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실에서도 보이는 평등
화장실 탐험기 : 평등과 불편 사이에서
"여기... 여자 화장실 맞죠?"
스웨덴에 와서 가장 당황스러웠던 공간을 하나 꼽으라면, 단연 화장실이다. 처음에는 그저 신기했다. 도서관이든 카페든, 심지어 쇼핑몰이나 펍 안에도 남녀 구분된 곳이 많지 않다. "성평등한 사회란 이런건가? 역시 진보적이야!" 괜히 혼자 감동도 받았다. 하지만 문을 열고 들어가는 순간, 그 감동은 꽤 빠르게, 그리고 수상하게 젖어 있는 변기 커버 위에서 끝났다.
어느 토요일 밤, 스톡홀름의 한 펍. 맥주 한잔 마시고 화장실 가려고 문을 열었는데, 남자 둘이 나란히 서서 소변을 보고 있었다. 구분을 짓는 벽도 없다. 그 장면을 본 나는 얼어붙었고, 내 옆에 있던 스웨덴 여성도 놀란 듯 급히 휙 돌아선다. 아무리 성평등한 사회여도 소변보는 뒷모습엔 익숙해지기 힘든 모양이다.
스웨덴의 대부분 공용 화장실엔 남성용 소변기가 없다. 대신 모두가 양변기를 사용한다. 평등하다. 그런데 현실은 침착할 수 없다. 공용 화장실에서 가장 자주 마주치는 건 젖어있는 변기 커버와 바닥이다. 어쩌면 이 나라에서 가장 많이 눈치를 보는 공간이, 바로 화장실 안일지도 모르겠다. 앉기 전엔 늘 정체불명의 물기와 심리전을 벌여야 하니까. 화장실 문을 열기 전, 심호흡은 꼭 하고 들어가야 한다.
그래도 다 그런 건 아니다. 대형 쇼핑몰 같은 곳에는 남녀 구분된 화장실도 존재한다. 하지만 공용일 경우, 변기마다 칸막이가 완전히 닫혀 있어 안심이 된다. 벽 틈 사이로 그림자 하나 새지 않게 꽉 막힌 구조로 프라이버시는 철저하게 지켜진다. 그렇지만 여전히 기다림은 공유된다. 남자와 여자가 한 줄로 서서 화장실 순서를 기다린다. 진정한 평등은 여기서도 실현된다. 같이 기다리기. 이보다 평등한 공공 공간이 또 있을까?
어떤 화장실은 칸 안에 세면대까지 있다. 그러니까, 한 사람이 들어가 변기도 쓰고, 손도 씻고, 거울까지 보고 나오게끔 설계된 '작은 독립 공간'인 거다. 잠깐이지만 나만의 작은 방에 들어간 기분이 든다. 용무를 마치고 다시 밖으로 나와 줄 서서 손을 씻는 번거로움도 없고, 사람들과 어깨 부딪치며 거울을 공유할 일도 없다. 정말이지, 사적이고 조용하다. 아무도 날 보지 않고, 나도 누구와 얽히지 않는 공간. 이건 화장실이라기보단, 하나의 작은 쉼터 같았다.
스웨덴 화장실 탐험은 매번 다르고, 그래서 자꾸 비교하게 된다. 어쩌면 이런 점이 스웨덴이 공공 공간을 설계할 때 중요하게 생각하는 포인트일지도 모르겠다. 누구에게나 동등한 권리, 누구에게도 침범당하지 않는 공간이다.
그렇게 외부 화장실을 몇 번 경험하고 나니, 내 생활 습관도 조금씩 바뀌었다. 그것은 바로 밖에서는 웬만하면 물도, 커피도 마시지 않는다는 점이다. 대부분 유럽이 그렇듯, 스웨덴도 지하철역 안에는 화장실이 없다. 아예 없거나, 있어도 대부분 유료다. 그래서 목이 마를 때도 그냥 꾹 참는다. 갈증보다 무서운 건, 길거리에서 화장실을 찾아 헤매는 순간이니까.
스웨덴의 화장실은 참 이상하다. 평등하고, 열려 있고, 때론 너무 솔직하다. 감탄하다가 불편하고, 당황하다가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이곳에선 단순히 볼일을 보는 공간조차 누구나의 권리와 누구나의 불편이 함께 머무는 장소가 된다.
스웨덴에서는 성별, 나이, 정체성이 '정답'이 아닌 '존재'로 받아들여진다. 그래서 화장실 하나에도 가치가 스민다. 감시받는 시선이 없고, 침범당한 느낌도 없다. 다만 사람이 있고 문이 있고 그 안에서 지켜지는 존중이 있다. 무언가를 없앰으로써 누군가를 지켜내는 방식, 이것이 스웨덴이 말하는 성평등이다. 억지로 말하지 않아도, 크게 주장하지 않아도, 그저 공공 공간의 문 하나가 우리에게 말해주는 것. '우리는 당신을 환영합니다. 어떤 모습이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