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안전 교실을 세우기 위해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은 규범이다.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교실 규칙은 지각하지 않기, 휴대폰 사용하지 않기, 교사의 말 잘 듣기 같은 것들이다. 하지만 심리안전 교실의 규범은 이런 것들과는 결이 다르다. 나는 매 학기 첫 시간, 반드시 학생들과 한 가지 약속을 나눈다. 그것은 바로 “타인을 평가하지 않기”이다.
왜 이것이 중요할까? 인간은 누군가에게 평가받는다고 느끼는 순간, 곧장 방어 태세에 들어간다. 마음은 닫히고, 표정은 굳으며, 관계는 경직된다. 교실은 배움의 공간이 아니라 경쟁과 불편의 공간으로 바뀌어 버린다. 사실 우리는 이미 너무 오랫동안 평가 속에 살아왔다. 외모, 학업, 성격, 능력… 사람을 숫자와 등급으로 재단하는 데 익숙해져 버린 사회의 민낯 속에서. 이해하기보다 비교하고, 존중하기보다 줄 세우기에 먼저 손이 가는 세상 속에서 말이다.
그래서 나는 학생들에게 말한다.
“여러분이 무심코 주고받는 말에도 평가가 숨어 있어요.”
친구들끼리 장난처럼, 혹은 교사와 학생 사이에서도 쉽게 오가는 말들.
“너 왜 이렇게 못 꾸몄어?”, “그 문제도 몰라?”, “넌 왜 이렇게 소심해?”, “쟤보다 네가 못하잖아.”
이런 말들은 의도적으로 상처를 주려는 것이 아닐지라도, 듣는 순간 상대의 마음을 닫게 만든다. 교실의 공기는 서늘해지고, 배움의 문은 굳게 닫힌다.
그러나 단 하나의 규범, ‘평가하지 않기’를 지키는 순간, 교실은 완전히 달라진다.
나는 학생들에게 말한다. “이 공간에서는 휴대폰을 써도 됩니다. 틀려도 괜찮습니다. 떠들어도 괜찮습니다. 단, 하나만 지켜 주세요. 타인을 평가하지 않기. 그것이 이 교실의 유일한 규범입니다.”
이 규범은 단순한 규칙이 아니다. 서로를 존중하는 최소한의 약속이며, 누구나 안전하게 목소리를 낼 수 있게 하는 마음의 울타리다.
나는 그 울타리 안에서 일어난 변화들을 기억한다. 학생들은 자기들 그룹에서 마음껏 소리높여 자신의 의견을 나누고 떠들고 웃으면서도 과제 수행을 마친다. 이 공간에서는 늘 수줍어 하던 학생들도 친구들이 비웃거나 평가하지 않기에 당당해지고 자신감을 가진다. 그러므로 자연히 교실은 따뜻한 공기로 가득 찼고, 교실은 배움의 공간을 넘어 서로를 살리는 공동체가 되었다.
때때로 누군가 규범을 잊고 평가의 말을 내뱉을 수도 있다. 그럴 때 나는 경고한다. 그러나 그것은 처벌이 아니라, 우리가 함께 지키기로 한 약속을 다시 떠올리자는 신호일 뿐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교사의 역할이다. 교사가 이 규범을 진심으로 지켜내고, 학생들에게 모범을 보이며, 잊을 때마다 상기 시켜 줄 때, 교실은 서서히 변한다. 억지로 강요하지 않아도, 교사가 먼저 길을 열어 주면 학생들은 자연스럽게 따라온다. 그렇게 할 때 교실은 경쟁의 공간이 아니라, 누구나 안심하고 배우며 성장할 수 있는 심리안전한 공간으로 바뀌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