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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3강 규범의 힘과 두 얼굴

by 김용석

필자는 매 학기 첫 시간, 오리엔테이션에서 학생들과 함께 교실의 규범을 세운다. 그만큼 규범 만들기는 교실 문화를 결정짓는 중요한 출발점이다. 그래서 한 번 더 강조하고 싶다. 필자가 교실에서 가장 먼저 정한 규범은 바로 “서로를 평가하지 않는다”였다. 여기서 말하는 ‘평가’란 단순히 시험 점수 같은 객관적 기준이 아니라, 말투나 아이디어, 태도에 대해 주관적으로 ‘좋다/나쁘다’를 재단하는 것을 가리킨다.


‘서로를 평가하지 않기’는 단순한 규칙이 아니라, 교실 속 작은 약속에서 비롯된 규범이며 교사는 그 모범을 보인다. 교실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법이 있고, 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규칙이 존재한다. 하지만 ‘서로 평가하지 않기’는 단순한 질서와는 다르다. 규칙이 제한과 억압, 한계를 가르친다면, 심리안전 교실의 규범은 사람을 위한 울타리다. 그것은 누군가의 마음을 다치지 않게 지켜 주는 ‘심리적 방패’이자, 실수조차도 배움이 되는 공간을 열어 주는 약속이다.


물론 규범은 ‘자유 방임’이 아니다. 어떤 이는 묻는다.
“그럼 아무렇게나 해도 되는 거 아니에요?”
하지만 아니다. 이 규범은 ‘아무렇게나’가 아니라, ‘마음을 다치지 않게 하는’ 자유다. 모든 자유에는 책임이 따르듯, 이 규범은 자유가 누군가를 해치지 않도록 울타리를 세운다.

‘서로 평가하지 않기’라는 약속 속에서 심리안전 교실을 경험한 학생들은 종종 놀란다.
“떠들어도 된다고요?”
“핸드폰을 써도 된다고요?”
이 자유는 처음엔 낯설다. 왜냐하면 우리는 너무 오랫동안 ‘규칙을 지켜야만 안전하다’고 배워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심리안전 교실은 질서 유지를 위한 규칙을 줄이는 대신, 서로의 마음을 지키는 약속을 늘린다. 그 약속이 바로 ‘규범’이다.

그래서 규범은 단순한 ‘규칙 목록’이 아니라, 교실이 어떤 사람을 길러내고 싶은가를 보여주는 가치 선언에 가깝다.

심리안전 교실의 규범은 학생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여기서는 네가 네 모습 그대로 있어도 된다.
여기서는 실수가 배움이 된다.
여기서는 네 목소리가 존중받는다.”

그 순간, 교실은 단순한 수업 공간을 넘어 마음이 자라는 정원이 된다. 일반 교실의 규칙이 높은 철조망과 같다면, 심리안전 교실의 규범은 울타리 있는 정원과 같다. 철조망은 잡초와 도둑을 막지만 바람과 햇빛마저 차단한다. 그러나 정원의 울타리는 외부의 위협을 막으면서도, 안에서는 자유롭게 꽃이 피고 새가 날아든다.


규범으로 무장한 심리안전 교실은 단순히 편안함만 주는 공간이 아니다. 이곳에서 학생들은 더 많은 질문을 던지고, 더 깊은 토론에 나선다. 틀림에 대한 두려움이 사라지자, 새로운 시도가 늘어나고 창의성은 무럭무럭 자란다. 서로가 안전하다고 느끼는 순간, 다름은 존중으로 바뀌고 관계는 더욱 깊어진다. 이것은 마치 ‘마음의 근육’을 기르는 과정과도 같다. 마음은 오직 안전한 공간에서만 강해지고 성숙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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