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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8강 학습자를 대하는 태도

학습자를 대하는 태도

by 김용석

학습자를 대하는 태도

교육자가 진정으로 심리적 안전이 확보된 교실을 꿈꾼다면, 그 출발점은 다름 아닌 학습자를 대하는 태도이다. 학생을 존중하지 못하거나, 때로는 비하와 경멸의 언행을 아무렇지 않게 내뱉는 모습을 우리는 간혹 목격한다. 설령 그 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단지 ‘배우는 학생’이라는 이유만으로 함부로 대하는 태도 역시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 이런 관행이 바뀌지 않는 한 교실은 결코 심리적 안전의 공간으로 거듭날 수 없다.

그러나 타자를 존중하는 마음은 저절로 타고나는 기질이 아니다. 그것은 깊은 자기 성찰과 꾸준한 훈련 속에서 비로소 형성되는 고귀한 덕목이다. 교육자는 스스로를 단련하고 성찰하는 노력을 기울일 때에만, 존중의 태도를 삶 속에 체화할 수 있으며, 이를 통해 학생들에게 안전한 배움의 장을 열어줄 수 있다.

따라서 이 장에서는 교육자가 학습자를 대할 때 어떠한 태도를 지녀야 심리적 안전 교실을 확립할 수 있는지 그 핵심을 살펴보고자 한다.


존중, 교실에서 피어나는 철학


한 사람을 존중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일상에서 흔히 쓰는 말이지만, 막상 그 깊이를 따져 들어가면 간단치 않다. 특히 교육자의 자리에서 ‘학생을 존중한다’는 말은 단순한 친절 이상의 요구처럼 다가온다. 학생은 배우는 자이자 가르침을 받는 자로서 쉽게 수동적인 위치에 놓인다. 그렇기에 존중이라는 말은 교육의 맥락에서 더욱 특별한 울림을 가진다.


칸트는 인간을 “목적 그 자체”로 대하라고 말했다. 학생도 예외가 아니다. 학생은 지식을 주입할 빈 그릇이 아니라, 이미 자기만의 목적과 가능성을 지닌 하나의 인격이다. 가르침은 도구가 될 수 있지만, 학생 자체는 결코 수단이 되어서는 안 된다. 교육자가 이 사실을 잊는 순간, 가르침은 고귀한 사명이 아니라 일방적인 통제나 조작으로 변질된다.


심리학자 칼 로저스는 “무조건적 긍정적 존중”을 이야기했다. 학생이 잘해서가 아니라, 존재 그 자체로 존중받을 때 진정한 배움이 가능하다. 교실의 공기는 그 존중을 머금은 만큼 따뜻해지고, 학생은 그 안에서 실수할 자유를 누리며, 배움의 모험을 감행할 용기를 얻는다. 에이미 에드먼슨이 말한 ‘심리적 안전’이란 것도 결국 존중에서 시작된다.


그렇다면 존중은 단지 예의 바른 태도나 공손한 말투에 머무르지 않는다. 그것은 교육의 가장 근원적 토대이며, 동시에 인간 이해의 철학적 결론이다. 학생을 존중한다는 것은 “당신은 나의 아랫사람이 아니다, 당신은 하나의 우주다”라고 선언하는 일이다.


교육은 지식의 전달만으로는 완성되지 않는다. 교사의 존중 속에서 학생은 배우는 자에서 성장하는 자로 변한다. 존중은 단순히 학생을 향한 태도가 아니라, 결국 교육자가 자기 자신에게 내리는 선언이기도 하다. “나는 타자를 존엄하게 대할 수 있는 존재다.” 교실에서 존중이 살아 숨 쉬는 순간, 그 공간은 단순한 수업의 장을 넘어선다. 그것은 인간이 인간을 길러내는 거룩한 자리, 철학이 삶으로 구현되는 현장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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