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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얀 얼굴 학생 Jan 25. 2023

2023. 01. 24.

꿈속에서는 항상 안개가 낀 것처럼 시야가 뿌옇다.


 시간대는 저녁 여덟아홉 시 즈음, 나는 어느 무리의 술자리를 가고 있다. 무리의 핵심으로 보이는 몇몇과 함께 별동대에 속해, 술자리를 가질 식당을 물색하고 있다. 이미 술을 조금씩 했는지  다들 기분이 좋아보이며 나에게 우호적이다. 하지만 나는 이들의 이유 모를 호의가 부담스러우며, 누가 누구인지도 잘 모르겠다. 웃는 낯짝으로 어울리고는 있지만, 틈을 타서 슬그머니 빠지고 싶다.


 식당을 결정하고는 뒤따라오는 무리들을 안내하던 차, 저어기 길가 술집에 동창들이 보인다. 동창끼리 모였나 보다. 무리는 식당으로 향하느라 정신이 없다. 동창들은 약 6명, 모두 다는 아니지만 막역한 얼굴이 몇 있다. 지금 무리보다는 편하다. 슬그머니 동창들이 있는 쪽으로 몸을 뺀다. 무리는 저쪽으로 가더니 이내 보이지 않는다.



동창들은 양주를 마시고 있었던 모양이다. 다가가니 반갑게 인사하며, 반짝이는 양주병을 건넨다. 요즘 술이 썩 내키지 않지만, 친구의 얼굴을 보받는다. 다행히 예상대로, 한잔 들이킨 후로는 다시 권하지 않는다. 동창들이 술을 마시는 양주집은 지하에 위치해 있으며, 진녹색 전기 조명만 두드러진 어두운  분위기다. 실내에 잠시 앉아있다가, 담배를 피려는 것인지 다들 바깥 계단을 통해 1층으로 올라간다. 따라 올라간다.


 모두 동창이긴 하지만, 편한 이가 있고 그렇지 않은 이가 있다. 편한 이 주변 콘크리트 계단 층계참에 걸터앉는다. 그때, 한 친구가 말한다.


- 야! 얘 이제 사업할 거래!

- 그래? 무슨 사업?

- 아 내가 사실은, 조그맣게 요리주점 식으로 해보려고

- (지하 주점을 잠깐 보고는) 저런 식의 술집?

- 뭐, 그렇지. 말 나온 김에, 너도 나랑 같이 사업해볼래?

- 사업... 좋지...


 음식점은 생각해 봤지만, 주점은 생각 본 적이 없어 말끝을 흐린다. 하지만, 말끝을 흐리는 와중에도 지금 다니는 직장이 떠오른다. 그래, 지금 직장에 계속 는 것보다야 내 것 하는 게 훨씬 낫지. 마침 사업을 한다는 친구는 동창들 중 가장 막역한 친구다. 그래, 이 친구라면, 같이 해봄직 하지 않을까...



 장면이 전환된다. 나 혼자, 학원가 같은 길거리 한복판이다. 새까맣던 하늘은 회색빛으로 바뀌었다. 초저녁인가. 먹구름이 낀 것인가.


 바로 앞에는 서점이 보이고, 서점 안에는 문제집이 쌓여 있다. 서점, 문제집, 수능. 그래, 수능을 봐서 대학부터 다시 가자. 과는 어디로 가야 할까. 의대. 의대를 가자. 요즘 왼손의 감각이 둔해진 것 때문에 이런 생각이 드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수능이 언제였나. 11월, 아직 연초이니 시작하기엔 나쁘지 않다. 머리가 많이 굳었을 텐데. 의대를 갈수만 있다면야. 그럴 수만 있다면 지금보다 훨씬 낫지 않겠나.


 그런데 의대를 가려면, 성적을 어느 정도 받아야 되는 건가. 내가 할 수 있을까. 괜히 또 시도했다가 시간만 날리는 건 아닐까. 의대를 간다고 해도 사회에 나오기까지는 또 시간이 얼마나 걸릴까. 그렇다면, 차라리 지금부터 기술을 배우거나 사업을 하는 게 나은 것 아닌가. 그런데, 도대체 뭘 어떻게 시작해야 하나



 문득 고개를 떨구니, 품에 두터운 문제집 몇 권이 안겨져 있다. 아니 이게 아닌데, 아직 하겠다고 마음먹지 않았는데.


 버스 소리에 고개를 든다. 조금 떨어진 버스정류장에서, 마을버스 한 대가 정차했다가 출발하는 소리다. 버스 번호를 본다. XX번? 내가 타야 하는 버스 같은데... 너무 늦었다. 뒤늦게 쫓아가 잡을 새도 없고, 그럴 의지도 없다.


 멀어져 가는 버스를 본다. 품 안알 수 없는 문제집을 본다. 다시 버스와 문제집을 번갈아서 본다. 어떻게 해야 하나. 내가 할 수 있을까. 아니, 애초에 내가 하고 싶은 건 맞는 건가. 시간은 또 얼마나 걸릴까.


 시간? 갑자기 부모님 얼굴이 떠오른다. 뿌옇던 시야가 더 뿌예진다. 눈물? 아니, 잘 모르겠다. 회색빛 하늘에서 비가 내리기 시작한 것 같다. 눈에서 빗물인지 눈물인지 모를 것이 흘러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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