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이 반이다.
더는 부정할 수 없는 가을이 왔다. 잠시 쌀쌀할 뿐 다시 따뜻해지겠지 생각했었는데, 느껴지는 공기의 흐름이 심상치 않다. 코가 아리고 몸이 떨린다. 아침이 되면 차가운 공기에 이불 밖을 나가기 싫고, 오후 다섯 시만 돼도 해가 저 편으로 넘어간다.
지구 반대편 사람들은 새로운 학기를 시작했고, 곡식은 일 년 동안의 결실을 맺는다. 가을은 무언가 시작되거나 끝을 맺는 모순적인 계절이다. 그리고 나는 그 무엇도 하지 못한 채로 가을을 맞았다.
동기들과 얼마 전 밥을 먹었다. 별로 친하지 않은 사이라 호구조사 하듯 가볍게 그들의 삶을 들을 수 있었다. 어려서 유학을 다녀온 동기와 여름에 해외봉사를 다녀온 동기, 공모전에 나간 동기 등등 다들 자신만의 무기를 갈고닦는 중이었다. 비슷한 나이의 이들과 비교했을 때 내가 한참 모자라다는 생각이 들면 참 우울해진다. 그리고 한편으로 동기부여를 받는다. 이대로 머물러 있으면 도태될 것이라는 위기감과 나도 못할 거 없다는 근거 없는 자신감이 용기를 불어넣는다. 다만, 지속시간이 길지 않다는 게 단점이다. 위기감도 그때뿐 다시 의욕 없는 삶으로 돌아간다. 그러니 동기부여를 받았을 때 시작해야 한다.
나는 평생 사람을 실망시키는 것을 두려워했다. 사람들은 내게 거는 기대가 크지 않을 테지만 어쩌면 관심도 없겠지만, 나는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들의 시선을 자주 의식하고 걱정했다. 그리고 아직도 극복하지 못했다. 내가 쓰고 싶은 글은 아끼고 아껴 서랍 안에 있고, 써보고자 마음먹었던 글은 너무나도 부족해 보여 발행하지 않았다.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는 많지만 부족한 필력은 나를 글쓰기와 더욱 멀어지게 한다.
최근에는 공연준비와 시험준비, 과제로 매우 바빴다. 그리고 이걸 이유로 글쓰기와 멀어졌던 나를 합리화 했다. 다 핑계다. 아무리 바빴어도 글 한 줄 적지 못할 만큼 바쁘지 않았다. 동기는 매일 공부하고 새벽같이 일어난다는데 그 정도로 부지런하지도 않았다. 게을렀다. 게으르게 행동해서 일이 밀렸고 그래서 조금, 아주 조금 바빴던 것이다.
그래서 앞으로는 그냥 해보기로 했다. 아주 겁나고 무서운 일이지만, 일단 해보면 죽이든 밥이든 될 수 있을 테니. 그래도 이왕이면 밥이 될 수 있게 노력하고 공부할 것이다. 언젠가는 최선을 다해 살았다고 말할 수 있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