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청
경청
교실이 ‘심리적으로 안전한 공간’이 되려면, 교육자는 무엇보다 경청하는 태도를 갖춰야 한다. 그런데 실제 수업 장면을 들여다보면, 학생들의 말은 종종 공중에서 맴돌다 사라진다. 질문–대답–평가가 빠르게 반복되는 IRE(또는 IRF) 식 상호작용이 수업을 지배해, 학생의 생각을 이어 듣고 확장하는 ‘대화’로 잘 이어지지 않는다. 한국 초등 영어 수업을 분석한 연구에서도 바로 이런 IRE 패턴이 가장 흔하게 관찰되었다고 보고한다. 아이들의 목소리가 이렇게 흘려보내져서는 안 된다. 학생들의 목소리는 그냥 재잘거림이 아니라, 해석하고 연결해야 할 학습의 단서이다. 학생들의 말은 공허한 메아리가 되어서는 안 된다. 교육자가 귀를 열고, 말을 ‘받아’ 주고, 이어 묻고, 기록하고, 수업을 함께 설계할 때—교실은 비로소 안전해지고, 배움은 깊어진다.
교육자는 학생들의 목소리에 경청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경청이란 무엇인가? 경청은 “상대의 말을 정확히 이해하고, 그 이해를 상대가 느끼도록 보여주는 대화 행동”이다. 즉, 귀로만 듣는 게 아니라 주의→이해→확인→응답의 짧은 순환을 반복해, 말하는 사람이 “내 이야기가 통했다”라고 체감하게 만드는 기술이자 태도이다. 경청은 타고난 성향만으로 결정되지도, 훈련만으로 ‘완성’되지도 않는다. 하지만 훈련을 하면 경청 능력은 분명히 좋아질 수 있다는 것은 확실하다. 공감 성향(정서·인지 공감)은 경청의 토대이다. 쌍둥이 자료를 종합한 연구들은 정서적 공감은 유전적 영향이 더 크고, 인지적 공감은 공유 환경의 영향도 뚜렷하다고 보고한다. 즉, 사람마다 출발선이 다른 건 사실이지만, 특히 ‘생각을 이해하는’ 쪽의 공감은 학습과 경험의 몫이 크다는 의미이다. 연구자들의 메타분석에 의하면 의료·상담 등 실제 현장에서 시행된 공감·경청 훈련은 대체로 중간 정도의 효과를 보인다. 즉, 반영·명료화·요약 같은 ‘경청 기술’을 의도적으로 연습하면 측정 가능한 수준으로 향상될 수 있다고 보고된다.
한 집단 내에서 시간 압박이나 규범이 경청을 쉽게 무너뜨린다고 보고된다. 예컨대 진료 현장에선 환자의 말머리를 ‘몇 초’ 만에 끊는일 같은 경우다. 이건 개인의 품성 문제가 아니라 현장 상황이 주는 시간적 요소나 압박 그리고 규정 같은 것들에 영향 받는 문제이다. 동일하게 교실에서도 질문–대답–평가가 급히 순환하면 경청의 여지가 사라지게 된다. 이런 상황은 주로 교사들을 둘러싼 환경적 요소에 의해 발생하거나 시간적 압박 같은 주변 요소들에 의해 발생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경청이란 중요한 요소는 개인 성향에 의해 어느 정도 주어지지만, 훈련으로 얼마든지 향상 시킬 수 있고, 환경적 방해 요인을 제거해 나가면 경청의 기술을 높일 수 있다.
경청을 이루는 5가지 기술
1) 주의: 몸을 말쪽으로 틀고, 시선을 안정적으로 두며, 방해 자극(휴대폰, 화면)을 치웁니다. (눈은 말하는 사람, 손은 기록, 마음은 현재)
2) 열어 주기 혹은 맞장구 반응: 이야기를 더 끌어내는 짧은 신호—"오호" "와!" “계속 이야기해 줄래요?”, “그 대목이 특히 궁금하네.”
3) 반영: 핵심어를 되비추기—“그러니까 발표 순서가 갑자기 바뀌어서당황했다는 거지?”
4) 명료화: 애매한 지점을 질문으로 다듬기—“‘불공평했다’는 건 평가 기준이 달랐다는 뜻일까?”
5) 연결: 마지막에 짧게 묶고 다음 행동과 잇기.
경청의 반대말, 가청(假聽)과 그 모습
경청의 반대는 딱 한 단어로 “비경청”이라 할 수 있지만 어감이 좋지 않다. 그래서 필자는 경청의 반대어로 가청(假聽)으로 어휘를 정하고 가청의 의미는 거짓 가+ 들을 청→ 겉만 듣는 척하는 ‘가짜 듣기’를 의미한다. 교육자가 경청의 태도를 가지기 위해서는 가청이 나타내는 모습은 어떠한지에 대해 정확히 이해하고 있어야 경청을 좀 더 잘 이해할 수 있다. 가청은 교육현장에서 보통 다음과 같은 모습으로 나타나지만 꼭 하나의 모습으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동시에 여러 유형이 섞여 나오기도 한다.
1) 듣는 척하기
보통 교육자들은 학생의 말에 고개는 끄덕이지만 내용은 못 따라가고 있다. 학생이 끝내기도 전에 “좋아, 다음!”으로 하면서 넘어 가기도 한다.
2) 선별적 듣기
학생의 이야기에 교사 자신이 원한 ‘정답 토막’만 선택한다. 학생의 맥락과 감정은 무시된다.
3) 반박 준비 듣기
듣는 동안 반박거리만 찾는다. 대화는 즐거운 탐색이 아니라 심사 평가처럼 느껴진다.
4) 평가 중심 듣기
학생의 이야기에 교사로부터 “그건 틀렸어/맞았어”가 먼저 나온다. 사고의 씨앗이 싹트기 전에 잘려버린다.
5) 무단 끼어들기
학생의 말 한 중간에 교사가 결론을 대신 내려버린다. 학생은 “내 얘긴 중요하지 않다”고 생가갛며 무시감을 느낄 수 있다.
6) 주의 분산 듣기
학생의 이야기에 시선이 학생에게 향하지 않고 화면과 서류, 혹은 시계 등 다른 곳에 머문다. 학생은 신호를 읽고 발화량을 줄이거나 침묵할 것이다.
7) 즉시 해결사 모드
“그럼 이렇게 해.” 문제를 함께 탐색하기보다 처방이 먼저 나온다.
심리적으로 안전한 교실은 우연히 생기지 않는다. 교육자는 가청(假聽, 겉듣기)을 삼가고 경청(傾聽)을 습관으로 만들어야 한다. 결코 쉽지 않다. 어쩌면 가장 어려운 과제이다.
경청은 너무나 중요한 문제이기에 스스로에게 다음과 같이 물어보자.
-오늘 나는 누구의 이야기를 끝까지들었는가?
-어느 순간 가면처럼 끄덕였는가?
-무엇을 받아 적고, 무엇을 놓쳤는가?
경청은 훈련으로 자란다. 이야기 듣는 동안 적어도 3초 침묵, 한 번 더 묻기, 한 문장으로 받아주기 같은 경청하는 작은 연습들이 사랑하는 제자들의 안전감을 키우고, 다음 말을 꺼낼 용기를 키운다. 진정 우리가 얻으려는 것이 아이들의 성적이나 규정 혹은 대학진학과 같은 결과만이겠는가? 학생들에게 한 사람의 목소리가 존중받는 경험, 그 경험이 용기를 낳고 진정한 배움을 교사는 주고 싶은 것 아닌가? 그래서 교육자는 당장 가청을 멈추고 경청을 선택해야 한다. 그 선택이 교실의 공기를 바꾸고, 아이들이 배움을 느낄 수 있는 심리안전 공간이 될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 제자들이 이렇게 말할 것이다. “선생님 앞에선, 내 말이 정말들려요.”
참고로 교육자의 경청 체크리스트(자기 점검용)를 제공한다.
경청 체크리스트
1) 나는 가청의 모습을 보인 적은 없는가?
2) 나는 학생이 끝까지 말한 뒤에 질문했는가?
3) 나는 학생의 말에 주의를 집중했는가?
4) 나는 학생의 말에 적절한 오프너를 사용하면서 반응하였는가?
5) 내 첫 반응이 평가가 아니라 반영이나 명료화였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