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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얀 얼굴 학생 Sep 30. 2023

19 - 인사총무 먼저 주겠다

 그가 IT 동기들과교육에서 분리되어 슬금슬금 눈치를 볼 즈음, S 팀장은 그에게 팀원들의 R&R을 파악하라고 지시한다. 언제나 느끼는 부분이지만, 한국은 이상하리만치 영어에 집착하는 경향이 있다. 그리고 이런 영어 집착은, 회사 생활에서 특히 심한 듯하다. 찾아보니 R&R은 Role & Responsibility. 그러니까 누가 어떤 일을 하고 어디까지 책임을 지는지 알아보라는 것이다.


 그는 아직 어색한 엑셀이라는 툴을 열어, 칸칸이 나뉜 도화지에 선을 하나씩 그리듯 한다. 이런 식으로 하면 되겠지. 팀장에게서 대강의 청사진은 받았다. 사업지원팀의 업무는 대부분 위의 관리팀과 연계된 업무들이 많다. 어떤 관리팀의 무슨 업무를, 사업지원팀에서는 현재 누가 담당하고 있는지 보게 하라는 것. 팀 상사들이 하고 있는 일을 메신저로 요청한 뒤, 취합된 정보를 그가 한 차례 가공한다. 완성된 자료를 팀장에게 제출한다.


  S 팀장 : 얼굴아, 이거 니가 만든 거야?

  그 : 네. 말씀해주신 양식으로, 팀원분들한테 내용 적어달라고 했습니다.

  S 팀장 : (알 수 없는 표정으로) 음... 이거 사업부 게시판에 올려. 다들 볼 수 있게. 그래야 우리 팀에 업무 요청할 때도, 누구한테 요청할 수 있는지 알 수 있을 테니까.

  그 : 네.

  S 팀장 : (모든 팀원들에게) 그리고, 잠깐 회의하죠.

  사업지원팀 일동 (W사원 제외) : 네.



회의실 내

  S 팀장 : 지금 회의하자고 하는 건, 얼굴이도 들어왔고 하니, 우리가 하고 있는 일들을 한번 정리해보려고 이렇게 모이자고 했습니다. 짧게 하죠. 저도 회의가 긴 거를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니.

  T,U과장 : 네

  S 팀장 : T가 지금 어떤 업무하고 있지?

  T 과장 : 기획팀 관련해서는 도장/인증서 관리, 실적 관리, 보고자료 작성하고 있습니다. 재무팀 관련해서는 채권, 법인카드, 원가 관리하고 있고요. 인사총무는 일단 재택 관리, 조직도 정도만 기억납니다.

  S 팀장 : U는?

  U 과장 : 저도 기획팀은 실적이랑 보고 자료 작성하고 있고. 계약 검토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관리팀에서 최근에 계약 가지고 압박이 들어와서 계약 현황 따로 보고하고 있어요. 인사총무도 몇몇 요청들 처리하고 있습니다.

  S 팀장 : V 차장님은요?

  V 차장 : 저는 주로 구매 쪽에서 매입계약, 자산 관리 맡고 있죠. 인사총무에서 문의오는 전염병 관련된 업무, 그리고 안전팀에서도 요즘 전염병에 이슈가 있어서. 전염병 업무 대응하고 있습니다. 아 그리고 곧 명절이라 선물 리스트 취합해야 해요.



  S 팀장 : 자 이렇게 다 적었는데. 보시면, 다들 맡고 계신 일이 많습니다. 특히 T가 지금 맡은 게 많아. 얼굴 사원 뽑은 1차 이유가 T 과장 업무 부담을 덜어주기 위함이란 말야. 거기에 더해서 당연히 다른 사람들 업무도 가져가는 게 맞고.


  S 팀장 : 우리 팀은, 대부분의 업무가 관리 부서랑 연계되어 있어서, 어쩔 수 없이 저쪽이랑 커뮤니케이션이 잘 돼야 해요. 그런데 아시다시피 저쪽은 의사소통하기가 쉽지는 않아서. 음... 우선은, 얼굴이한테는 인사총무 업무를 먼저 줄거야.

  T,U,V : (끄덕끄덕)

  그 : ...?? (좋은 건지 안 좋은 건지 모르겠다)

  S 팀장 : V 차장님께서, 넘길 수 있는 업무는 바로바로 넘겨주세요. 그리고 인사총무 차장급들이랑 얼굴이가 바로 커뮤니케이션하기는 힘들테니, 그런 부분 잘 케어해 주시고요.

  V 차장 : 네.


  S 팀장 : (그에게 넌지시 이야기하는 듯) 원래 모든 일이든 인사총무가 기본이 돼야 다른 걸 할 수 있어. 빨리빨리 다른 쪽 업무도 넘겨줄 거니까. 지금 문제는 T, U한테 업무가 너무 몰려있다는 거야. 그걸 빨리 완화해야 해.

  그 : ... (무슨 반응을 해야할지 몰라, 일단은 노트에 다 받아 적는다)

  S 팀장 : 자 그럼, 회의 끝냅시다.



 이 회의 이후, 그는 V 차장으로부터 인사총무 일을 본격적으로 받기 시작한다. 장들도 몇몇 일을 그에게 일임하였으므로, 그는 나름 바쁜 신입사원 생활을 시작하게 된다.


 하지만 '인사총무 업무'라는 말을 들었을 때, 그의 내면은 어떠했나. 기뻤던가 슬펐건가. 그는 훗날 다시 이때를 돌이켜봐도, 당시의 감정을 알 수가 없다. 딱히 어떠한 방향이 있다고 느껴지기 힘들 정도로 애매한 감정. 감정이랄 게 있긴 했던가. 

 인사총무가 좋아보이나? 재밌어 보이나? 아니, 이 회의에서 언급된 다른 부서들과 연관된 업무들은 어때 보이는가. 기획? 재무? 관리? 구매? 안전? 인사총무?



 그는 그저 생각 없이, 불현듯 아온 파도가 자신을 휩쓸어가기를 기다릴 뿐이었다. 그는 이때부터, 아니 한참 전에 이미 깨달았어야 했다. 다가오는 이 파도가 그의 선호에 맞을지 여부를. 애초에 그라는 인간은 생각 없이 파도에 휩쓸리는 것을 좋아하는지 여부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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