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자수 나무에 오르다

재미있는 상상으로 순간을 아름답게 보내기

by 포도나무


우리 집 둘째가 가장 싫어하는 야채는 당근이다. 당근을 익힌 식감이 싫고 맛이 없다고 잘 먹지 않는다. 여행지에서 동물들 먹이주기할 때는 신나게 먹여주면서 정작 본인은 잘 안 먹는 당근. 그래도 요리할 때 당근이 빠질 수 없지. 카레, 감자조림, 김밥 등등 당근의 톡톡 튀는 주황색이 없으면 요리가 심심해진다. 아이가 아무리 싫어해도 열심히 당근을 넣는다.


잘 자란 흙당근을 사다 씻기고 싹둑. 당근 줄기가 자그맣게 남아있길래 작은 접시에 담아 놓았다.

설거지하며 정성스레 물도 갈아주고 당근 줄기 자라는 것을 보는 재미가 있다.

며칠 잘 키운 당근 줄기가 쭉쭉 하늘까지 뻗었다.(아주 과장된 표현) 가만히 바라보고 있으니 넘실대는 에메랄드 빛 어느 휴양지의 야자수를 닮았다.

"와~~~~~ 예쁘다."

막내의 레고 인형을 가져다 야자수 앞에 세운다.

코로나로 여행도 못 가는 요즘 야자수 앞에서 행복한 꿈을 꾼다.

"어떤 열매가 달릴까?"

"야자수 나무에 올라가 볼까?"

휴양지 바닷가에 죽 늘어선 야자수 길을 걸으며 시원한 바닷바람을 맞는다.



영차 영차 야자나무에 올라 잘 익은 야자열매를 따고 스릴 넘치는 나무 오르기 놀이도 즐긴다. 작은 당근이 주는 기쁨이 작지 않다. 저녁을 차리다 재미난 상상으로 시간이 훌쩍 지났다.


내가 살고 있는 시에서 분양해준 텃밭에 고추, 방울토마토, 당근을 심었더랬다. 방울토마토나 고추는 그래도 잘 크는데 당근은 영 잘 자라지 않는다. 줄기가 제법 자라서 당근을 수확할 때가 되었나 하고 쏙 뽑았더니, 세상에 애기 손가락 만한 크기였다. 줄기에 비해 당근 크기는 정말 코딱지 만했다. 그래도 첫 당근 수확이니 잘 씻어서 당근 좋아하는 막내가 먹었다. 무엇이 문제였는지 초보 농부인 나는 잘 알지 못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농사에는 영 소질이 없다는 생각이 든다. 슬프지만 당근은 키우기가 어렵구나 하고 결론을 내렸다.


그래도 다른 사람들이 키워준 토실토실한 흙당근을 늘 쉽게 먹을 수 있어서 참 감사하다. 달달한 당근 아삭아삭 씹으며 언젠가는 당근 야자나무가 아니라 진짜 야자나무 보러 휴양지에도 가봐야지 하는 주황빛 꿈을 꿔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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