 그런 것인지 설명해주실 수 있을까요?
면접관 1 : 날카로운 질문이네요. 저희 회사는 아시다시피, 번화가나 지하철역 쪽에 매장이 많아요. 요즘 신조어도 있죠? 슬리퍼로 갈 수 있는 범위라는 말이요.
면접자 6 : (조그마한 목소리로) 슬세권.. 말씀이신가요?
면접관 1 : 네 맞아요! 저희 회사는 그런 역세권, 슬세권에 매장을 입점해요. 당연히 임대료도 비싸고, 보증금도 비싸죠. 강남, 명동 등 우리 회사 매장이 없는 곳이 별로 없어요. 명동 매장 가봤나요? 명동 매장이 저희가 지금 중점을 두고 있는 매장인데, 매출이 가장 잘 나오거든요. 근데 보증금이 얼마나 되는지 알아요? 여기 강남 쪽 보증금이 얼마나 할 것 같아요?
지원자들 : (당황하여 우물쭈물) X억.... XX억.... XX억... 하지 않을까요?
지원자 6 : XX억일 것 같습니다.
면접관 1 :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감각이 있네요! 보증금이 한 달에 XX억이에요. 강남점이 그런데, 명동점은 평수가 커서 더 비싸요. 월세가 XX억, 보증금은 XX억이에요. (정확한 금액은 기억나지 않는다) 그런데도 우리가 입점하는 이유는, 그런 목이 좋은 곳에서 계속해서 소비자와 접점을 만들기 위해서에요. 우리 회사는 ...
면접관 1은 열정적으로 회사의 매장 위치와, 해당 매장들의 보증금/월세에 대한 강의를 이어나간다. 그는 그러한 정보들을 굳이 알아야 하나 싶다가, 면접자 3이 질문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재무제표 부채 항목의 '보증금'이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는 질문이었다. 면접관으로서는, 보증금이 왜 이렇게 큰 부분을 차지하는지 해명해야 한다고 느껴서 그렇게 장황하게 설명했을 수 있다.
면접관의 강의가 끝나고, 그에게도 질문의 차례가 온다. 그는 사실 질문하고 싶은 것이 별로 없다. 하지만 다들 질문을 했으니, 어필하는 셈 치고 질문을 한다.
그 : 4번째 기업도, 향후 해외로 진출할 계획을 갖고 계신가요?
면접관 : 현재 일본에도 진출해 있고, 진행 중에 있어요. 또 기회가 된다면 다른 나라들로의 진출도 열려 있는 상태랍니다.
그 : 네, 감사합니다.
그의 질문은 이렇게 짧게 끝난다. 모든 면접자들이 질문을 마치고, 면접관은 면접을 끝낸다. 토론만 1시간, 토론 이후에도 보증금 강의로 인해 약 30분이 넘게 걸렸다. 총 면접 시간이 1시간 30분을 넘긴 셈이다. 면접 시간은 길었지만, 압박이 없었으므로 전혀 피곤하지 않다. 오히려 너무 자유롭게 풀어주고 놔두어서, 1시간 30분이나 있었지만 도대체 그 시간 동안 무엇을 평가한 것인지 그는 의문이 들 정도다.
면접 대기실로 돌아온 뒤, 인사팀 직원의 안내에 따라 짐을 챙겨 나온다. 인사팀 직원은 면접자들 하나하나에게 작은 꾸러미를 건넨다. 면접자들을 위한 선물이라고 한다. 4번째 기업 매장에서 판매하는, 캐릭터가 박힌 조그만 우산과 방향제다. 선물 꾸러미에서, 그는 면접비가 들어 있는 봉투를 찾아보지만 그런 봉투는 없다. 면접비 대신 우산과 방향제를 준 것이다. 그는 속으로, 그냥 돈을 주는 게 낫다고 생각하나 내색하지 않는다. 다른 면접자들도 마찬가지다.
다함께 엘리베이터를 타고 건물 밖으로 나온다. 면접자들은 후련한 얼굴로, 다들 좋게 좋게 인사하고 떠난다. 그는 떠나기 직전, AICPA를 취득한 면접자 2에게 말을 건다.
그 : AICPA를 취득하셨어요?? 얼마나 걸리셨나요?
면접자 2 : 학원에서 6개월 정도 했어요. 별로 안 어려워요.
그 : 아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감사해요.
면접자 2 : 네 들어가세요
면접자 2는 쉽다고 했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의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 것은 사실이다. 그는 면접자 2의 말을 듣고, 자신도 AICPA를 따 볼까 생각하다 그만둔다. 재무와 회계 직무에 그만큼의 확신이 들지 않기 때문이다.
면접을 보고 2~3일 뒤, 4번째 기업에게서 문자가 날아온다.
1차 면접 불합격
그는 4번째 기업에서의 5번째 면접에 탈락했다. 벌써 꽤 여러 번 탈락을 경험했기 때문에 그는 별 타격이 없다. 가뜩이나 4번째 기업의 이미지, 같이 면접을 본 지원자들도 그와는 이미지가 확연이 다르다. 캐릭터, 화려하고 아기자기한 상품들을 만드는 4번째 기업은 원래부터 그와 맞지 않았다. 자신은 무겁고 강인한 철강, 가구, 식품, 건설 등의 업계에서 종사하는 것이 훨씬 잘 어울린다며 그는 애써 정신승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