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성이 무너질 때 교실은 불안하다
학생들에게 가장 필요한 교실의 조건은 무엇일까. 뛰어난 시설이나 화려한 교구재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먼저 심리적 안전이 보장되는 환경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 안전의 기초는 교사의 공정성에서 비롯된다. 공정성은 단순히 착하게 대하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같은 상황과 행동에 대해 누구에게나 동일한 기준을 적용할 수 있는 능력, 바로 그것이 학생들이 교사에게 기대하는 최소한의 태도다. 공정하다는 신뢰가 형성될 때 학생들은 안심하고 자신의 역량을 드러내며 학습에 몰입할 수 있다.
그렇다면 교실에서 공정성이 무너질 때 어떤 일이 벌어질까. 흥미롭게도 우리 교육 현장에는 교사들 사이에서 은밀히 ‘전통’이라 불리는 관행이 존재한다. 학년이 바뀔 때마다 전임 담임이 후임 담임에게 특정 학생에 대한 정보를 미리 전달하는 것이다. 처음에는 단순히 학생을 빨리 파악하고 지도하려는 선의에서 시작되었지만, 문제는 이 과정에서 전달되는 정보가 사실보다는 교사의 주관적 인상에 크게 좌우된다는 점이다. 어떤 학생은 새로운 담임을 만나기도 전에 이미 ‘문제아’, ‘성실하지 못한 아이’, 혹은 ‘예민한 아이’로 낙인찍힌 채 새로운 한 해를 맞이한다.
연구들은 이런 낙인이 학생에게 미치는 영향을 분명히 보여 준다. 교사의 기대는 실제로 학생의 성취와 태도를 변화시킨다. 긍정적 기대가 학업 성장을 이끄는 경우를 ‘피그말리온 효과’라고 부른다. 반대로 부정적 기대는 학생의 잠재력을 제한하는데, 이를 ‘골렘 효과’라고 한다. 특히 부정적인 라벨은 시간이 지나도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학생이 좋은 성과를 보여도 “저 아이는 원래 문제를 일으켰던 애”라는 생각이 교사와 주변 학생들의 인식 속에 남아, 결과적으로 학급 생활 전반에서 불리한 대우를 받을 가능성이 높아진다.
이러한 관행은 제도적 기준과도 충돌한다. 교육부는 학생에 관한 기록은 반드시 객관적 사실만 남기도록 하고, 개인정보보호법은 학생의 평판이나 사적인 평가를 임의로 공유하는 것을 엄격히 금지한다. 법과 지침이 마련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전통’은 여전히 교무실 한편에서 은어처럼 오가며, 학생들에게 피할 수 없는 편견을 안겨 준다. 여기서 우리가 던져야 할 질문은 분명하다. 편의를 위해 이어져 온 이 관행이 과연 학생의 권리와 심리적 안전을 희생시킬 만큼 가치가 있는가?
교실을 더 안전한 공간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공정성을 제도와 실천 속에서 되살려야 한다. 교사 간 인수인계가 꼭 필요하다면, 그것은 어디까지나 객관적 관찰 기록과 학습 지원의 필요에 국한되어야 한다. “성실하지 않다”거나 “수업에 관심이 없다”는 식의 주관적 평가는 학생을 낙인찍어 가능성을 가로막을 뿐이다. 그래서 교사는 끊임없이 노력하며 자신을 성찰해야 한다. 교사가 지닌 작은 편견 하나가 학생의 내일을 흔들 수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고, 늘 자신을 돌아보아야 한다.
배움을 위해 학생들에게 심리적으로 안전한 교실을 제공하겠다는 믿음을 가진다면, 교육자는 멈추지 않고 변화하고 성장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반드시 길러야 할 능력이 바로 공정성이다. 공정성은 교실을 지탱하는 기둥이자, 학생들에게 “나는 있는 그대로 존중받고 있다”는 신호를 주는 힘이다. 교사가 공정성을 실천할 때, 교실은 단순한 배움터를 넘어 학생들의 꿈과 자존감을 키우는 가장 안전한 공간으로 거듭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